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사이언스 타임즈에서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와 <슈뢰딩거의 삶>이라는 책을 가지고

대담을 나눴던 내용 중 일부분입니다.

양자론이 물리라면 차라리 그만두겠다고 나간 슈뢰딩거씨의 종교적 배경에 대한 내용도 간단히 나와있네요 (덤으로 그의 화려한 연애담도.. )

일단 참고로 읽어보시구... <슈뢰딩거의 삶>을 직접 읽으시면 더 좋을테구요^^

전체 글 내용이나 하이젠베르크에 대한 것도 궁금하시다면 여기로 http://crossroads.apctp.org/index.php

(그의 친구 우리의 파울리씨도 잠깐 등장...그리구 부분과 전체를 직접 보시길 추천~ 음... 번역은.... 70년대 한국영화를 만나는 재미로 읽으시면 될 듯^^;;)

 

---------------------------------------------------------------------

“슈뢰딩거, 양자 및 여자와 함께한 삶

서평자 / 이정민(KAIST 인문사회과학과)

동유럽을 여행해 본 적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빈(영어식으로는 비엔나)이 어떤 도시인지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으리라. 많은 동유럽인 들에게, 프로이드가 꿈에 대한 정신분석을 하기 훨씬 이전부터 빈은 꿈의 도시였다. 인류 문화에 무언가를 남기려면 빈으로 가야했던 것이다. 더구나 여기는 아직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던 세기말빈이다. 그러니 전쟁의 암운과 홀로코스트의 폭풍이 닥치기 전의 좋은 시절, 학문과 예술에서 모더니즘으로 불리는 온갖 창조적 실험이 만개하던 시절의 빈 말이다. 하지만 20세기 지적 문화의 상당 부분을 선도한 이 시기의 빈은 또한 히틀러에게 가난과 굴욕을 안기고 그의 반유대주의를 배태한 도시이기도 하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에 대한 황제의 관용 정책의 이면에는 인종주의의 편견과 부르주아적 위선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곳이 오늘의 주인공이 나고 자란 곳으로 이 도시의 빛과 그림자는 그의 삶에도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월터 무어의 슈뢰딩거 전기는 이렇게 한 과학자의 시대와 도시에서 시작한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과학자는 분명 제한된 장소와 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 존재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이 한 과학자의 연구 방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만일 과학이 보편적이라면 그것은 지역적인 연구 환경에서의 활동이 어느 순간 보편성을 획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빈은 단지 슈뢰딩거의 생몰지로서가 아니라 그의 물리학에도 매우 중요하다. 무어는 빈의 고유한 물리학 전통에서 출발해 파동역학이라는 물리학의 혁명으로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서는 한 물리학자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그 출발을 고립된 국지적 전통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미 슈뢰딩거의 과학적 조상은 오늘날의 물리학 교재에도 그 이름이 남아있는 19세기의 대가들인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이론물리학 쪽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루트비히 볼츠만이라고 할 수 있다. 슈뢰딩거는 통계물리라는 볼츠만이 개척한 분야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 사상까지도 이어받았던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세기의 전환기에 마흐와 볼츠만은 원자의 실재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서 볼츠만은 원자의 실재를 옹호함과 동시에, 감각 지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명확하고 세밀한 그림을 시공간 배경 위에 구성하는 것을 물리학의 목표로 삼았다. 시공간 모형을 중시하는 볼츠만의 이러한 유산은 나중에 양자역학의 해석을 놓고 슈뢰딩거가 코펜하겐 진영과 대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리학자들조차 초기 슈뢰딩거의 다방면에 걸친 작업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특히 그가 헬름홀츠를 잇는 색채론의 대가라는 것은 의외이다. 그런데 정작 오늘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주된 이유인 양자론 연구는 여기서 빠져 있다. 그가 양자론을 최초로 언급하는 것이 1917년이며 실제로 중요한 기여를 한 논문은 1921년에야 나왔다. 이때는 이미 원자 스펙트럼에 관한 분광학과 같은 실험적 성과와, 고전전자기학을 일반화한 보어의 대응 원리(correspondence principle)와 같은 이론적 작업을 결합하는 옛 양자론은 멀리 나아간 상태였다. 연구의 핵심 성과도 빈과는 거리가 먼 코펜하겐(보어), 뮌헨(좀머펠트), 괴팅겐(보른)에서 쏟아지고 있었고, 곧 어린 세대인 파울리와 하이젠베르크가 여기에 참여해 행렬역학의 꽃을 피우게 된다. 반면 슈뢰딩거는 1925년 아인슈타인 논문을 읽다가 그가 인용한 드브로이의 작업에 처음 눈을 뜨게 되어 물질 입자에 대한 파동이론을 구상하게 된다. 양자역학의 한쪽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파동역학은 그 뿌리에서 분광학이나 전자기학이 아닌, 통계역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슈뢰딩거가 처음 보인 대로 이렇게 서로 다른 뿌리에서 나온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이 적어도 수학적으로는 동등한 구조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물론 각 진영이 수학적 형식에 부여하는 물리적 의미는 매우 달랐고 이 때문에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 및 보어와 대립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무어는 슈뢰딩거의 연구방식에 대한 중요한 고찰을 하고 있다. 그것은 슈뢰딩거 자신이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곧 그는 한 분야의 연구를 개척하거나 선도한다기보다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져온 문제에 두 번째로 뛰어들어 종종 처음 이보다 더 세련되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드브로이의 작업을 이은 파동역학이 그러하며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알려진 양자역학의 역설도 1935년 아인슈타인의 논문(저자 성의 앞머리를 따 EPR로 알려진 논문)에 관한 서신교환 과정에서 얻은 힌트를 발전시킨 것이다. 또한 그가 이론의 실제적 적용보다 과학 이론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근본적인 원리나 개념의 문제를 파고드는 비상한 능력을 지녔다는 점도 특기할 일이다. 그의 이러한 능력은 비단 물리학에서뿐만 아니라 전공과 거리가 먼 영역에서도 발휘되었다. 이는 20세기 생물학의 혁명에도 일조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놀라운 책이다. 이 책은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생명의 본성에 대해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를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유전 암호, 음의 엔트로피, 질서 또는 무질서로부터의 질서와 같은 통찰이 가득한 개념을 발전시킴으로서 이후 과학 사상의 전개에 물리학에 버금가는 영향을 주었다. 그가 파동역학으로 과학적 조상인 볼츠만의 꿈을 이어갔다면 생물학에서의 업적은 식물학자이기도 했던 생부의 꿈을 잇는다. 적어도 학문의 폭에 있어서 슈뢰딩거와 필적할 만한 유일한 20세기 물리학자는 보어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둘 모두 학생 때부터 평생에 걸쳐 철학적 사유에 깊이 침잠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만약 슈뢰딩거의 과학에서 철학이나 세계관을 뺀다면 그 정수가 빠졌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슈뢰딩거가 자신의 세계관으로 받아들인 베단타 철학을 너무 쉽게 그의 과학과 연결시키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연결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슈뢰딩거는 개별 입자의 불연속적인 양자 도약을 파속의 연속적인 진동 방식의 변화로 이해하려 했다. 이는 자아 또는 개별 영혼은 가상이며, 순수한 사유만이 하나의 전체로서의 실재라는 베단타 철학과 통하는 것이다. 전쟁 직후 어려웠던 시절에 그가 읽었던 수필에는 이동하는 것은 파도 자체가 아니라 파도의 모습뿐이라는 비유가 등장한다. 여기서 이후 움직이는 입자는 파동 복사선 위에 솟아 있는 거품일 뿐이라는 드브로이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 나왔다. 무어도 결국 인정하듯이 베단타 철학의 통일성과 연속성이 파동역학의 통일성과 연속성에 반영되어 있다. 물론 파동역학에 대한 슈뢰딩거의 물리적 해석은 결국 실패했으며, 보어는 이를 과학적 정신에 위배되는 신비주의로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성에 대한 탐구는 이후 보어의 양자역학 해석에 대한 체계적 대안을 제시한 데이비드 봄에 의해 계승되기도 한다.

