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를 하면서 가장 멘붕했던 책이었습니다. 미학, 정치 같은 개념어들이 하나도 안잡히니까 무슨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나마 토론하고 강의들으면서 조금은 정리가 된거 같아요. 제가 나름 정리한 내용을 써 보겠습니다.
미학은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하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는 잣대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예술작품을 볼 때, 우리는 감성의 분할을 통해서 감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각자의 감성을 나눠놓은 분할선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좋다, 나쁘다, 아름답다, 정치적이다 등등.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머리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주는, 혹은 엄청난 불편함을 주는 작품(어떤 것)을 만났을 때입니다.. (채운쌤은 낯섬 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이 때 바로 감성의 불화와 무질서가 생겨납니다. 그리고그 불화에서 감성의 분할선이 파괴되고 그렇기에 미학또한 재구성됩니다.
여기서 미학이 정치적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어떤 것이 정치적이다, 아니다를 나누는 것 자체를 랑시에르는 거부합니다. 분할선을 통해서 감각하고, 또 그 분할선이 깨지는 그 자체에서 그는 정치를 얘기합니다. 정치적인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분할선으로 감각하기에 모든 것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고, 어떻게 분할선을 건드리느냐, 즉 얼마나 불편하게, 멘붕하게 만드느냐가 됩니다. 고로 예술의 재구성은 이제 필요없습니다. '요즘노래가 노래냐' 라는 말을 할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분할선을 뛰어넘는, 그 선을 뒤흔드는 것을 찾는것이 중요하겠지요.
저는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났습니다. 그가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하자 누군가 '왜 달리느냐?' 하고 묻는데 주인공은 '그냥 달린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달리다 '달리고싶지 않다. 그만 달려야겠다' 하고 그만 달립니다. 아무 의도도 없이 달렸지만 그것은 가장 정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술적이었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분할선을 통해서 감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할선을 깨뜨리는 것은 무한히 가능하겠지요. 아직 둥실둥실 뭉게구름같습니다. 감성의 분할 자체가 정치적이기때문에 모든 것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맞나요?)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 예술적인 것을 찾을게 아니라 분할선을 깨뜨리는 낯섬을 만나기. 으아 잘모르겠습니다. 후기가 많이 늦었습니다. 추석연휴에 홀려서 깜빡했습니다.. 다음부턴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포레스트 검프가 왜 정치적인지 좀만 더 이야기해주어~0.0 난 갠적으로 <무지한 스승>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음. / 낯섬->낯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