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열대 후기 /  2011.8.4 木 / 남동완


레비스트로스는 <슬픈열대>에서 타자들을 찾아 다닙니다. 타자(아마존 부족)와 어울리고 음식을 나누고 선물을 나눕니다. 그리고 그들을 관찰(해석)을 합니다. 레비스트로스가 보여주는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낯설지요. 그들의 삶이 물질적으로 부족해서도 아니고 옷을 입고 있지 않거나 문명에 멀어져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가 이곳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에 나를 둘러싼 것들이 낯설어 집니다. 가족, 결혼, 사랑, 선물, 권력 등.
그 지점에서 지금의 사회 구조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지금의 사회 구조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속해 있는 나를 보게되고,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시작'이 되지 않을까요.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은 매번 새로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타자의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타자는 멀리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바로 나 가까이 있는 아내, 아이, 부모도 타자입니다. 저도 한번도 그들이 타자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레비스트로스를 만나면서 그들을 타자로 보게 되네요. 내가 그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는데 그것을 사유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특히 채운샘이 말한 가장 가까우며 먼 타자인 내안에 나를 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예 내안에 타자가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제가 보려고 하는 것만 보이니 다른 것을 볼 수 없겠지요. 그래서 주변의 타자를 통해 내 안에 타자를 보려하는 것 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우리들 자신의 사회는 우리가 변형시킬 수 있으나 파괴할 수 없는 유일한 사회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도입해야만 하는 변화들은 그 사회의 내부로부터 나온다(705쪽)"라고 지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사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움직이는 상수를 찾아야 합니다. 그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 상수를 찾을 때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지요. 여기서 레비스트로스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민족학을 통해 인류의 겉모습 안에 숨겨져 있는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을 이론화합니다. (레비스트로스 자신은 이것을 구조주의라고 하지 않았지만 이를 본 사람들이 구조주의라는 이름 붙이게 됩니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비판을 가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실제로 작동하게 하는 상수를 찾아야 합니다. 사회에 많은 비판이 난무하지만 변화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겉만 보기 때문이지요. 숨겨져 있는 상수를 찾아서 세상에 내놓는 순간부터 사회는 변화가 됩니다.
마르크스가 위대한 것은 자본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움직이게 하는 가치가 상품이라는 것을 찾아낸 것이라는 채운 샘의 말은 상수를 찾는 것이 핵심을 알게 합니다.
처음 접하는 구조주의 어렵습니다. 아니 제가 알고 있는 지점에서 나아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구조주의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새각이 나아가지 않습니다. <슬픈열대>의 레비스트로스의 시선에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별 토론때에도 <슬픈열대>에서 제가 보고 싶은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채운샘의 강의 마지막에 지적한 보고자 하는 것만 보려니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남아있네요. 이 지점에서 벗어나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탐사를 할수록 의문점과 고민만 늘어납니다.