 

슈뢰딩거가 물리학 탐구를 통해 입자의 개체성이 사라지는 베단타의 세계관을 꿈꿨다면 여인들과의 연애를 통해서는 자아를 초월한 합일의 열락을 꿈꿨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다채로운 연애행각은 물리학에 관심 없는 독자들에게도 흥미진진하며 그의 개인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이는 또한 슈뢰딩거라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죽기 두 달 전 작성한 내 삶의 스케치에서도 슈뢰딩거는 여자관계에 대한 언급을 빼면 너무 공허한 요약이 될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무어도 이를 인식한 듯 그를 사로잡은 여인들과의 관계를 솔직히 그리면서도 슈뢰딩거가 성적인 정복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방탕아는 아니었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에게 가치 있는 것은 낭만적 열정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부남이었던 그가 파동역학의 수수께끼를 고심할 때 수학 과외를 해 준 십대 소녀의 마음을 함락시킬 방법을 동시에 고심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관습적인 도덕기준으로는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책 전체에 걸쳐 십여 명에 달하는 슈뢰딩거의 여인들 중 세 명의 다른 여인에게서 세 딸을 얻었다는 것, 정작 아이가 없었던 부인은 이를 알고도 질투나 막장드라마 없이 때때로 남편의 외도를 배려하기도 했다는 것, 그 부인도 취리히 시절 슈뢰딩거의 절친 이며 위대한 수학자인 헤르만 베일의 연인이었다는 것 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적어도 성도덕에 관해서는 슈뢰딩거의 시대가 더 건전하고 관대했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우리 시대라면 그들 나름의 선택을 존중하기는커녕 도덕의 이름으로 낙인찍어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리지 않았을까?

