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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연계성이 내 글쓰기의 문제이다. 글의 소단위인 단어. 앞의 단어와 뒤의 단어와의 만남에서 서로 어루러지지 못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나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걸까. 명확한 생각, 단어 상의 연결, 어렵게 이해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다.

 

 나는 글을 쓸 때 전체적인 구성을 세우고 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책을 읽고 생각할만한 문장에 표시를 한 후 재차 본다. 그 몇 번의 과정에서 평소에 생각한 문제나 생각하고픈 문제를 발견하고 떠오르는 대로 적는다. 그 과정에서 다시 떠오르거나 알고 있던 생각들을 연결시키면서 대략적인 방향만을 잡아간다. 특정 방향 없이 일단 헤집고 다니는 셈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방식에는 정석이 있을 리 없다.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의 끝에 머문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같이 타인에게 잘 읽히지 않은 경우에는 방식을 한 번쯤 의심해 봄직 하다. 명확하게 생각하기는 이때에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을 나누고 나누어 가장 작은 단위로 만들고 그 하나하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작은 하나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전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건 아니다. 각 생각에 흐르는 일정한 맥을(즉 말하고자 하는 바) 찾아내고 이를 토대로 글을 구성해 나아가야 한다. 실례를 보자.

 

 "서산대사가 묘향산 원적암에 있을 때 자신의 영정에 쓴 시입니다.

①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②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 책 ⌜강의⌟ 중

먼저 ①문장에서는 내용상으로 나와 저것이 분리되어 있다. ‘나’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나로 보자. ‘저것’은 일반적으로 나 이외의 어떤 대상을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렇다면 ①문장은 나 이외의 어떤 대상이 곧 나임을 뜻한다. ‘나’의 입장에선 나 이외의 어떤 대상에게 내 마음을 빼앗긴 상태다. 여기까지 일 단락 짓고 ②문장을 보자. 내용상으로 나와 저것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①문장과 다른 점을 찾아보자. ②문장은 ①문장처럼 내가 저것에 마음을 뺏기거나 저것이 나의 마음을 빼앗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저것이라는 문장에는 자발성이 엿보인다. 내가 저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다음에야 내가 저것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②문장의 주체는 나이다. 정리하면 ‘나’의 입장에서 저것을 대하는 마음의 상태가 바로 80년 전과 후를 구분 지을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명확하게 생각하기의 예를 보았다. 이와 같은 연습으로 보다 명확한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단어 상의 연결을 보자. 이는 단어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그림들을 하나씩 배치하여 점차 완성시켜 나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개미’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A는 집에 기어 다니는 생명체를, B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C는 중‧고교 동창 중 개미의 별명을 가진 친구를 떠올린다. 이어서 A는 집 벌레 - 바퀴벌레 - 혐오 - 박멸 - 곤충 약을, B는 작가의 다른 책 중 하나인 ⌜뇌⌟를 떠올리고 “위험은 실제 위험한 대상이 아닌 두려움에서 기인했다”는 대략적인 글귀를, C는 그 친구와의 최근 만남 - 그 친구의 직업을 생각한다. 단어 상의 연결은 이처럼 산발적이다. 중요한 건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적절한 배치. 그래야 이처럼 날뛰는 생각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어 상의 연결은 그림 전체를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뚜렷한 그림이 드러나게 된다. 정리하면 글의 대략적인 흐름에 맞게끔 단어들에 대한 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렵게 이해하는 방식인데 이는 간단하다. 작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생각하지 못한 채 단어의 상을 내 멋대로 그려 넣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기에. 앞의 세 가지 문제를 실천 항목으로 적으면, 먼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나를 비우고 단어와 문장을 그림으로 그려보면서 막히는 부분은 작게 나누고 생각하여 명확히 알고 넘어 간다. 이렇게 읽은 책의 내용은 내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과 연계시키면서 내 글을 쓴다.

 

 그런데 이게 ⌜빛 속에서⌟와 무슨 관련이 있기에 적었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책의 내용 보다는 김사량이 글을 쓰는 의식인 ‘(깨어진 언어일지라도)그래도 써야 한다는 것’. 이 의식에 동의하기에 위와 같은 글을 적을 수 있었다는 연결 고리 하나로 ⌜빛 속에서⌟의 후기로써 적는다. 이것이 내가 직면한 문제의식이로 김사량과 연관된 부분이다. 깨질 준비는 되어있다.

*다시 쓰는 김사량. 수요일날 작성하고 안심한 탓에 지금에서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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