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부터 일어나 영화에서 동양사상의 원형을 찾으라는 하릴 없는 미션을 끝냈다. 학교 가기 전에 뭐를 해야 시간을 잘 보냈단 소리를 들을까 생각하다! 이브 후기를 올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빈서판.. 읽을 때 드는 생각은 각 쳅터 마다 어찌나 그렇게 비슷하던지. 진화생물학을 비롯한 여러 관점에서 인간행동의 특성을 서술하는 대목은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스티븐 핑커의 예외없는 결론. 빈서판이론을 지지한다면 이러한 설명은 가능하지않다, 는 점에서 항상 막혔더랬다. 그만큼, 암묵적이고 은밀하게 내장되어있는 전제이리라. 인간의 본성이 백지라는 믿음은.
토론 때 얘기하기도 한 내용인데, 나도 빈서판이론의 암묵적인 지지자였다고 이해되는 장면이 떠올랐다.
선생님들은 흔히 아인슈타인뇌비유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해봤더니 20%밖에 쓰지 않았더라 그러니 너희도 개발함에 따라 얼마든지 천재가 될 수 있다.)를 들어가며 학생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자 했다. 그러나 어느날 한 과학선생님이 공부를 꽤 잘했던 아이와 그 옆에 다소 성적이 낮은 친구를 놓고는 이 친구가 공부를 잘하는 건 어느 정도 공부를 잘할수 있는 머리와 자질을 갖고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네가 이 친구보다 공부를 못하는 건 아직 개발이 안되서가 아니라 공부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애초부터 다른 것 때문일 수 있다는 말을 하셨더랬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심히 당황스러웠다. '아니 저게 선생님이 할 소린가?!' 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다시 그 에피소드를 생각해보니 나도 흑인이 백인보다 지능이 낮다는 류의 말에 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 처럼 책읽고 공부할 역량이 좀 낫다는 걸 엄청 대단한 능력이거나 자질이라고 생각하는 전제를 갖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공부라해봐야 외우고 문제풀고, 점수올리는 것 밖에 안하고 있던 시절에 그것 좀 면 뭐 대단한 결격사유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테다.
실체 이원론에 대한 믿음은 빈서판 이론에 세트메뉴처럼 따라온다. 백지가 있어야 청정한 마음에 의식을 그려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케치 다되어있는 그림에 색칠만 하는 식이면, 의식, 자아를 그리 대단한 것으로 볼 이유도 없다. 실체이원론, 근래에 계속 빠져들게 되는 지점이다.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는 커다란 간극이 사고와 행동의 괴리라는 우리 전공 희대의 문제의식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왜 아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가. 도덕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행동하는 능력은 별개인가. 우리는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는가. 더 좁게는, 왜 나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가. 마음과 몸을 분리시키고자 하는 전제가 이 괴리를 점점 더 골깊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브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요즈음, 여기저기에서 스피노자의 주옥같은 언사들을 접하고 있다. 도대체 이 사람은 근대라는 좌표 어디에도 넣을 수 없는 인물인것 같다. 모든 사상가는 시대의 아들이라는 말에 이 스피노자를 예외로 넣어야 할까. 스피노자와 초기불교, 현대과학의 몸과 마음에 대한 입장이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세미나에서 보고 난 후에, 스피노자에 대한 이런 신비로운 의구심이 더욱 더해져 갔다. 다음학기에 에티카를 읽는다니, 또 벗어날 수 가 없겠구나... 그렇다고 벗어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ㅋ
더 쓰고 싶지만, 학교에 가야한다. 뭘 배우러 가는 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