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주에는 로렌스의 <무의식의 판타지>를 읽었습니다ㅎ 처음에 읽을때는 사과스러움을 말한 로렌스가 아닌 것 같아 정말 낯설었습니다. 세상을 느끼고 감각하는 방식을 로렌스의 관점에서 보았는데요, 제목처럼 그는 무의식에 대해서 주목했습니다. 19세기 당시 무의식은 프로이트적 해석이 주류였는데요, 무의식은 의식이 잠든 상태이자 억압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의식이라는 것 또한 몸(생리)과 분리된, 즉 신체성이 결여된 두뇌적 의식이라고 할 수 있었죠. 무의식 판타지 서론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기회를 주었다는 그릇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완벽히 고립된 개체, 그리고 어떤 사회적으로 부여된 표상에 갇힌 채 소통하지 못하는 의식이자 지식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로렌스는 여행을 통해 인디언 고대문화를 접하면서 가지론적 세계를 넘어서는 불가지의 영역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는 무의식의 세계를 개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우주(전체성)와 소통 교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책에서도 태양신경총(자아 긍정)과 가슴신경총(타자-자아확장)의 교감에 대해서 강조하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음양의 양극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그러한 개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우주와 교류하면서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불의 속성이 두드러진다면, 그것은 자신이 불의 속성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음적인 물과 화합했을 때 불이 중심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즉 다른 성과 교걈할 수 있을 때. 타자가 아닌 다른 여러 자아(에너지, 기)들과 함께 상호작용할 때 자신의 주체성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무엇'으로 고정된 개체 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아가 아니라, 자기가 행위하는 순간의 모든 에너지들의 역동적인 양상이라는 것. 인간을 혹은 자신을 어떤 무엇으로 규정지으려고 하는 보통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로렌스의 생명이란 것이 '아무것도 아니네'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유를 받아들이기에는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거지?란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으니까요. 로렌스야 그렇다쳐도, 당시 지식인들이 프로이트식 해석을 믿고 다르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상상력의 끝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토론을 하면서 우리가 프로이트적 전제를 바탕으로 생각을 전개해나가고 있고 그것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 또한 알게되었습니다. 휴휴
이런 의식에 반해 앎속에 신체성을 복권하고자 피의의식을 강조한 로렌스나 니체, 카프카 같은 탈근대적인 작가들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갑자기 새삼스레 놀랍게 느껴집니다. 무의식과 생명.. 읽을때는 재미없고 이해할 수 없었는데..어렵지만 찌르르한 뭔가가 있네요
"우리와 우주는 하나다. 우주는 거대한 살아 있는 신체고, 우리는 여전히 그 부분들이다."
이젠 감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러한 느낌들을 끌어모아서 에세이에 떼려 넣어야 하는데...막막합니다.
그래서 채운샘께서 에세이에 대해 한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몸과 마음'이라는 주제를 붙잡고 쓰는 것!
도대체 정신과 육체, 나의 마음과 몸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윤리적 문제를 어떻게 제기하며,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둘째, 책에 대한 '서평'!
지금까지 세미나에서 읽었던 책들 중 2권을 짝지어서 자신만의 중심주제를 뽑아 마음대로 서평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렵군요...;;
그리고 매우 늦은 다음주 공지!
다음주에는 프랑코 베라르디, <봉기>(갈무리) 읽습니다!
발제는 병철오빠와 택원이! 벌써부터 발제가 궁금해지네요ㅎㅎ
그럼 다음주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