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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뇌과학의 함정> 두 번째 시간에 발표된 공통과제들의 키워드는 ‘오솔길’ 이었다. 수 없는 발걸음으로 돌과 나무와 풀들이 비켜나고 가지런히 그러나 확실한 모습으로 숲 속 한가운데에 익숙하게 드러나 있는 오솔길. 바로 우리의 몸과 의식, 삶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습관’이다. 알바 노에는 이렇게 내가 오솔길을 내기도 하고 그 길을 통해 걷기도 하듯이 나와 세계도 그렇게 서로를 구성한다고 이야기 한다. (아! 이렇게 어려운 내용을 이토록 쉽고 재미있게 설명 해 주다니. 알바 노에는 시종일관 친절하다.) 고로 습관은 곧 세계와 소통하는 인간 삶의 본질이라고까지 하니 나의 습관 하나하나가 내게 알몸을 드러내는듯하여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습관은 변화 한다. 매우 어렵지만 그래도 이렇게 새겨진 습관이 변화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과연 어떤 요인들일까? 습관 변화유무의 차이. 채운 샘께서는 단순히 몸의 차원을 넘어 ‘의도’가 함께 더 해질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바로 그 차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져 주셨다. 의도라?

 

(내가 이해하기에) 이때 의도는 바로 접속의 문제이다. 네트워크와 접속. 뇌, 몸, 환경이 한 덩어리가 되어 세계와 내가 동시에 구성되는 연결의 문제. 이 부분은 <윤리적 노하우>에서 바렐라가 주장했던 존재의 본질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삶의 윤리는 그 자신의 모든 역사의 한 덩어리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네트워크 체계에서 내가 접속할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접속하느냐가 문제인 것.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지? 언뜻 이해가 되는 듯도 하고 이미지가 그려지는 것 같기도 한데 막상 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발현되는 지는 가물가물 막연하게 느껴진다. 매 순간, 매 상황마다 자신의 의도로 접속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습관은 낯선 정보는 피하고 익숙한 정보만큼만 뇌를 통해 창발 되는 것이라고 한다. 채운 샘께서는 바로 이 부분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는 부분이 아닐까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필요에 따라 혹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힘들어도 좀 덜 익숙한, 가능하면 새롭고 낯선 정보들과의 접속을 확대시키고 반복해 나가면서 새로운 골을 파나가듯 새로운 오솔길들을 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것이 말이 쉽지 얼마나 고행 같은 일상을 요구하는가. 구체적인 상상조차도 잘 안 된다. 마치 신체 일부의 선천적인 기능처럼 몸에 베인 사소한 습관 하나 바꾸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는 이미 적잖은 경험을 통해 모르지 않으니 말이다. 더구나 뇌는 낯선 정보는 피하고 박테리아와 설탕의 존재처럼 익숙한 정보에만 우선적으로 착착 작동된다고 하질 않는가. 새로운 오솔길을 만드는 것은 마치 새로운 세계 하나를 만드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화가 세잔의 ‘사과스러움’ 이야기는 감동과 함께 깊은 생각거리를 남겨 주었다. <세잔, 가케스와의 대화>의 짧은 발췌문을 통해 느낀 세잔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세계를 찬란하게 향유하고 있었다. 놀랍다. “우연히 비치는 광선과 태양의 위치와 그것의 침투 정도를, 세상을 향해 비치는 햇빛을 누가 그릴 수 있고 누가 묘사할 수 있을까. 이것은 물리학, 그러니까 땅의 심리학의 문제가 될 걸세.”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섬세함은 바로 우리 정신의 섬세함일세.”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말과 세계라니 정말 경이롭지 않은가. 인간이 세계와 만났을 때 예술성으로 나타나는 것이 내 안에 있는 비결정성, 변이 잠재성의 영역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genius(천재성)라고. 그러고 보니 추상적이고 보통의 사람들과는 전혀 별개라고만 생각되었던 천재성이라는 말보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있을법한 비결정성, 잠재적 변이성이라는 말이 훨씬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또 이는 기억을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가, 경험을 어떻게 창발적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며 이때 경험이 열려있으면 기억도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하니 뭔가 솔깃해지기까지 한다. (이런! 갑자기 천진난만한 돌잡이 아기들의 말랑말랑한, 무한대일 것 같은 비결정성들과 이미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버렸을 나의 ‘기결정성’들이 무참히 대비되는 것 같아 절망스러운 기분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채운 샘이 한 방 날리셨다. 화가들의 미결정성을 끌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실성이었다고! 역시. 그렇겠지. 흠...

 

 

나의 몸과 뇌, 세계가 하나가 되어 내가 세계를 구성하고 세계가 나를 구성한다는 것을 좀 더 가깝게 알게 된 것은 (불교의 연기와는 또 다르게) 좀 더 흥미롭고 다이나믹한 일이다. 하나의 문제를 사유할 때 세잔처럼 사유할 수 있다는 것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日新 又日新해야 한다는 단순한(?) 메시지 또한 입에 쓴 보약처럼 또 한 번 내 몸과 기억에 새롭게 들어가게 된 것 같다. 물론 흉내조차도 내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뇌과학의 함정, 알바 노에 덕분에 내 삶의 새로운 오솔길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내 오솔길부터 찬찬히 들여다봐야 하는 또 하나의 사유의 방식을 접해 본 건 기분이 한창 업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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