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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제 정신이 어디로 사정없이  떠돌아 다니는 바람에 시간 가는줄도 몰랐네요.

 

반씩 읽자고 채운샘을 꼬셔놓고 4주 동안 똑같은 책 읽는다고 불평하던 저였습니다.(-_-)

처음에 읽을 때는 프레이저 이 아저씨 제국주의 하수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솔직히 실망감도 있었고, 속으로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읽어갈수록 프레이저에 대한 존경심이 커지더군요.

특히 68장 <황금가지>와 69장 <네미여 안녕> 에서는 절을 하고 싶을 정도로.

넙죽 엎드려 배워야 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미개인의 입장에서서 미개인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미개인의 마음을 움직였던 감정의 고동을 그대로 우리 심장에 느낄 수는 없다. 따라서 미개인과 그들의 관습에 대한 우리의 설명이나 해석들은 모두 확실성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거기서 우리가 바라는 최선은 다만 상당한 정도의 개연성을 확보하는 데에 있을 뿐이다.(748)

 

  프레이저는 '마법의 땅'을 더듬더듬 걸으며 살아갔을 미개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면서도, 자기가 그들을 바라볼 때의 한계를 동시에 깨닫고 있었습니다.  미개인들의 눈엔 프레이저 자신이 무지한 인간일 수 있다는 것. 주술에서 과학으로 발전해간다는 진보사관을 버리지 않았지만, 끝으로 갈수록 프레이저는 자기 생각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이걸 읽으면서 누군가와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며, 무언가에 공감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기 지반이 흔들리는 체험이며  지금 이 세계가 아주 낯설어 지는 경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프레이저는 미개인들과의 묘한 공감을 경험하고 있는 듯합니다.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이 긴 시대에 걸쳐 어둠 속을 헤매다 마침내 과학 안에서 미로를 빠져나갈 실마리 혹은 자연의  보물창고에 채워진 수많은 자물통을 열어줄 황금의 열쇠를 발견한 것이다. (중략) 하지만 사상의 역사는 우리에게 과학적 세계관이야말로 지금까지 정식화된 것 가운데 최고이지만 필시 완전하고 최종적인 것일 거라는 결론을 내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과학의 일반화, 즉 흔히 말하는 자연 법칙이란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세계와 우주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부르는 가변적인 사유의 환영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해낸 가설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주술과 종교와 과학은 사유의 이론일 뿐이다.(753-754)

 

저 신성한 숲에서 디아나가 숭배자들의 예배를 받던 때 이래로 그곳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변한 것이 없다. 물론 숲의 여신을 모시던 신전은 사라졌고, 황금가지를 지키려고 불침번을 서던 숲의 왕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미의 숲은 여전히 푸르기만 하다. 서쪽 숲 위로 석양이 기울어지면 밀려오는 바람에 실려 안젤루스를 울리는 아리키아의 교회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싶다. 아베 마리아! 감미롭고도 장엄한 종소리가 먼 도시에서 울려나와 광활한 캄파냐의 늪지대를 가로질러 서서히 스러져간다. "왕은 죽었다. 왕이여, 만세! 아베 마리아!"(757)

 

 

 프레이저에게 인간의 사유는 언제든 "공기 속에 녹아서 사라질 수 있는" 이 세계의 일부일 뿐입니다.

대학자가 자기 연구를 하면서 점점 더 겸허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난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라는 물음과 함께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제가 가졌던 오만한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시시때때로 내가 참 어리석다고 느끼지만, 이런 채로 있는 것도 중독성이 있는건지 

그 안에 푹 빠져 헤어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저와 만나게 됩니다. 

이런 식의 반성과 자책도 다 쓸데 없는 거고,

차라리 그냥 황금가지를 쓰고 있는 프레이저를 상상하면서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읽고, 쓰고 하는게 가장 좋겠죠... 

 

 프레이저는 어떤 것도 완전하고 최종적일 수 없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저 태어나고 만나고 이별하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고 만나고 이별하고 사라지길 반복할 인간들은 자기가 딛고 있는 이 마법같은  땅 위를 더듬더듬 걸어갔겠죠. 그리고 몇 세기가 지난 후에 우리도 더듬더듬 똑같은 그 길 위를 걸어가고 있는 거겠죠.

  

공기를 가로지르는 종소리의 파장이 신전과 사제가 사라진 네미 숲을 감싸고 저의 몸도 휘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큰 여운이 남네요. 눈물이 찔끔.

 

프레이저한테 고맙네요. 이런 책 남겨줘서.

 

채운샘, 스승복이 이렇게 터졌는데도, 정신줄 놓고 있는 불량 학생이어서 미안합니다.  

 

탐사팀, 추석 잘 보내시고, 다다음주에 보아요. ^^ 

 

p.s. 우리 조원들은 다들 어디에 있나요? 후기 남겨주셔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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