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과 비합리성의 회귀 

: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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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지 않는, 죽은 자


“나는 이방인처럼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보이고 싶소(...) 나는 아주 오랫동안 주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여전히 주인으로 남아 있고 싶은 거요. 아무리 못해도 다른 사람이 내 주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소.”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드라큘라 백작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지하 세계로 돌아가지 않고 지상의 수많은 텍스트들을 전염시켰다. 연극과 소설,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귀환을 반복했다. ‘죽지 않는 자(Undead)’라는 드라큘라의 원제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성에서의 경험들을 기록한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조너선은 드라큘라 백작에 대해 “현대성으로 제압할 수 없는 과거의 힘이 살아 있다”고 적고 있다. 그 과거의 힘은 죽어야 하지만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는 힘이며, 죽었으되 다시 회귀하여 현대를 압도하는 기이한 체험이기도 하다. 이 과거의 힘은 현대라는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타인들을 위협하는 그런 힘이다. 이상한 것은 이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것을 사람들이 향유한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드라큘라는 죽지 않고 영원히 지상을 맴도는 것일까. 처참히 죽은 드라큘라 백작을 우리는 왜 또 다시 끄집어내 그의 회귀를 돕는 것일까.


2. 경계에 선 자, 두려움과 매혹


   조너선 하커는 변호사 대리인 자격으로 트란실바니아에 있는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초대받는다. 문명의 상징인 대도시 런던과 달리, 트란실바니아는 아직 종교적이고 신비화된 모습을 벗지 못한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곳 사람들은 조너선이 그곳을 방문했던 5월 4일이 악마가 날뛴다는 성(聖) 조지의 날임을 상기시키며 십자가 목걸이를 걸어주거나, 두 손으로 성호를 그으며 악령으로부터의 안전을 기원하는, 아직 미신을 쫓는 사람들이다. 조너선은 미신을 믿는 행위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꺼림칙한 느낌을 지워버리질 못한다.

   성 조지의 날, 드라큘라 성에 들어간 조너선은 드라큘라 백작의 이상한 면모들을 마주하게 된다. 백작은 거울에 비치지도 않고, 먹거나 마시는 일도 없으며, 성벽을 거꾸로 기어 내려가는 등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이하고 낯선 것은 그의 잠든 모습이었다.


“전부 50개나 되는 커다란 나무 상자 중의 하나에, 갓 파낸 흙더미를 깔고 백작이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죽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잠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눈을 뜨고 있고 그 눈이 돌처럼 굳어 있으면서도 죽은 사람처럼 개개풀린 것이 아니어서, 어느 쪽인지 단정하기가 어려웠다. 뺨은 온통 파리한데도 생명의 온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입술은 여느 때처럼 붉었다. 그러나 맥박이며 호흡이며 심장의 박동과 같은 생동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너선이 관찰한 백작의 정체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산 것 같기도 하고 죽은 것 같기도 하며, 맥박이나 호흡은 없는데 생명의 온기는 있고 입술은 붉어서,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처음 봤던 드라큘라 백작은 분명 노인이었는데 런던으로 이동한 사람들의 피를 마신 후의 백작은 젊은이의 모습처럼 보여서 조너선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가 하면, 인간의 육체로는 절대 불가능한 변신술을 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드라큘라가 공포스러운 핵심적 이유는, 그의 육체가 지닌 이질성이 다른 육체를 오염시키거나 전염시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드라큘라에게 전염된 루시를 보라. 그녀는 낮 동안에는 일반 여성과 똑같지만, 밤이 되면 몽유병자처럼 나가 드라큘라를 만난다. 게다가 죽은 후 묘지에서 나온 그녀의 모습은 음탕하고 사악한 얼굴로 뒤바뀌어 그녀를 사랑했던 주인공들(반 헬싱 박사와 수어드 박사, 고다밍 경과 아서)로 하여금 불쾌감과 위협감을 느끼게 한다. 드라큘라를 만난 후, 루시의 아름다움에는 추악함이 뒤섞이고, 조너선은 자신 안에 수동적인 여성성이 섞여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숙여진 여자의 머리가 점점 아래로 내려오면서 입술이 나의 입과 턱 언저리 아래로 다가왔다. 나의 목을 겨냥하고 있는 듯했다. 여자는 잠시 뜸을 들였다. 혀로 자신의 이와 입술을 핥아 대는 소리가 들리고, 뜨거운 입김이 나의 목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내 목 살갗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내 살을 간질이려는 손이 점점 가까이 다가들 때 느끼는 살갗의 과민 상태와 같은 것이었다. 극도로 과민해진 목의 살갗에 바르르 떨리는 부드러운 입술이 와 닿고, 날카로운 치아 두 개가 살갗을 누르더니, 거기에 댄 채 가만히 있었다. 나는 몽롱한 흥분 상태에서 눈을 감고 기다렸다.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주인공들이 드라큘라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가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고정된 정체성이 부여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드라큘라와 접촉하는 순간 남성 속에 숨겨졌던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순결하고 고귀했던 한 가정의 아내는 음탕한 욕망을 드러낸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들이 전염될 수 있었던 것은 애초에 그들의 정체성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타자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도, 타자에게 매혹되는 것도 정체성 자체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드라큘라를 죽이는 일은 늘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나를 위협하는 것들은 이미 나라는 존재와 구분 불가능하게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3. 공동체와 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큘라를 바라보는 네 남자의 시선은 확고하다. 그들에게 드라큘라는 선량한 시민과 구분되는 범죄자, 합리적 경험을 갖춘 성인에 이르지 못한 퇴행적 유아, 자손을 번식할 능력을 결여한 중성적 존재, 요컨대 공동체적 질서를 위협하는 타자로 인식된다.


