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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28을 넘긴 새벽 4시 30분 권영은 다시...

 

오늘도 수많은 클릭질을 하다 컴퓨터를 끄고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눈이 말똥말똥. 몸을 이완하고 기억 없는 밤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갈수록 정신이 또렷해지며 낮에 해결되지 않던 감정의 뭉치들이 비로소 차분해진다. 아울러 엉클어진 생각들이 자신의 길을 알아서 찾아가고, 이합집산 끝에 하나의 글로 완성될 조짐을 보인다. 벌떡~ 급한 마음에 컴퓨터 전원부터 눌러놓고 불을 켠다.

시원히 풀어내지 못한 생각들이 몸에 고스란히 남아, 그것도 내 취약부분인 배와 허리로 집중한 탓에 정자세로 의자에 앉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번엔 '잉여'의 시작은 '머릿속'이 아닌 '몸'부터다.

 

나는 자랑인지 아닌지 모를 얘기를 하고 다녔다. "살이 금방 찌고, 금방 빠지는 체질이야"

 

누구나 그렇겠지만 살이 찔 때는 참으로 불편하다. 평소보다 뭘 더 먹은 것은 아닌데 흐물흐물한 살이 부어있어 몸이 부댖기고, 무기력해진다. 동의보감 내경편에서 찾아본 내 증상은 바로 '담'이다. '손이 저리고 온몸이 스물스물 하면서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고 혹 가슴과 배 사이에 2가지 기운이 서로 얽힌 것 같기도 하고... ' 그 중 담음에 대해서는 이렇게 나온다. 담음이란 물이 장위에 머물러 있어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을 말하는데 갑자기 살이 찌기도 하고 여위기도 한다' 억울하게 붙은 살들의 정체는 바로 담음이었던 것이다. '가끔 습담이기도 하다. 몸이 무겁고 힘이 없으며 노곤하면서 나른하고 허약한데는...' 담궐, 이것도 내게 해당한다. 얼마전 술을 먹고 텐트에서 자다가 기가 막혀 혼났다. 담궐은 속이 허할 때 추위에 감촉되어 담기가 막혀서 생긴 것인데 이때에는 손발이 싸늘하고 감각이 둔해지며 어지러워 넘어지고... 란다. 마치 청거북이처럼 초록색 텐트속에서 급히 목을 빼 숨을 쉬었으며 온 몸을 세게 두드리느라 아직도 멍이 곳곳에 남아있다. 집에 돌아와서야 다시 몸이 날씬해진 것. 집 떠나면 고생이라던가.

 

그런데 이 담은 생각의 찌꺼기란다. 그리고 담이 만병의 근원이기도 하고. 결국 스물스물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담고, 기를 막아버리는 담도, 온 몸에 물처럼 밍글밍글 돌아다니는 담도 내 생각의 찌꺼기, 즉 잉여들인 것이다. 사주를 너무 주어 섬기는 것 같아 꺼려지지만 내게 과한 인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느 순간 사건 보다는 그 뒤의 해석만 무성하고 마는 행로에서 담은 늘 따라왔다. 그것을 안 뒤 '담'이 생겼다는 말이 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증거 같아 부끄러워졌으며, 요가로 '담'을 제어하기에 나섰다. 또 다른 방법은 화 기운이 부족해 물이 밍글밍글 돌아나니는 것 같아 몸을 따뜻하게, 요즘같은 더위에는 더위를 즐기려 애써본다. 어디까지나 애쓰지만 쉽지 않다. '습' 이 내게는 또 하나의 위협이라서.

 

과거 담을 알기 전,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 전, 나른함과 무력감을 치료하고자 나름 유명하다는 병원의 그것도 한 달 전부터 예약해야 겨우 만날 수 있다는 의사를 지인을 통해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의사는 허망하게도 한 장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 보고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이미 아무런 증상이 발견되지 않은 수십만원의 건강검진 끝에 나온 진단이라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 치료 역시 어이없었는데, "자, 몸을 따뜻하게 데운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실제 몸이 따뜻해지면서 (조잡하기 짝이없는 컴퓨터 화면의) 해가 떠오를 거예요" 이거였다. 그러고는 또 수 만원을 받아갔다. 결국, 나는 그 당시 120점 만점 중 100점을 넘는 우수한 성적으로 '우울증 환자 임상 실험 대상자'도 되어 자하거(태반 약)를 공짜로 먹는 혜택까지 누렸고 애써 해를 떠올리다 결국 단전호흡이 낫겠다라며 의사를 약 올리고는 그 병원을 떠나게 되었다.

 

그 의사는 우울증을 왜 앓았는지는 물어볼 생각도 없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의사 앞에서 몇 마디 하소연이라도 할라치면 '왜 내말 안 듣고 약을 안 먹어요! 그러니~'하며 호통을 쳐댔다.) 내 몸이 시도 때도 없이 부었다가 줄어드는 그 모든 증상은 오직 스트레스 탓으로 돌리고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라 했다. 내가 스스로 치료해 보겠다고 병원을 박차고 나온 그 순간이 나의 우울증 치료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회복하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 가 가장 좋은 치료법 아닌가.

