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공동체의 힘으로 세상과 맞짱 뜬 반전(反戰)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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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대, ‘비공(非攻)’을 주장하다

  

그 나라의 변경을 넘어 들어가서는 그들이 농사지은 곡식들을 베어 버리고 그곳의 나무들을 잘라 버리며 그들의 성곽을 부수고 그들의 해자를 묻어 버리며 그들의 짐승을 함부로 죽이고 그들의 종묘(宗廟)를 불질러 없애며, 그 나라 백성들을 찔러 죽이고 그 나라의 늙은이와 약한 사람들을 죽여 없애며 그 나라의 소중한 그릇들을 가져간다.(묵자(墨子)』「비공 하(非攻 下)) 

 

  전국시대(戰國時代:B.C. 403~221)의 전쟁은 저와 같이 적국에 쳐들어가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전쟁을 치르는 규모, 기간, 철제무기 보급으로 인한 전투력에 이르기까지 춘추시대(春秋時代)와는 모든 면에서 너무 달랐다. 하루에 백번이 넘는 전투가 치러지는 그야말로 전쟁의 시대, 지식인들은 전쟁의 비참함과 그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가. 전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자는 법가, 전쟁에 부정적이지만 전쟁 자체보다는 군주의 수신(修身)을 통한 인정(仁政)에 무게 중심을 두었던 유가, 전쟁을 반대하나 세상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던 도가. 오직 묵가만이 전쟁 반대非攻를 기치로 내걸었다.

  묵가, 이들은 누구인가? 묵가는 묵자를 거자(鋸子: 묵가 최고 우두머리)로 삼고 전사무의(巫醫)농민상인말단 관리 등의 하층민을 그 구성원으로 하는 공동체였다. 그러나 이 집단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묵자 역시 성도 이름도 확실하지 않은 데다가 생몰 연대도 불분명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대략 그가 공자가 죽은 해와 맹자가 난 해 중간쯤인 전국시대 초기를 살았다는 것, 공자와 같은 노()나라 사람이라는 것, 묵자의 내용을 봤을 때 기술자, 노동자였을 것이고, 독학으로 공부한 것 같다는 정도다. 묵가 역시도 그 조직이 얼마나 강대했는지, 대중적 기반이 얼마나 컸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묵자의 심복 180명은 모두 불 속으로도 뛰어들 수 있었고, 칼날도 밟을 수 있었으며, 죽음 앞에서도 돌아설 줄 몰랐다.”(회남자(淮南子)』「태족훈(泰族訓))고 한 것으로 보아 묵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단단한 조직이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공동체 내에서 사형이 이루어질 만큼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 묵가는, 능력 여하에 따라 벼슬에 나아가거나 물러났고, 뛰어난 방어술과 장비 제조 기술로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약하고 작은 나라를 도왔다고 한다.

   묵자가 주는 놀라움은 그가 자기 머리 하나만을 믿고 유세했던 당대의 지식인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부딪쳤다는 것이다. 그는 공동체의 힘, 실천의 힘으로 전쟁을 종식시키고자 했다 그렇다면 그가 그토록 강력하게 전쟁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천하에 남은 없다

 

지금 나라와 나라들이 서로 공격하고 있고 집안과 집안들이 서로 빼앗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해치며, 임금과 신하들이 서로 은혜롭고 충성되지 않고, 아버지와 자식들은 서로 자애롭고 효도하지 않으며, 형제들은 서로 우애를 다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이 곧 천하의 해악이다.” 그렇다면 이 해악을 살펴볼 때 또한 그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있는가? 묵자는 말하였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겸애 중(兼愛 中))

 

  묵자의 가치판단 기준은 오로지 "국가와 백성과 인민의 이익에 부합하는가"였다. 유가의 음악과 호화로운 장례가 비판되고, 자원을 개발하고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자는 절용(節用)이 권장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사람, 집안, 국가 간에 일어나는 쟁투 역시 백성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으로, 그 중 최고의 해악은 단연 전쟁이다. 묵자가 보기에 이런 해악들은 나와 남을 차별하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었다. 자기, 자기 집안, 자기 나라만 사랑하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다른 집안을 빼앗고, 다른 나라를 공격한다. 그래서 그는 차별 말고 모두를 아울러 사랑하자는 겸애(兼愛)를 주장한다. 자기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 물론 유가도 나로 미루어 남을 사랑하라는 인애()를 말하지만 유가의 사랑은 친친(親親:가까운 사람을 친히 함)이다. 즉 내 아이, 내 동생의 아이, 내 이웃의 아이, 저 건너 마을의 아이, 이런 식으로 가까운 데서부터 점점 먼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듯 유가의 사랑에는 분명한 차등이 있다. 그런데 묵자가 말하는 겸애는 친소, 귀천 등을 넘어선 무차별적 사랑이다. “천하에 남은 없다!” 이 경계 없는 사랑만이 천하의 해악을 없앨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그가 차별은 그르고, 아우르는 것을 옳다고 한 이유는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는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겸애 하(兼愛 下))이다. 다시 말해 겸애는 공리(公利)를 위해서가 아니면 무의미하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한다(겸상애兼相愛 교상리交相利)! 사랑- 이익의 짝패는 이렇게 탄생한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이롭게 하기도 하지만, 서로 이롭게 하기 위해 서로 사랑해야 하기도 한다. 묵자가 생각하기에 겸상애 교상리의 정신만이 무자비한 전국(戰國)의 세상에서 모두가 생명을 보존하고 살아갈 수 있는 이치였다. 그런 점에서 겸애에는 냉철한 판단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귀 밝은 사람과 눈 밝은 사람이 서로 더불어 보고 들어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팔다리가 잽싸고 강한 사람들이 서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을 돕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도를 터득한 사람은 힘써 서로 가르쳐 주게 되는 것이다. (겸애 하(兼愛 下))

