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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사케르의 도발에 며칠 빠져있다가 문득. 얼른 정리하지 않으면 노마만리가 날아가버릴 것 같은 예감! 문장 만들기가 까다로워 구어체를 포기하고자 하니 양해 바랍니다.


  일단, 노마만리를 다 읽지 못하고 빛 속에만 읽은 상태여서 ‘찝찝했다’ 불철주야 스펙터클의 하이엔드를 자랑하는 인터넷이란 매체로 정중동의 미학인 책을 보려니 가뜩해도 정신 사나운 성질이 배겨나질 못했다. 한 쪽읽고 유투브보고 노래 듣고 서핑하고... 이러다간 책 몇 쪽 읽다 하루를 날리겠네 싶어서 쥐쥐치고 접었다. E-book의 처참한 종말을 조심스레 예견해본다. 종이책이여 영원하라.

  채운선생님이 강독에 앞서 책을 읽는 다는 것 그리고 그 자세에 대해 말해주셨다. 요새 계속 헷갈려 하고 고민스러운 부분이기도 해서 매우 긴장하고 들었다. 공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놓고 텍스트에 스며드는 일이라고, 작가의 상황 속으로 ‘육박해서’ 들어가려고 애쓰다보면 저자의 문제의식과 논리가 자신에게 스며들어 새로운 장이 펼쳐지게 된다고. 맞다. 어디서 들인 버릇인진 몰라도 책을 읽는 건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그래서 어느 지점에서든 딴지를 걸 곳을 찾아다닌다. 공감도 그 지점에서 멈추고 이해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이런 내 진단에 의거해, 당분간 참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 눈 딱감고, 그냥 받아들이는 거다. 텍스트의 논리, 상황을 최대한 깊숙히 빨아들이는 연습. 이해와 공감에 역랑을 쏟아붇고 정말 그 끝자락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볼 참이다.

  세미나에서 제시되는 생각거리와 주제들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덮어놓고 따라가기 편하진 않다. 이제껏 다분히 첨예한 윤리적 사안이라고 여겼던 쟁점들을 마구 뒤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제시대에 일본어로 문학을 한 김사량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조선어가 말살되는 시대적 한계속에서도 우리말로 문학을 한 인물이나 붓을 꺾어버린 인물들은 너무 당연히 저항적인, 올곧은 좀 나아가면 윤리적이라고 평가되고 일본어로 문학을 한 인물들은 또 너무 쉽게 친일, 변절자, 반민족 그러니까 비윤리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번엔 이 도식화가 출발점이었다. 

   조선인이면서 일본어로 글을 써야 했던, 또 그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심각한 고뇌를 안고 살아야했던 김사량의 삶에 비해 지금까지 그 ‘경계의 언어’들을 다루는 방식은 다소 거칠고 편협했던 것 같다. 우리말로든, 일본어로든 덮어놓고 일제를 찬양하거나 아예 글쓰기를 포기한 경우는 오히려 입장을 파악하기 쉽다. 하지만 김사량의 일본어 글쓰기는 조선의 식민현실을 일본인에게 낱낱히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나름의 ‘저항’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입장을 정하기 참 난처하고, 그래서 첨예하게 윤리적이다.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이중언어글쓰기에 따른 분열된 정체성(빛속에에서 하루오 엄마의 더듬거림 <향수>에서 무의식중에 일본어를 하는 주인공)은 작가로서, 나아가 한 ‘문화인’으로서 김사량이 절감해야 했던 자신의 실체였다. 루잉쭝과 주고 받은 편지.. 이거 선생님이 그렇게 읽으신 것인지 내가 훅 공감한건지 세미나 할 때 너무 짠했다..ㅠ

  그럼에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 작가라는 사명을 갖고 있는 자로서 니체가 말한 ‘그 극소의, 그러나 절대 제로가 되지 않는 가능성에’ 충실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대목은 내 삶의 자세를 점검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이런다고 뭐 달라지겠어? 어차피 안되는거야.’ 라고 생각될 때마다 의욕이 꺾이고 체념하는 나야말로 이런 절실한 사명감을 필요로 한다. 평소에 즐겨보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 현장에서 한 방청객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스님, 몸이 부서져라 북한 돕기 운동하고, 아프리카 난민들 도와주고 이렇게 강연도 하시는데 스님은 이렇게 하면 세상이 바뀔거라 보시나요?’ 스님 왈 ‘내가 그런 활동좀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습니까? 바뀌든 바뀌지 않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할 뿐입니다.’ 점점 이 말이 그냥 하는 말 같지가 않다. 그리고 오랫동안 날 아리송하게 만들었던 문제 ‘사람이 어떻게 욕심 없이 성취를 이루나, 무언가에 매진할 수 있는 능력은 결과에 대한 기대, 탐욕에 비례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욕심부려서 힘든건 그냥 감수해야되.’에 대한 입장정리를 할 수 있는 지점에 점점 다가서는 것 같다. 릴케는 궁금한 문제를 직접 몸으로 살아보라고 했는데, 머릿속에서만 대중없이 맴돌던 입장들이 공부를 거쳐 조금씩 조금씩 일관된 식으로 바깥을 향해 드러나려고 하는 나의 이런 상태가 릴케가 말하는 ‘몸으로 살기’의 본 뜻과 가까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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