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쓰라렸던 첫번째 에세이 발표시간이 지나가고 맞은 첫번째 시간이었는데요, 중세말 남프랑스 어느 마을 사람들의 삶이라는부제가 붙은 엠마누엘 르루아 라뒤리의 <몽타이유>를 읽었습니다.
4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 때문이었을까요... 대부분의 학우들이 다 읽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겼었죠...(채운샘이 잠시 말을 잇지 못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죄송함다. 꼬박꼬박 다 읽겠습니다;;)
그리고 책의 내용도 익숙치 않은 중세 유럽의 어느 마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걱정했었는데, 읽어보니(?) 재미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사료가 바로 몽타이유를 포함한 파미에지역의 주교이자, 이단심판관인 푸르니에와 이단자들과의 대화와 심문의 내용을 적은 <재판기록>인데요. 푸르니에는 시시콜콜한 일상적인 얘기까지 들으면서 이단의 흔적을 찾을려고 했다고 합나디. 그리고 라뒤리는 이 사료에서 이단재판이 오면서 부숴지기 전의 몽타이유라는 마을을 복원해내는 작업을 했던 것이죠.
채운샘은 미시사라는 것에 대해서 일단 개념을 잡아주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서술 방식은 거시사입니다. 전체적으로 시대를 조망하는 경우 이죠, 그런데 미시사는 그 시대의 민중의 구체적인 삶을 조망합니다.
마치 영화로 치자면 롱쇼트는 거시사이고, 클로즈업은 미시사 인것이죠.(이 부분에서, 채플린 왈 "영화에서 롱쇼트가 희극이라면 클로즈업은 비극이다."가 떠오르더라고요.)
아날학파2세대인 브로델이 주장했던 것이 바로 거시사였다고 합니다. 이 것에 반대하여 나온 것이 바로 아날 3세대인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라뒤리였습니다. 그 당시(1970년대) 역사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있었고, 이러한 이들은 "어떤 거시사에서도 미시사가 동반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거시사에서는 민중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들은 지워져있던 민중들의 삶을 다시 복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민중들은 자신들의 의사표현을 글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중들은 지배계급의 눈에 비춰지는 방식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죠, 그래서 파르니에의 <재판기록>같은 민중들이 스스로 말한 것이 누구를 통하지 않고 기록되는 형식으로 매우 희귀한 사료였던 것이었죠. 그래서 라뒤리는 처음부분에 "파르니에는 몽타이유 사람들에게는 불행을 가져다 주었지만, 우리(역사)에게는 행운을 가져다주었다."라고 말한 듯 합니다.
라뒤리는 이러한 민중의 삶을 복원하고자 하였는데요, 저도 이 책을 읽을 때 등장하는 인물들은 역사에 등장하는 위인들이 아니고,
동네나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란에서 맘에 드는 사람, 맘에 들지 않는 사람으로 구별 되더 군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자유 분방한 삶을 살았던 중세말 어느 마을의 사람들이었던 것 같더군요..
물론 당시 모든 마을이 이 몽타이유같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예외적인 부분을 통해 전체적인 부분을 조망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몽타이유>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 인상 깊은 인물이 2명이었는데요, 본당신부인 피에르 클레르그라는 정력가(?)와
그 시대의 자유로운 영혼 양치기 피에르 모리였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상황이 인물을 만드느냐, 타고나느냐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탐사도 어느 덧 반환점을 돌아가고 있는데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참여 못하시는 분들이 생겨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분들 몫까지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하면서 다음주 공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주 읽을 내용은 <몽타이유> 15장부터 28장까지입니다. (이번에 다 못읽으신 분들은 읽었던 쪽 부터 끝까지;;;;)
그리고 채운샘이 나눠주신 프린트 <사소한것, 클로즈업, 미시적 분석>-카를 긴즈부르크도 읽어오세요~(좀 많군요... 뭐 그래도 <역사>도 읽으셨자나요~)
발제는 1조는 재희씨 2조는 병화 3조는 경혜샘입니다.
간식 준비는 2조입니다.
아! 그리고 모두들 발표하신 에세이를 기획세미나자료실에 올려주세요, 부끄러워서 주저하시지 마세요 저도 올리는 걸요.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시간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