 

결국, 등산과 요가, 산책으로부터 부은 몸을 가라앉히고 법은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복잡한 머릿속 이건 영 쉽지가 않다. 담백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려고 ... 그런 남자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한참을 화를 내며 논리적이든 아니든 숱한 말을 쏟아내면 상대는 그런다. '아. 미안한데... 전화가 잘 안 들려 못 들었어~다시 말해줄래?' 피식~ 산책을 하며 산이 정화를 해 주듯 그 친구는 정화작용을 해 준다. 한참 짜증에 비난을 퍼부으면 웃으면서 '그렇네~'하며 내 말에 동의해 버린다. 싸움이 되질 않고 비난한 나만 바보가 되는 순간이다. 아니면 나의 비난이 공중에 날아가 버린다. 피식 웃는 속에. 담 역시 쪼개지고 사라지고 날아가 버리는... 연애는 제대로 된 치료란 말인가. 내게 부족한 화 기운을 화를 내든, 웃음을 내듯, 분출해서 꿉꿉한 마음을 바싹 말려준다고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동의보감에서 담음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도 이렇게 나온다. 비위를 든든하게 하고 비습을 마르게 하는 것이 치료의 근본이다. 담을 치료할 때에는 먼저 기를 고르롭게 한 다음에 담을 체히고 삭게 해야 한다. 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화에 속한다.... 얼마간 이 친구를 가까이 해야 할 모양이다.

 

살이 빠질 때도 있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음식을 거부하다 자연스레 다이어트가 되고, 그러다 보면 몸이 가벼워진다. 특히 굴곡 없는 쭉 빠진 몸매의 주범인 허리, 뱃살은 이참에 날씬해진다. 고민으로 며칠 굶었더니 친구가 그런다. "피부가 좋아졌는데!" 속이 자주 더부룩하고 배꼽 밑이 딱딱하게 아파 약국을 찾을 땐 약사가 그런다. "굶으세요~" 속을 비우는 것이 내게는 이로운 것?

음식을 줄이라는 말이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동의보감 내경편의 구절에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마음 빼고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 시대, 음식과잉으로 인한 병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처방에서도 이런 '비움의 미학'이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동의보감의 처방은 '빈속 처방'이 종종 나온다. '설사에는 ... 등등을 돌소금 가루 2g을 풀어서 따듯하게 하여 빈속에 먹으면 곧 낫는다' 라거나 대하를 치료하는 법에서도 '빈속에 뜨겁게 하여 먹는다. 빈속에 데운 술로 먹는다. 빈속에 술로 먹는다' 등 빈 속에 먹는 처방이 자주 눈에 띈다. 고민거리가 있을 때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오히려 내 몸을 위한 조절이 아닐었을지.

 

그러나 우리는 약국에서 약봉투를 받을 때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 식후 30분 후에 드세요" 이 말의 뜻은 음식이 위를 어느 정도 지나간 뒤 약을 넣어 그 효과를 높이고자 하는 의미와 잊지 말고 약을 챙겨먹으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밥을 든든히 먹어야 독한 약도 잘 견딜 수 있다고 하여 항암치료를 받는 이들은 쇠고기를 그렇게 먹는다고도 들었다. 약을 먹기 위해서. 늘 우선순위는 음식 -> 약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우선순위나 그 처방이 바로 그 부위에 집중되지 않는다. 약 뒤에 음식이 될 수도 있고 한참을 속을 비우고 기관의 기능을 회복시킨 후 약을 쓸 수도 있다. 약을 쓰는 방식 또한 약국과는 다르다. 폐가 안 좋다 해서 폐에 좋은 것을 듬뿍 주는 방식이 아니라 폐의 기운을 상생할 수 있는 부분을 보하거나 폐를 극하는 부분의 기운을 빼주는 방식으로 처방한다.

 

이 방식에는 잠시 '쉼'의 의미도 담겨 있다. 먹는 것의 풍요, 고민으로 인한 담의 풍요 모든 것이 풍요로울진데 5장6부 역시 풍요롭게 활동을 할 터이다. 이들에게도 남들 다 가는 휴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좀처럼 이들의 쉼을 용납하기 힘들다. '심장이 뛰지 않으면 안돼!' 라는 식이랄까. 활발할수록, 에너지가 넘칠수록 좋다고 여겨 맛난 먹거리들로, 또는 지나친 희열로 이들의 운동을 강화시키기 일쑤인데.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란만 못하다고. 긍정적으로 살기위해 매일 웃고만 다니거나 남정네를 보고 설레어 매번 쿵광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게 된다면 그것도 못할 짓 아니겠는가. 결국, 고민이 생겨 잠시 소화 멈춤은 일종의 자연스러운 몸의 조절능력의 증거로 보아야 할 것이며 아픈 것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굶은 덕분에 살이 빠지고 피부가 좋아졌다면 다이어트도 이만하면 그만 아닌가.

 

이제 남은 문제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따라 살이 금방 쪘다 빠졌다 하는 증상이다. 적정한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것. '담백하게 살기' 이것이 앞으로 내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한참을 토닥토닥 자판을 두드린, 잠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잠을 잘 수 없었던 '불면의 밤' 그 새 내 몸은 어찌되었을까. 쏟아내지 못한 생각으로 엉켜버린 감정으로 한껏 빵빵해진 배가 인증할 순 없지만 한결 가벼워졌다. 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다시 허리 라인이 보일락말락. 자고 일어나면 그 효과는 확연해 질 것이다. 편히 잠자리에 들 만큼 뿌듯한 글이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되지 않을 테니까. 나 이제 잔다.

 

p.s. 밤이 아름다워 잠이 오지 않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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