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종교”란 주제. 흔하게 접할 수 없는 공부주제여서 흥미롭기도 하고, 어렵고 난감하기도 했다. <세계 종교 사상사> 발제 준비할 땐 특히 그랬다. 이 광범위한 내용 중에서 뭘 빼고 뭘 넣어야 하지? 이렇게 난간할 때가! 10장짜리 발제문을 들고 난 몹시도 부끄러웠더랬다. ^^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세미나가 끝났다. 세계의 수많은 신화와 종교들을 대략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엘리아데의 <세계종교사상사> 3권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될까. 1%? 그것도 안 될지도. 읽을 때는 숨이 턱턱 막히더니 지금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매우 뿌듯하다.^^
공통과제에도 썼던 얘기지만, 세미나 하면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신화, 종교, 사상가들이 무지하게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내가 얼마나 좁은 세계 속에 살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인간들의 삶이 시작된 이래로 신화 혹은 종교가 없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채운쌤 말처럼, 인간은 자신의 필멸하는 삶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상을 초월한 세계, 인간을 넘어선 존재, 죽음 이후의 삶을 끊임없이 상상해내고 그것들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여기게 되었는지도. 삶의 도피처로써 말이다.
구석기인들이건,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건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 품었던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도대체 뭔가? 인간은 어떻게, 왜 세상에 태어나서 먹고, 자고, 싸고, 사랑하고, 싸우고, 고통받고, 병들고, 죽는가? 도대체 왜!왜! 이런 질문들 앞에서 인간들은 나름의 답을 구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우주 안에서 자기의 위치를 가늠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바로 신화와 종교로 표현된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신화와 종교는 인간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태도와 긴밀히 연결된다. 그러나 어쩜 그렇게 많은 인간들이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며 살아왔는지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신화와 종교의 역사가 단선적으로 변화․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이 점이 흥미로웠다. 국가와 종교의 결탁으로 종교가 제도화되는 순간, 국가에 대항한 종교적 흐름도 동시에 있었다는 사실. 제도화된 종교는 지배자의 통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데 이용됐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복종하는 신민들을 만들어냈으며, 신의 이름으로 적을 응징했다. 그러나 제국의 형성기에 붓다는 자기 자신과 법을 등불삼아 스스로 깨달으라고 가르쳤고, 예수는 “누가 네 이웃이냐?”고 물으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붓다와 예수는 잔혹한 세상을 가장 잔혹하지 않은 방식으로 대항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이 점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혁명성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화와 종교를 통해 신비적이고 황홀한 무언가를 바라지만, 붓다와 예수를 보면 “자신의 이성이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이나 규율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태도”(폴 발레리)야말로 종교적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가르쳐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런 태도는 톨스토이처럼 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겸허한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세미나가 끝난 지금, 난 다종다양한 신화와 종교의 세계를 정신없이 여행한 기분이다. 이젠 종교적으로 산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음미하면서 읽어보아야 할 때인듯 하다. 이반 일리히, 간디, 시몬 베이유...등등. 이 종교적 인간들이 다음 세미나에서 함께 만날 사람들이라 한다. 이미 만나본 사람도 있지만, 그들의 삶이 전하는 울림이 다시금 그립고, 궁금해진다.
다음번 세미나도 몹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