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7.6.금 / EvE 길 위에서 에티카를 묻다 / 김사량, <노마만리> <빛 속으로> 후기 / 이선민

 

  EvE 세미나를 시작한건 5월, 그리고 지금 연이은 장마기간에도 여전히 나는 지금 세미나에서 다루는 텍스트들을 접할 때 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발제였지만, 매번 EvE 세미나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나에게는 거의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로 다른 시대들의 이야기들을 넘나들면서 ‘왜 저 이야기들이 (공감은 둘째치고.) 나와 어떤 지점에서도 만나지 못하는가’하는 것이 가장 답답했다.(그러니까 이 나이 때까지 살면서 겪는 경험들, 생각들이 그나마도 너무나 편협하고 좁다는 생각에서 드는 자괴감이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제 다양하게 살려고 애쓰면 되는 것을) 그래도 ‘발제문’이라 부르기 창피한 글, 그나마도 끝맺음조차 없었던 그 글을 세미나 때 읽었던 것은 내가 지금, 그런 상황에 말할 수 있는 정도가 그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찌질하지만 그래도 그게 내 자신이고, 내가 이 지점부터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선생님의 꾸중과 자기 좌절들, 그 쪼그라붙은 자의식들이 뭉텅뭉텅 버려지기를 바란다. 언젠가.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남은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반드시 조선적인 것을 규정하고 고집하는 것을 저항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조 세미나 때 마지막으로 얘기를 나누었던 부분이었다. 책으로 공부한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아직 모호하게 생각하는 탓인지 그 절박했다는 식민지 상황에서 글로서 저항한다는 사실은, 솔직히 말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저항하고 싶다면, 가족들과 함께 살며 글을 쓰는 안락이 그토록 간절하다면 총을 메고 나가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시간이 흐를수록 강렬하게 남는 것은 글과 같은 기록들이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당시만을 바라보았을 때, 김사량을 비롯해 당시의 글을 쓰던 지식인들 모두에게 글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 상황에서 자신을 살게끔 하였을까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 나 또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하면서도 ‘글’이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실감하지 못해서인지-

  어쨌든. 김사량의 글쓰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그 시대에 대한 나의 틀에 박힌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 여럿이 보는 앞에서 사람이 잔인하게 학살당하고, 마을이 통째로 불타고, 한밤중 자는데 헌병대들이 들이닥치던 그런 상황에서 저항하는 모습이란, 목숨을 걸고 오로지 저항과 독립만으로 몰입된 삶으로 그려진 이미지가 강했다. 안 그래도 <빛 속으로>를 읽으면서 이런 소설이 어떻게 당시에 아쿠다가와 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전혀 일본을 찬양하는 느낌 따위가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단지 조선인이 일본어로 쓴 문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반드시 피를 흘리고 총알과 칼부림으로 저항을 해야 투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글이라는 것은 어떻게 저항이 될 수 있을까. 상상을 초월하며 벌어지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글이란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 걸까. (여태까지 세미나에서 이걸 얘기한 건데 내가 이제서 드는 질문 -_-?)

 

  ‘조선인의 인간됨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어로 글을 썼다’는 한 글쟁이의 표현을 보노라면, 조선어로 조선과 일본의 현실을 드러낼 수 없어 일본어로 표현했던 김사량의 행동은 그만의 현실적인 저항방식이라 생각된다. 그는 그렇게 글을 쓰면서 스스로 분명히 경계한다. “가령 슬픔에 대해서나 욕지거리에 대해서도 그것을 일본어로 바꾸고자 하면 직관이나 감정을 비상하게 굴려서 번역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것이 되지 않으면 순전한 일본적 감각에로 바꾸어 문장을 만들게 된다. 그러기에 장혁주 씨도 나도 또 일본어로 쓰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은 작가가 의식하든 안 하든 일본적 감각이나 감정에의 이행에 나아갈 위험을 느낀다.” 라고. 완벽한 일본어라고도, 조선어라고도 할 수 없는, 독특한 언어로서의 저항. 굳이 그렇게 자기 분열을 감당하면서까지 글을 써야했던 이유가 뭐였을까 몹시 궁금해진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만큼의 삶에 대한 절실함이 있는지.

 

  너무도 평탄하게 살아온 나조차도 이 세상에 대한 불만은 몹시 많았다. 지금은 내 개인적인 약함의 문제라 그 어떤 것도 탓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내가 견디는 수밖에는 없어 스스로에게 밖에 화낼 곳이 없지만. 김사량에 대해, 그가 글을 쓰던 이유, -아마도 내가 식민치하의 삶을 막연하게 느끼기 때문이겠지만- 저항을 해야만 했던 이유들 같은 것이 몹시 궁금해진다. 더불어, 나는 왜 공부를 하려는 걸까. 소질에도 없는 글은 왜 쓰려고 하는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나에게도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존재할까. 따위의 허무한 질문들만 헛돈다. ‘그냥 하는 거지, 지금 하고자 하는 일에 충실하면 거기에서 해야 할 일들,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겠지’하고 다시 생각하며 후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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