<채운 샘 강의 요약>

레비스트로스는 34세에 로만 야콥스(Roman Jacobson,언어학자)의 만남이 구조주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 실증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뒤르켐은 인류학을 자료를 중심으로 접근하였다. 레비스트로스는 경험을 중시하는 인류학을 강조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항상 경험에 매몰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뒤르켐 후 진화주의와 경험주의가 발전했다. 진화주의는 인간이 이랬는데 점차 발달해 왔고, 저거(원시)의 결과(근대)가 우리라고 한다. 경험주의 인류학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을 조사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진화와 경험주의를 비판한다. 레비스트로스는 경험주의에 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사회의 심층에 그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상수라고 한다. 구조가 있다.
식인 풍습의 의미를 알려면 그 행위를 작동하는 근본을 알아야 한다. 구조주의가 기댄 것이 언어와 수학이다. 구조주의에 미분이 나온다. 미분은 x의 변화분에 대한 y이다. 이때 y를 변화하게 하는 x가 상수이다. 결과가 어느 것에 따라 변한다. 수학은 체계를 찾는다. 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0이다 0은 다른 것을 의미있게 한다. 25와 205의 차이를 만드는게 0이다. 야콥스와 소쉬르의 언어학이 그것이다. 언어의 동시태를 다룬다. 음소는 의미가 없다. 음원을 이룰때 소리가 되고, 단어는 맥락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과거와 현재의 '악'이 다르다. 예를 들어 '너는 여자가 왜 그래'에서 조선시대와 지금의 맥락이 다르다. 19세기와 20세기의 계급성은 의미가 다르다.
단어는 맥락과 구조를 떠나서 의미가 없다. 수학적인 것은 문화가 복잡해도 가능하게 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레비스트로스에게는 친족관계이다. 친족관계의 특이성을 통해서 사회 구조를 분석한다.
현대는 근친상간을 자연과학에서 기대서 열성인자, 돌연변이가 태어난다고 금지한다. 결혼관계는 사회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마르셀 모스에게 가져온다. 모스는 증여론에서 선물이 어떻게 사회를 유지하는가를 보여준다. 원시부족은 선물에 깃들여 있는 영(마나)이 있다. 이들은 영을 가지고 있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빨리 다른 사람에게 주고자 한다. 이것이 선물을 교환하게 하는 매카니즘이다.
심층에 들어가면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것이 있다. 역사는 단순한 것에 복잡한 것으로 가는 것으로 보는데 그게 아닌다. 원시부족에도 가족체계는 복잡한다. 진화가 아닌다. 레비스트로스는 '나는 이들의 행위에 숨어있는 그들의 무의식 내면을 보고 보고싶다'라고 한다. 언어학의 방법론을 가지고 와서 인간사회를 작동하는 그 구조를 움직이는 상수를 보았다. "인간은 그의 무대를 ...군중이기도 하다(740쪽)" 이전보다 낫지 않고 앞이나 뒤에 오는 사람에게 작용하는 메카니즘은 같다. "세계는 인간 없이 ... 끝날 것이다(742쪽)"
구조안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가지고 간다. 인간과는 무관하다. 구조주의는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본다. 구조주의 시각에서 작동한다. 우리가 체스처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그 사회에서 보아야 한다. 어떤 점에서 다원주의와 겹치지만, 그것을 맥락 속에서 보면서 나의 맥락을 보면 그 사이에서 계속 고민을 한다.
아우구스트 희곡에서 시나는 문명에 복귀하기 위해 이 고생을 했나 회의에 빠진다. 이곳에서 나는 영원한 타자이기 때문에 나는 복귀해야 한다. 사회의 영위 속에서 살아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죽는다. 허무하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딜레마에 처한다. 생각해 보면, 관찰자는 언제가 복귀해야 한다. 이런 질문이 타자로서 타자를 만난다. 나를 둘러싼 황야, 내 마음 속에 황야에 타자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는 타자를 만나는 것이다. 나의 기억도 완벽한 타자다. 나의 과거를 불러들이는 것을 타자와의 만남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자기 안에 타자까지 이야기 한다. 시나는 여기에 풀잎도 저기의 풀잎과 같고, 나는 여기도 살고 저기도 산다. 이는 나는 다양한 구조에 살고 있다. 어떤 시대를 구성하는 한계를 지적한다. 푸코는 자기 시대의 한계를 보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먼저 본다.
감옥이 어떻게 생겼는가 실제로는 그 시대 담론의 배치가 그 시대에 합리적이라 채택되었다. 그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어떤 테두리에서 보는가. 우리 구조는 저 과거를 볼때 알 수 있다. 역사의 단선적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시적인 것을 본다.
과거를 대면함으로써 나는 낯설게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랑을 알고 있고 가족의 체계를 믿었다. 그런데 과거를 보면 내가 믿었던 가족과 사랑이 낯설어 진다.
나 자신의 타자성. 인간의 존재가 출발이 아니다. 가치 부여가 아니라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구조화 한다.
근친 상간 자연과학이 아니다. 근친상간이 문화이고 그것이 사회다. 역사는 박물관 안에서 끝난다. 이런 구조체계에서 보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핵심을 상품이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 위대하다. 레비스트로스는 추상적인 사회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을 막스에서 가져왔다. 또 지질학과 정신분석학에서 가져온다. 지질학은 지층을 단면으로 자른다. 지층에서 보는 것은 단면인데 여기에서 시간을 본다. 지질학은 공시적이다. 단면에서 지층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거꾸로 본다. 프로이트는 현상은 무의식의 가면이라고 한다. 심층의 무의식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 인간이라는 알 수 없는 덩어리를 작동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빈칸이 중요하다. 언어에서 음소, 수학에서 0, 선물에 깃들여 있는 영.
라캉 영원히 도달할 없는 A. 인간의 충동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예를 들면 사과나무를 한글사전에서 찾으면 거기에 설명하는 단어 중 '나무'를 모르면 나무를 사전에서 찾아야 하고, 나무를 사전에서 찾으면 설명에 모른 단어가 나오면 또 사전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찿다보면 영원히 그 단어에 도달할 수 없다.
구조주의도 비판을 받는데 결국 눈에 보이지 않지만 초월적인 대체물을 찾는 것이 아니야. 플라톤을 비난하지만 또 다른 플라톤을 찾는 것이 아닌가.
레비스트로스는 상수를 찾으려 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 우리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망상의 규칙세계에 있지 않은가 전제를 의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욕망이 무엇인지. "광물....그들 손에 있지 않은가(p745)"
정신의 무한한 자원이 있다. 진보는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축적된 것에서 우리가 있는 것이다. 희망은 낯선 타자들에게 있다. 다양성 안에 숨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거꾸로 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보고 우리가 배울 수 있다. 과거에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과거의 삶과 지금의 삶이 거기서 거기다.
언어학도 문법이 있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작동하는 것을 보고 문법을 발견했다. 역사와 타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구조주의는 우리 사회 안에서 과거와 미래를 담고 있는 것을 본다. 사회학이 레비스트로스와 결합하여 철학으로 나아갔다.
우리 안에 과거와 미래가 있다. 우리가 어떻게 변화하는가. 실존주의는 인간을 믿는데 구조주의는 그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를 구성하는 배치를 만나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배치도 인간이 선택하는 것이다. 구조가 구조를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복잡성에서 복잡성으로 이동할 뿐이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모두 지금의 선택으로 온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구조에서 왔던 것이다. 언어가 문화를 나타내는 기호이고 지성의 체계이다.



