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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11/ '무의식의 환타지‘ 발제/ 이현옥

 

죽음을 품지 않은 삶

 

 

“인간행동에 실제 표준형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일차로 각자의 핵중추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내적필요에 의존하고 이차로는 그의 환경에 의존한다. 사람이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존재의 방법에는 온갖 종류가 있고 완전한 인간이란 없다. 인간이란 그의 환경에 대해 진정으로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해 가며 그 자신 이외의 것은 될 수 없는 것이다.” p50

“자신 외에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주거나 다른 사람의 죽음을 대신 죽어줄 수 없다. 또한 누군가의 영혼을 구해주거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도 없다. 우리는 그저 가만히 소용돌이치는 세상의 거짓 위선의 광란을 무시하면 된다. 자기 영혼의 고요와 고독 속으로 고개를 돌려 그 조용함 속에서 자기 자신의 진정한 영혼인 성령과 함께 하는 것이다.”p164

 

로렌스는 두 가지의 전제 속에서 이 글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우주에는 믿을 만한 오직 하나의 단서가 있을 뿐인데, 그것은 각자의 생명이며 그 생명의 내부에 존재하는 각자의 영혼이라는 것’. 또 하나는 ‘우주에서 다른 힘들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힘은 없으며, 거대한 우주의 힘이나 역학적 원리는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알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이런 얘기가 된다. “우리를 지배하는 법칙이란 없다. 나에게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는데 그것은 ‘나는 나’라는 것이다.” 우선 제대로 자기 자신이 되어봐야 하고, 그 다음에라야 우리의 정신은 다른 것에 활력있게 대응하고 적응하며 제대로 된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도 있다!( “순수한 도덕성이란 본능적인 적응으로서 모든 상황에 있어 정신이 다른 것에 활력있게 감성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다”p86)

결론부터 얘기하긴 했지만 사실 우리는 자기자신 말고는 절대로 다른 것이 될 수가 없다. 우리의 신체는 우리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많고도 다양한 것들이 일정한 운동과 정지의 비율 속에 만나 조성된 복합체이다. 그러니 각자가 모두 자기만의 비율(리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 고유한 리듬에 따라서 각자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도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그 필요가 핵중추를 통해 표현되는 것이 바로 로렌스가 얘기하는 ‘무의식’일 것이다. 이 무의식 속에서 형성되는 충동과 욕망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뿌리이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며 실제의 인간이게 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란 자기 자신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무의식을 외면하고 소위 정신이라는 것-과학과 온갖 종류의 사상과 관습, 고상한 목적과 이상주의 따위로 진정한 무의식의 출구를 틀어막고, 그 외부에 맞추어서 자신의 의식과 정신을 새로이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인류가 감염된 가장 무서운 세균이 개념이다. 이것은 학교에서 뇌에 주사로 주입되고 신문의 수단으로 보급되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는 끝나게 된다. 오늘날 고통의 원인은 단순히 머리에 주입된 관념이 마치 미친 벌레처럼 날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 자신의 동적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모든 사상은 치명적인 장애물이며 진정한 개인의 활동을 억압하는 원인이며 정신적 존재에 혼란을 야기시킨다. 또 이상적인 것으로 인정받은 어느 특정 정열이나 욕망은 즉시 독성으로 변한다.”(p89,92)

 

그리고 이렇게 온갖 외부의 개념과 이상주의에 의해서 ‘괴물같은 자의식’이 만들어진다.

로렌스가 자의식 앞에 쓴 ‘괴물같은’이라는 표현은 얼마나 적확한가! 자신의 본성과도 경험과도 상관없이 그저 그럴듯해보여서 받아들인 것들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자신의 것(동일성)으로 삼고 그것을 채우거나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의식이다. 그 자의식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유지하고 실현하기 위해 표현되던 인간의 충동과 욕망은 외부의 대상에 대한 욕망으로 전도된다. 또 인간은 미래에 대한 창대한 목표와 이상을 세우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그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근대적 주체로서의 자아! 그것이 과연 ‘실제적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고 로렌스는 묻고 있다. 그 괴물을 키우면서 “우리는 신경쇠약증에 걸린 존재로서 일생을 속태우며 살아가는데, 그것은 진정으로 살아본 것이 아니므로 죽음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p95)

그러고 보니 운동과 등산을 비롯해서 몸에 좋다는 온갖 것을 무조건적으로 하고 무조건 찾아 먹는 사람들, 온갖 방식으로 미시권력에 의해 주체화되어 욕망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죽음을 두려워해서 정작 그 죽음을 자의식처럼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삶은 언제나 이미지였으므로 비록 지속으로서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는 해도 진정으로 삶을 통과해본 적이 없는 셈이고, 따라서 경험하지 못한 삶에 대한 두려움과 미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기의 삶을 힘껏 살아본 사람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삶 속에 죽음을 품지 않는다. 로렌스는 ‘숲에 온갖 종류의 나무가 있지만 그 중에 몇 그루만이 사과열매를 맺듯이, 단지 소수의 사람만이 살아있는 충동과 반응을 정신적 의식으로 발전시키고 승화시킨다’고 하였는데, 바로 그런 사람이 지배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자신에 대한 진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죽음을 품지 않고 사는 자일 것이다. 붓다처럼, 에피쿠로스나 루크레티우스처럼! 루크레티우스가 ‘사물의 본성’의 마지막에 했던 얘기들(로마에 흑사병이 돌 때의 처참한 상황에 대한)은 한 치의 죽음도 내부에 품고 있지 않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닐까? (그래서 내게도 그처럼 쿨하게 느껴졌던 것 같고).

아무튼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데 있어서, 또 관계(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를 맺는 데에 있어서 로렌스가 줄곧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자의식을 품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 자신’이 되라는 얘기인 듯하다. (심지어 그는 가짜가 되느니 (어떤 ‘~주의’보다는) 차라리 정열후의 죽음이 더 낫다p209고 얘기한다). 그의 얘기가 하도 매력적으로 또 간절하게 들려서(절대 호소하는 문체는 아닌데도...) 남녀의 역할이나 性에 관해 논리적으로 약간 무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조차 나는 다 이해하기로 했다!^^

생명의 기운! 그것은 의지로 찍어눌러서 만들고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있을 뿐이고 그 생명 사이를 흐르는 기운이 있을 뿐이다! 너는 너일 뿐. 나인 척 하지 말고, 열렬히 너 자신을 살아라!

“해야할 일은 딱 한가지가 있는데 그건 독가스보다 더 힘든 것이다. 그건 사랑을 그만두는 것이다. 자비로워지고 좋은 의지를 갖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그냥 그만두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깨끗한 잠자리를 주되 사랑하지는 말라... 이제 그들의 길을 스스로 나서도록 내버려 두라...홀로 조용히 인간의 품위를 지키고 사랑-의지의 소돔 덩굴에 열리는 욕망과 자애, 헌신 따위의 야수같은 독가스 사과 같은 점잖지 못한 모든 것을 버려라... 그리고 당신과 똑같은 선택을 하고 그것을 지키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까지 당신의 영혼 안에서 조용히 기다려라.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반은 카인의 모습인 위험한 모습이고 반은 아름다움의 집합 같은 모습! 그러면 당신 둘은 새로운 사회의 새 핵이 될 것이다. 만세!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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