 

무어는 슈뢰딩거에 대해 열정적이고 시적인 사람이었다는 총평을 내린다. 실제로 슈뢰딩거는 평생 연애시를 비롯한 시작을 즐겨 했으며 말년에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폭풍처럼 거친 야생의 그것이라기보다는 문명으로 세련된 타오르는 촛불과 같은 것이었다. 젊은 시절, 전쟁으로 불안했던 몇 년을 제외하면 그는 평생토록 안락한 삶을 누렸다. 또한 유복한 가정의 독자로 길러져 세계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믿음 또한 확고했다. 여인들처럼 세계사적 사건들은 그를 스치듯이지나간다. 전쟁으로 인한 16년에 걸친 아일랜드 망명 시기조차 매우 멋진 기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유럽을 휩쓴 양차 대전의 틈바구니 가운데에서도 슈뢰딩거는 여인과 극장, 술과 파티와 같은 세속적 향락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지 않은 이유도 금주법에 의해 성공적으로 건조된환경이 한몫했을 것이다. 물론 20세기의 지적 양심을 이끈 과학자에게 적극적인 현실 참여나 정치적 발언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그런 독자들을 슈뢰딩거는 철저히 실망시킨다. 특히 나치에 의한 오스트리아 합병을 용인하는 편지는 뒤늦은 후회에도 불구하고 슈뢰딩거 생애의 오점으로 남는다. 하지만 전체로 보아 슈뢰딩거의 삶은 그런 군데군데의 오점을 가리고도 남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한 편의 그림이다. 아마도 그치지 않는 과학적 탐구와 철학적 고민이 그가 그저 여성에 탐닉하는 딜레탕트로 타락하는 것을 막아주었을 것이다. 물론 그가 파동역학으로 구현하려 했던 베단타의 이상은 물리학의 현실 앞에, 여인을 통해 추구한 초월과 합일의 이상은 이기적 욕심 앞에 각각 실패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실패마저, 평생토록 안온한 생활마저, 오히려 그의 적극적인 성취로 봐야 하지 않을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4.2개강] 다시, 노동을 사유하자 4 jerry 2015.02.03 2717
220 지금까지 양자론을 정리하고 싶으시면.. 그녕 2012.11.04 2891
219 [EvE] 다음주 공지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3-4부 읽습니다~ 효정 2012.10.30 2862
218 [EVE] 빈서판 1회차 후기 인석 2012.10.30 2295
» 슈뢰딩거에 관한... 그녕 2012.10.29 3723
216 [eve] 지울 수 없는 흔적(10/22) 후기 금인하 2012.10.29 2805
215 [EvE] 다음주 공지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읽습니다~ 효정 2012.10.23 5117
214 [EVE] 2주차 지울수없는흔적 후기 인석 2012.10.19 4646
213 <지울수없는흔적>의 저자 제리 코인의 인터뷰입니다. file 장료 2012.10.17 4292
212 [EvE] 다음주 공지 제리코인의 <지울 수 없는 흔적>4~9장 읽습니다! 효정 2012.10.17 4538
211 [이브세미나] 12/10/15 '지울 수 없는 흔적' 후기 택원 2012.10.16 4534
210 [EvE] 다음주 공지 제리코인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읽습니다~ 효정 2012.10.09 3231
209 [이브세미나]이번 주 원일샘 공연보러가시는 분들 보세요! 태람 2012.09.17 3915
208 EvE 시즌2 개강 [고대 그리스, 서사와 철학의 탄생] (10월 8일 개강) 채운 2012.09.02 19560
207 [EvE세미나]공연 관람 및 엠티에 관하여 file 태람 2012.09.02 5134
206 [EvE] 후기 효정 2012.08.28 4663
205 [EvE] 1기 에세이& 뒤풀이 공지 장료 2012.08.21 2853
204 [EVE] 달라이라마자서전 후기 인석 2012.08.16 4155
203 [EvE]다음 주 공지 이반 일리히의 <절제의사회>읽습니다. 장료 2012.08.14 3471
202 [EvE] 다음 주 공지 [달라이라마 자서전 '유배된 자유']를 읽습니다~텐진 갸초 장료 2012.08.07 3211
201 [eve] 파우스트 후기 수영 2012.08.03 277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