   겸애는 마치 물이 흐르듯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능력들이 타인에게로 흘러들도록 한다. 주고받고 나누는 행위, 서로를 이롭게 하는 행위.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런 구체적인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 것은 겸애가 아니다. 겸애는 자신으로 향한 시선을 타인에게로 돌려 그들도 나와 같은 욕망이 있음을 생각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묵자는 사랑하는 일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기만을 위하는 존재지만 이기적이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不爲己之可學也)”(대취(大取)) 어떻게? 바로 상벌(賞罰)을 통해서. 인간은 스스로 겸애의 마음을 갖기 어려우므로 상벌을 통해서 그런 마음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묵자는 주장한다. 이 근거는 무엇인가? ()이다. 즉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것은 하늘이 우리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 그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하늘과 귀신이 벌을 내릴 거라는 얘기다. 묵자에게 하늘과 귀신은 겸애를 취하기 위한 방법적 차원에서 소환된다. 아울러 정치적으로는 성인이 천자가 되어 그 아래 삼공(三公)-제후-(), 재상-향장(鄕長)-가군(家君)-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천자의 뜻 하나로 귀속되어야 한다는 상동(尙同)의 논리가 도출된다.

  겸상애 교상리. 여기에 부합하면 상을 받고 여기에 부합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어찌 보면 비정하고 조금은 단순한 이 논리는, 이렇게 강제성을 띠지 않고서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없다는 비장함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묵자에게는 문화와 감정과 개인의 삶이 희생되더라도 모두의 삶을 보장하는 공리(公利)가 중요했다. 그래서 공리(公利)를 해치는 전쟁은 없어져야만 하는 것이었고 그 원리로 겸애가 주장되기에 이른 것이다.

 


묵자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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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가는 전국시대가 지나고 제국이 통일되는 시점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묵자가 청() 말 고증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발굴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묵가 사상의 진면목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노예의 도(순자)라거나 아비도 모르는 무리(맹자)라는 유학자들의 비판으로만 그를 기억했을 것이다. 그들은 왜 세상에서 사라진 걸까? 묵가는 당시 많은 백성들의 지지로 큰 세()를 얻었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주장은 살아서는 고생이요, 죽어서는 박장이어서, 그의 도는 너무나 각박하여 사람을 근심하고 슬프게 했고, 정말로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것(장자(莊子)』「천하(天下))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한 전쟁을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그것을 막으려는 묵가의 반전(反戰) 태도는 전쟁을 통해 패권을 차지하려는 군주들의 욕망과도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는, 묵가가 그들만의 독자적인 규율로 운영되는, 최고의 전쟁기술을 가진 공동체라는 점이 통일된 제국에서는 용납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묵자는 왜 다른 유세가들처럼 군주의 힘에 기대어 자신의 비전을 펼치는 대신 공동체를 만든 것일까? 아마 그도 알았을 것이다. 그 시대의 군주들이 어떤 욕망 속에 있는가를. 그는 자신의 비전을 가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시대의 문제를 돌파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사상적으로는 서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자는 겸애를 설파하고, 실천적으로는 공동체를 만들어 직접 전쟁을 막으러 다녔다.

  묵자는 사람들 각자가 가진 능력과 재물과 지식은 공동체 속에서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 밝은 사람은 눈이 되어 주고, 힘이 센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돕고, 음식을 가진 자는 음식을 나눠주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 준다. 이것이 바로 교상리(交相利)의 정신이고, 이런 나눔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겸애다. 차별적 사고로는 가진 것들을 흐르게 할 수 없다. 흘러나가지 않으니 흘러 들어오지도 않는다. 요컨대, 묵자의 겸애는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맹목적 이타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대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보완해줄 것을 요구하는 합리적 인식이다.


  우리는 늘상 말한다. 가진 것이 없다고, 그래서 더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묵자는 누구나 나눌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겸애와 공리를 말한다. 우리 각자가 이미 뭔가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나누라는 거다. 그렇다면 나눔은 어떻게 가능한가? 많이 가진 자가 조금 가진 자를 동정할 때? 내가 내놓은 만큼 받으리라는 보상심리가 작동할 때? 묵자는 말한다. 이롭게 하고 사랑하는 것은 생각해 주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대취(大取)) 생각해주다니 무엇을? 그도 나와 같이 삶을 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욕망하는 존재라는 것을.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는 말은 그러한 존재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카렌 암스트롱은 이를 공감이라고 했다. 나눔은 바로 여기에서 가능해진다

  공감 그리고 나눔. 겸상애, 교상리. 이것은 이천년을 넘어 묵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공존(共存)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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