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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드문드문 알고 있던 바에 따르면 60년 내내 파우스트만 썼다는... 게 아니란 것은 알게되었지만 그래도 파우스트라는 작품 자체에 괴테라는 인물이 갖는 수많은 함의가 녹아있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를 지나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접어든 고전주의적 바탕 이에 그치지 않고 낭만주의적 가능성에도 눈을 뜬 괴테의 삶이 파우스트의 그 복잡다난함 속에 들어있는 듯이 보였다.

 

  물론 내 독서에서는 전혀~~ 이런 배경에 대한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 다른 거 읽는다고 하루만에 해치우기도 했거니와 수차례의 세미나를 거치면서 한 책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그 작품 하나로만 끝날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경험하게 된다. 이번만 해도 파우스트라는 작품 뿐만아니라 괴테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 그를 둘러싼 시대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 선생님이 제기한 쫄깃쫄깃(?)한 문제의식이 나오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나에게 일주일이란 시간은 지정된 텍스트 다 읽기도 벅찬시간인데, 깜냥이 좀 확충되면 따라하는 식으로라도 작가 라든가 시대에 대한 탐구는 병행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미나에서 접한 괴테의 이미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경계적 인물' 이라는 것. 정치적 행보를 봐도 고전주의에 두발을 다 담그고 있는 질서와 균형 위주의 사고를 가진 천재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낭만주의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격정과 장엄을 품고 있기도 한... 그리고 이런 이중성, 양가성, 경계성이 파우스트라는 작품속에서 그대로 표현된다. 그리고 뭔가, 아직도 아감벤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한 결과라고도 보여지지만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발흥에서 아감벤이 주권권력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라고 보았던 배제의 원리를 감지한다.

낭만을 규정하는 순간, 질서와 균형 전통이 창조되고 고전을 세우려면 그 반대의 격정과 본능 감정을 내걸어야 하는. 그 언어본위적이기도 하고 매우 정치적이기도 한 원리가 여기서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강독에서 제시된 프랑코 모레티와 루카치의 파우스트 독해는 매우 센세이션했다. 그 중에서도 결백의 수사학. 신의 허락하에 악마는 내기를 벌이고 이미 눈알이 뒤집힌 파우스트에게 허울좋은 계약을 걸어서 온갖 시험에 들게 한 이 모든 과오. 이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할 수 있을 것인가. 파우스트를 꼬신(?) 메피스토? 그래도 자기 식대로 상황을 만들어 사랑하는 여자까지 파멸에 빠뜨려버린 파우스트? 이 영웅이라고 보기에도 뻘쭘한 한 인간은 어찌보면 요즈음 법집행에서 그렇게도 문제가 되고 있는 만취자의 상태와 유사점이 있지 않을까. 행동만 보면 분명 했다. 그가 저지른 일이다. 하지만 심신불능의 상태라는 핑계, 처벌 곤란한 법리. 행위라는 건 단지 물리적인 표현으로만 나타나는 일인가. 여기서 행동하지 않는 영웅이라는 매우 아이러니한 파우스트의 성격이 도출된다. 그리고 더나아가 매우 불경스럽게도 그 책임이 애초에 내기를 허락한 주님께 있다는 상상도 가능해 지는 섬뜩한 해석.

 

  또 이런 결백의 수사학은 대항해시대라는 또하나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져 폭력을 자기 외부에 투사해 책임을 피하려는, 명백한 수탈 앞에서도 정의를 주장할 수 있는 유효한 논리를 제공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른다. 메피스토와의 계약은 괴테의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그 시대를 관통하는 유럽인들의 결벽적인 욕망, 그 표현에 다름아니었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자아비판 좀 하자면 난 책읽으면서 제리샘 말마따나 젊어지자마자 그레트헨 사로잡으러 가는 파우스트를 보면서 나도 이 젊은 날이 지나고 50대 아저씨쯤 되어서도 이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띄우기에 바빴다. 그리고 흘러간 젊음을 탓하겠지. 일년에 한두번씩은 헤까닥 뒤집혀서 후회하게 만드는 내 격정은

세월의 풍파를 맞아 어떻게 다듬어질까. 아니 다듬어지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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