“이 범죄자에게는 제대로 찬 성인의 뇌가 없네. 그는 영리하고 교활하고 지략이 풍부하지만 두뇌만큼은 어른으로 성장하지를 못했어. 그런고로 여러 면에서 어린아이의 뇌를 가지고 있지. 그런데 우리의 이 범죄자는 또한 범죄를 저지르도록 예정되어 있고 어린아이의 두뇌를 가지고 있어서, 그자가 했던 짓은 어린아이가 하는 짓이나 마찬가지야. 어린 새, 어린 물고기, 어린 짐승은 원칙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배우는데, 뭔가를 배우게 되면 다음에는 좀 더 해보자는 근거를 갖게 되지.”


   반 헬싱 박사는 이탈리아의 범죄학자 롬브로소가 말한, 범죄자들의 생물학적이고 신체적 특징을 들면서, 드라큘라는 합리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처럼 원시적 단계로 퇴행한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자는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를 거치지 않고, 어머니의 젖을 빠는 구순기적 욕망에 사로잡힌 채 未분화된 성(性)으로 살아간다. 유아로 퇴행한 흡혈귀 역시 욕망에 대한 탐닉은 있으나, 절제나 금기를 통한 사회화에는 이르지 못한 미성숙 상태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흡혈귀들이 목을 빠는 행위는 식욕과 성욕의 차이가 아직 미분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유아가 어머니에게 기생해 만족감을 채우듯 흡혈귀들은 타인의 생명에 기생해 생을 영위한다. 성행위와 달리 흡혈 행위는 실제의 성 행위가 자손 생산이라는 공동체적 질서로 이어지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만족에 고착되어 있다. 주인공들이 흡혈귀를 처단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동체적 질서를 무시하고 공동체를 해체시켜버릴 수 있다는 것.

   공동체의 해체 위협을 느낀 주인공들은 문명사회의 유산인 합리적 지식과 기술로 드라큘라를 죽일 수 있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그들이 드라큘라를 퇴치한 것은 초자연적인 미신들, 마늘과 들장미, 거대한 사냥칼 같은 미신적 도구였다. 근대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현대인 역시, 아직 원시적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인 것이다. 조너선과 미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퀸시는 이런 모순을 반영한다. 두 사람은 드라큘라를 죽이는 과정에서 죽은 퀸시 모리스의 이름을 아들에게 붙이는데, 사실 어린 퀸시에게는 드라큘라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가 자기의 셔츠를 잡아당겨 찢고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자기 가슴의 핏줄을 땄어요. 그리고 피가 솟기 시작하자 한 손으로 내 손을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내 목을 움켜쥐고서 내 입을 상처에다 대고 눌렀어요. 저는 숨이 막혀 죽거나 그것을 삼킬 수밖에 없었어요. 오, 하느님! 하느님! 내가 그런 짓을 다 하다니요? 이때껏 내내 온유하고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한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운명을 당해야 하나요?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죽음보다도 더 지독한 위험에 처해 있는 불쌍한 영혼을 굽어 살피사, 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비와 동정을 베풀어 주소서!”


   그런데 어린 퀸시에게는 드라큘라의 피뿐 아니라 주인공 네 명의 피까지 뒤섞여 있다. 네 명의 남자가 루시에게 수혈을 해주었지만, 반 헬싱의 지적대로 그들의 힘은 모두 드라큘라에게로 갔으며, 드라큘라의 피가 다시 미나에게, 그리고 어린 퀸시에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영원히 기념하고자 하는 상징적 존재인 어린 퀸시는 사실 그들이 그토록 추방하고 싶어했던 타자, 또 다른 흡혈귀였던 것이다.


4. 흡혈귀, 합리성의 그림자


  주인공들은 흡혈귀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환영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다. 조너선은 여자 흡혈귀를 두려워하면서도 강렬하게 매혹되었으며, 루시와 미나가 드라큘라 백작에게 매혹당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바 없다. 반 헬싱 박사나 수어드 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합리적이거나 지적인 방식으로 흡혈귀를 처단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흡혈귀 처단은 일종의 “사냥 파티”였으며, 그러한 경향은 쾌락과 죽음을 탐닉하는 드라큘라와 유사하다. 그들은 드라큘라와 비슷해진 이후에야 그를 처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현대의 흡혈귀담 증식과 범람은 최첨단 과학과 합리성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의 토대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역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흡혈귀담은 합리적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의 가치인 이질성과 모호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성의 상징적 인물인 어린 퀸시가 드라큘라와 주인공들의 피가 뒤섞인 채 태어난 존재였듯이, 현대의 합리적인 질서 역시 과거의 모호하고 지저분한 것들 속에서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흡혈귀가 상징하는 것은 현대의 합리성이 스스로의 합리성을 주장하기위해 그림자처럼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는 타자,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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