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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늘의 사색(채운)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권루시안 옮김, 물레)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그것은 감각적이고 의미 있는 낱말과 분명하고 뚜렷한 관념으로 생각하고 반추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내일은 올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이러저러하다고 말할 수 있고 이러저러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 우리는 철저히 무력하며, 우리가 대화에 관여하는 것은 우리와 함께 자신의 무력함과 모두의 무력함을 즐거이 경험할 수 있는 다른 이들에 대한 우정의 싹을 키워나갈 길을 찾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가이아와 전 지구의 책임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것이고 그 때문에 그들은 미쳐버린다.”

 

현대인은 무한성장이 가져올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와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운운한다. 지독한 모순이자 섬뜩한 오만이다. 세계를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자신의 행위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이반 일리치의 말대로, 그건 또 다른 형태의 “사악한 종교성”이다. 우리의 믿음과 달리, 인간은 무력하다. 현재를 충분히 사는 것 외에는, 인간이 건설할 수 있는 미래도, 책임질 수 있는 세계도 없다. 자본과 제도만이 미래를 말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강요함으로써 현재를 지옥으로 만든다. 그러나 “언제나 손이 닿을 수 있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하는 현재, 그것만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천국이다.

 

“현재를 기리되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쓰면서 기릴 수 있다는 -그것이 세계를 구하는 데 쓸모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답기 때문에- 감각이 있으면 생태학이라는 저 섬뜩한 춤에 대한 반대를 상징하는 저녁식탁을 차려낼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살아 있자고, 그리고 누리자고, 모든 고통과 모든 불행과 함께 이 순간 허락돼 있는 살아 있음을 의식적으로, 의례적으로, 공개적으로 즐기자고 말한다. 내가 볼 때는 이것이 절망이나 종교성, 저 사악한 종류의 종교성에 대한 해독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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