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3 후기 9주차     <황금가지2>     2011.8.29 月 


<후기>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읽을 수록 나의 전제를 의심하게 됩니다. 인류 조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집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언어로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나마 프레이저의 많은 자료가 그들을 보는데 길잡이가 됩니다. 

그들의 자리에서 제자리를 볼 수 있기에 사유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국가란 무엇일까, 종교와 믿음이란, 사회의 구조와 나라는 존재는 있는가 등 하나하나를 물어볼 수 있는 기반을 <황금가지>가 만들어 줍니다. 그들이 왜 신을 살해했는가를 추적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지금의 신은 왜 살해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토론 때 지적과 같이 <황금가지> 원시인이 지금을 본다면 누구가 원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 지금의 우리가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미개한 종족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황금가지>의 마지막 여정이 전개 됩면서 레미왕의 살해 전모가 밝혀질 다음주를 기대합니다. 


<채운샘 강의>

인류학자들은 신과 맺는 관계로 신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었다. 먼저 미르체아 엘리아데가 설명한 '감추어진 신'은 인간을 만들었으나 그 이후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감추어진 신'은 인간이 기억할 필요도 없고 기억되지도 않는다. 단지 홍수나 질병 등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인간은 신을 기억해 내고 제의를 지낸다. 

두번째 '살해된 신'의 모티브는 무언가 죽어야 생산이 된다. 최초의 신의 살해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의례이다. 신이 죽어서 들어있는 식물이나 동물에 주목했다. 살해된 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살해되서 묻히기 때문에 망각되지 않는다. 신을 먹음으로써 기억을 간직한다. 신의 존재를 분유(나누어 가짐)함으로써 인간의 존재가 변화를 겪는다. 여기가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시기와 겹친다. 신이 살해된 후가 중요하다. 살해된 신은 살해되면 인간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제의는 신에 대한 회상이다. 신을 분유받는 전체 집단은 질서를 유지한다. 희생제의는 대칭성을 끌어와 비대칭성을 유지하는 관점이 하나있다. 

프로이트도 희생제의를 이야기 한다. 프로이트의 희생제의는 아버지의 지배를 나타낸다. 아버지의 여자가 어머니이고, 어머니의 젊은 남자안 아들을 아버지가 죽인다. 아버지는 여자를 독점하는 인간이고, 아들은 근친적 욕망을 극복할 수 없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살해한다. 아버지의 시신을 먹어 아버지와 동일화 한다. 문제는 먹어서 죄책감이 든다. 양가감정이다. 아버지가 되고 있다는 것도 아버지가 아직 내 안에 살아있다. 이러한 죄책감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가 족외혼 제도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극복하도록 한 것이 토템이다. 양가감정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아버지의 법을 내재화하는 회한이 들어있다. 


르네 지라르는 폭력의 구조를 회생제의로 해석하며 비극적으로 본다. 인간에게 원초적 폭력이 있다. 인간이 원초적 폭력에 접한다. 매개체를 통해 다른 존재를 모방하거나 폭력 속에 상호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자신의 모습도 원초적 폭력을 막기 위한 희생제의. 하나에 폭력을 집중하는 것 이런것은 현대사회의 희생양이다. 하나를 없애서 집단내에 질서를 유지한다. 희생제의를 집단 폭력으로 인식한다.

왕이 되는자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왕이 된다. 그 질서를 내면화한 자가 왕이 된다. 희생자 입장에서는 집단폭력인데 가해자 입장에서 신성한 것이다. 폭력과 희생제의가 언어를 공유한다. 양가성을 보인다. 희생제의를 바침으로써 자기 내면의 무엇을 보았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르다. 그래서 성스럽다. 원초적 폭력의 두려움을 1인에게 가하는 만인의 폭력을 성스러움으로 포장했다.조르주 바타유도 희생제의를 폭력으로 보았다. 잔혹한 실제로 상징적이다. 

인간이 중요한 노동력인데 인간을 쉽게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살해된 것은 동물일 가능성이 크다. 신화에서 살해된 제물이 인간인지 알 수 없다. 축제의 잔혹한 무질서는 제의를 통해 비대칭성에 대칭성을 흐르게 하는 폭력이다. 광기의 의미에서 디오니소스 찢김을 당한다. 프레이저가 기록을 모았으나 상식적으로 살인이 행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니체 철학에 끌어온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삶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모순성, 삶은 고통이다. 죽고 죽이고. 니체의 고통은 결여에 의한 고통이다. 디오니소스에는 과잉에 의한 고통이 있다. 디오니소스에서 보이는 복수, 잔인함, 비도덕성이다. 폭력의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 비도덕성이다. 그리스는 암흑을 경험한 특수성으로 그들에게는 뭐가 다르게 있다. 니체는 잔혹함에 직시한다. 그리스인은 잔혹함을 직시하고 풍요로움을 만들어 갔다. 삶은 갈기갈기 찢긴다. 그게 삶의 출발이다. 다시 태어나 재생이 된다. 출발점에서 파괴가 이루어 졌다. 파괴로부터 생을 이끌어 낸다. 삶을 자연으로 바라본 위대한 긍정성이다. 니체의 긍정은 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니체는 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Yes를 말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에서 긍정성을 뽑아냈다. 



