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다'

 

 

  저 말, 너무 익숙하죠. 저는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도덕적 소양 확충을 위해 [한국윤리]라는 과목을 통해 한 학기에 걸쳐 저 명제를 도출해 내기 위해 필요한 문화적 역사적 증거를 배웠습니다. 당연히, 이해 안되고 수긍 안되고 배우기 싫었습니다. 막막하고 헛웃음 나오고 때려치우고 싶고... 제가 딛고 공부하는 토대를 계속 부정하는 일. 여차저차 시작하게된 전공과 마주하면서 한 일이 계속 그런 일이었습니다.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은 차오르는데, 학교에 거는 기대와 애정도 점점 구체화되는데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하는 체계로 아이들에게 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약파는 듯한'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걸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어떻게 인연이 닿아 군입대 전에 강학원에서 시작한 세미나에서 푸코를 같이 읽으면서  제가 배워서 학생들과 나누어야 할 체계(윤리죠)의 다른 가능성을 경험하고 또 나오자마자 딱 저에게 특화된 것처럼 보이는 세미나(EVE!!)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즐겁고 보람찹니다.

  

나의 조건, 나의 토대  그리고 내 운명을 긍정할 수 있게 가다듬는 것. 저에게 지금 이 세미나와 공부의 의미는 이 말에 한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에릭호퍼의 통찰과 같이 좌절하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가 되어서 대책없는 맹신에 빠져버리기전에...ㄷㄷ(요즘 읽고 있는데 정말 후벼파는 문장이 많습니다.)

 

민족주의, 민족, 민족문화 이 개념들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식민지, 국가주의 문화를 거치면서 범접할 수 없는 도그마와 같은 위치로 올라선듯 보입니다. 이 컨셉을 들이대면 모든 논의와 담론이 차려자세 취한듯이 단칼에 재배치되는 효과를 보기도 하고요. 그래서 국가가 전용하고 써먹기에 가장 적절했던 거겠죠.

 

세미나에서는 식민지 특유의 현실적 조건 때문에 민족주의가 자체의 토대를 획득하지 못하고 식민통치의 반테제로 형성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민족, 문화, 가치에 대한 모든 평가를 독점하고 권위적으로 해석해온 식민주의자의 횡포 때문에 민중의 현실과는 괴리된 '순수한 것' '본질적인 것'을 찾아 헤메는 이른바 민족주의자들의 노력을 파농은 경계했습니다. '한의 정서' '전통의 현대화' 등과 같은 익숙한 언표가 식민문화의 영향력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분석을 하실땐 음... 통쾌한 기분. 그런 언표가 정규 교육과정 속에 들어있는 곳에 있다보니 ㅋㅋ 왠지 나만 똑똑해진 느낌? 유치하네요. 증말 ㅠ

 

허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다' 이말은 전 책을 읽으면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아의 의식은 의사소통을 확실히 보장한다. 민족의식은 우리에게 국제적 차원을 보여주는 유일한 통로다P.278

다른 토대를 가진 존재와 소통하려 할 때 다른 말로 하자면 의사소통의 국제적 차원을 확보하려 할 때 스스로의 좌표를 명징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위의 언급을 해석해 본다면. 이른바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보여주는 비판 없는 추종이나 덮어놓고 쏟아내는 증오  또한 스스로의 문화적 의식적 바탕에 대한 사유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 색깔 없는 흰 종이에 무슨 색이든 물이 잘 드는 것과 같이..ㅎ 그렇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다’ 이 말도 무조건 우리 것이 제일 좋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한참 비틀어서 ‘네 바탕부터 확실히 다지고 다른 나라 가서 큰소리치렴’ 하는 뼈있는 말로 해석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스스로 부정하기 바쁜 교육과정을 옹호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작용에서 나온 무리한 시도가 아니길 바라며..


세미나가 끝나고 채운쌤을 비롯한 강학원 분들의 배려로 감이당 건물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몸을 뉘일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약 냄새 때문에 잠도 잘오는 것 같고,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자려고 누웠다 핸드폰을 놓고 와서 강학원에 헐레벌떡 오면서 바쁜 채운선생님을 붙잡고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선생님 지금 배우는게 너무 가지만 치는 것 같은데 줄기를 좀 잡는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물어봤습니다. 간단히 말해 강학원에서 하는 공부를 더 잘하려면 서양철학사도 보고 세계사도 보고 해야 되지 않겠냐는 질문이었는데요. 선생님의 깨우침도 듣고 감이당 돌아와 누워 생각하다 저도 어이가 없어서 피식피식 웃었어요. 아직도 저는 무릇 공부란 정말 찾으면 다나오는 교과서 하나 딱 놓고 모르는거 있으면 보충할 만한 참고자료로 하는 거라는 고3 싱크로율 100%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편견이죠. 지독히 끊기 힘든. 채운선생님은 듣고서 얼마나 기가차셨을까요 ㅋㅋ. 목표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건 다음시간에 채운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려고 합니다. 또 지독한 편견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럼 또 한번 피식 웃을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ㅎ


세미나 전반에 걸친 후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세미나 끝나면 집에 와서 혼자 정리하고 그러는데 이렇게 다른 분들 본다고 생각하고 쓰니 더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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