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5 00:04

[오늘의 사색]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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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늘의 사색(채운)

 

<열자> (김학주 옮김, 연암서가)

 

"백 년이란 사람의 목숨의 최대치여서, 백 년을 사는 사람은 천 명에 하나 꼴도 안 된다. 설사 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어려서 엄마 품에 안겨 있던 때와 늙어서 힘없는 때가 거의 그 삶의 반을 차지할 것이다. 밤에 잠잘 때 활동이 멈춘 시간과 낮에 깨어 있을 때 헛되이 잃는 시간이 또 그 나머지 삶의 반을 차지할 것이다. 아프고 병들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자기를 잃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시간이 또 그 나머지 삶의 반은 될 것이다. 십수 년 동안을 헤아려 보건대, 즐겁게 만족하면서 작은 걱정도 없는 때는 한시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중략) 태곳적 사람들은 사람의 삶이란 잠시 와 있는 것임을 알았고, 죽음은 잠시 가버리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마음을 따라 움직이고 자연을 어기지 아니하며 그가 좋아하는 것이 몸의 즐거움에 합당한 것이면 피하지 않았다. 그것은 명예로도 권장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본성을 따라 노닐며 만물이 좋아하는 일을 거스르지 않고 죽은 뒤의 명예는 추구하지 않았으므로, 그러한 삶은 형벌로도 어찌 하는 수가 없었다."

 

하루를 살든 백 년을 살든 영원한 것이란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삶 역시 유한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존재의 불멸’을 꿈꾸며 공(功)을 다투고 부귀를 탐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살육이 자행되고 무수한 번뇌가 만들어진다는 것. 이거야말로 최선을 다해 불행을 욕망하는 꼴이니, 양주(楊朱)의 말대로 “형틀에 매인 중죄수의 삶”과 다를 바 없다. 하루를 살다 죽어도 죽는 거고 백 년을 살다 죽어도 죽는 거다. 죽는 건 매한가지지만, 어쨌든 삶의 관점에서 보면 그게 ‘평생’이다. 각자의 평생이 있을 뿐이니, 시간의 길고 짧음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살아가는 존재에게 문제되는 건 오로지 하나, 일생(一生)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뿐. 어떻게 길을 가고(生), 또 어떻게 그 길을 잘 돌아갈(死)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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