서양은 왕이 살해되고 나서 신들이 생겼다. 정령들은 복수의 신이다. 서양문화에서 신은 인격화된다. 자연이 의인화 된다. 작물을 벨때 할망구, 영감 등으로 불렀다. 

동양에서 신(神)은 귀신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의 신은 의인화되어 있지 않다. 귀신은 음양의 작용이다. 음적인 귀와 양적인 신은 자연의 자취이다. 있었던 것에서 없던 것으로 가는것, 하지 양기에서 음기로 가는 것이 신의 작용이다. 계절의 변화에서 귀신의 자취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조상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식물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서양의 방식으로 신에게 인간의 특징을 부여하지 않는다. 

신화는 그리스, 북유럽에서 발달했고, 이 신들은 인간적이다. 그리스 신들은 인간과 똑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동서양의 차이가 뭘까. 우리나라에는 왕 살해 신화가 없다. 

살해된 신을 자기의 질서속에 집어 넣는가의 과정이 <황금가지>에 들어있다. 이렇게 무수한 신들이 기독교의 유일신으로 통합되었을까. 예수의 이야기도 이러한 구전들과 똑같다. 지라르의 원죄를 뒤집어 쓴게 그리스도이다. 집단폭행집의 희생양이 그리스도이며 부활로 재생된다. 프레이저는 가해자의 논리이다. 기독교는 왕의 살해 논리를 가져왔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불교가 좋다>를 보면 티벳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설명하면 놀란다. 티벳사람들은 어떻게 살해된 신을 섬기는가 하고 묻는다. 부처는 자연사하였다. 

전세계 대부분 종교 창시자는 자연사하였다. 그에 비해 그리스도는 젊은 나이에 죽으며 생이 드라마틱하다. 부처, 무함마드는 부활의 모티브가 없다. 기독교는 부활에서 역사가 생긴다. 이 차이가 뭘까? 여기에는 희생제의가 너의 죄를 대신한다. <황금가지>에서 오시리스가 디오니소스로 변형이 되었고 그러면서 생긴 것이 기독교이다. 불교도 다른 종교와 연결이 되기는 하지만 다른 신들과 공존하였다. 반면에 기독교는 모든 신을 흡수하였다. 기독교는 살해 당한 신을 섬긴다. 또한 내가 죽인 신을 내가 숭배한다. 내가 죽이고 부활하면 믿는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이 논리에는 너무 슬픈역사가 있다. 이는 서양의 비극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질의>

Q: 티벳의 소녀 신은 첫 월경 후에 버려져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데 이것은 인권 유린이 아닌가?

A: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권은 프랑스 혁명 때 생긴 추상적 개념이다. 인간이 평등한 사회가 있을까. 모든 인간의 차이가 없으려면 무하(본성이 없다)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이 미쳐야 한다. 지라르는 차이가 무하가 세계가 폭력의 세계이다. 그 사회의 사람들을 무지하다거나 인권을 이야기할 수 없다. 우리의 개념이 저들의 생각과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가를 보아야 한다.

Q: 가미가제와 희생제의의 개인은 신성성을 생각했을 텐데 그 차이는?

A: 사회 담론의 차원으로 희생을 영웅화는 그 행위는 사회의 도덕에서 나온다. 희생제의는 도덕에서 벗어난 자연과의 관계이다. 현재의 희생은 엄격한 사회의 도덕을 강요한다. 도덕을 강요하는가와 자연의 제의로서 참여를 강요하는가 차이다. 



<그리스 암흑기>

그리스 암흑기(기원전 1200년경~ 기원전 800년경)는 도리아인의 침략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부터 미케네 문명이 멸망하는 시기까지를 이르는 고대 그리스 역사상의 한 시대를 일컫는다. 이후 기원전 9세기경에 도시 국가가 형성되는 조짐이 나타난다.

고고학적 증거를 살펴보면 같은 시기에 동부 지중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문명이 붕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케네의 거대한 궁전이나 도시도 이때 파괴되거나 버려졌다. 또 취락의 규모가 작아지고, 수도 줄어든 것으로 보아 기근과 인구 감소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히타이트 문명은 심각한 분열을 겪었고, 트로이아에서 가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도시가 파괴되었다. 그리스에서는 문자를 쓰지 않게 되었다. 이 시기의 그리스 도기의 장식은 단순해졌으며 보통 기하학 무늬를 띄고 있다. 전에는 이 시기에 해외의 문명국과 모든 접촉이 끊기고, 문화 발전도 지체되었다고 여겨졌지만, 에우보이아의 레프칸디 유적에서 나온 유물을 보면 기원전 900년대부터 이 지역이 동방 지역, 특히 레반트 해안과 문화적ㆍ상업적으로 상당히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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