<로만 야콥슨, Roman Jakobson>
20세기의 위대한 언어학자이자 문예이론가. 189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며, 198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20년 체코 프라하로 건너가 1926년 프라하 언어학 서클을 창립했으며, 트루베츠코이, 마테시우스 등과 함께 기능적 구조주의를 정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정착했다. 뉴욕에 설립된 프랑스 (망명정부) 인문과학 고등연구원긟ole libre des Hautes Etudes, 컬럼비아 대학, 하버드 대학을 거쳐 1957년부터 MIT의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미국언어학회LSA 회장으로 활동했다. 변별자질, 이항대립, 유표성, 잉여성, 보편소 등의 핵심개념들을 확립하여 현대언어학을 정초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토대로 언어습득과 실어증, 커뮤니케이션학, 기호학, 시학, 언어사에도 탁월하게 적용하여 새로운 논고를 내놓을 때마다 20세기 사상사의 패러다임을 뒤흔들었던 거인이다. 전 세계에 걸친 왕성한 활동과 학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2년에 국제 문헌학·언어학 상과 헤겔 상을 수상했다.


<자크 마리 에밀 라캉(프랑스어: Jacques-Marie-Émile Lacan,>

1901년 4월 9일 ~ 1981년 9월 9일)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해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한편, 과학자들은 라캉을 비판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앨런 소칼과 리처드 도킨스가 있다. 도킨스는 라캉을 두고 “라캉이 사기꾼인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굳이 전문가의 의견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고 평가했다[1].


1901년 프랑스의 파리 시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처음으로 철학을 접하였고, 이후 의학과 정신병리학을 배웠다. 1932년에 의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1930년대 초현실주의 화가, 작가들의 무의식에 대한 탐구와 표출에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언어학적으로 탐구하는 데에 일찍이 관심을 보였다. 1936년 파리 정신분석학회에 가입하였다. 그는 그의 '프로이트로의 회귀'라는 명분에 의한 기존 정신학에 대한 비판으로 인하여 다른 정신분석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1953년 그는 파리정신분석학회(프랑스어: Société Parisienne de Psychoanalyse)의 회장이 되었으나, 6개월 만에 교육 방식으로 인한 갈등으로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파리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여 프랑스정신분석학회(프랑스어: Société Française de Psychanalyse)를 조직하였다. 같은해 그는 파리 대학교에서 세미나를 시작하였는데 이 세미나는 정신분석학자들 뿐만 아니라 장 이폴리트와 폴 리쾨르와 같은 철학자들에게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세미나는 1979년까지 계속되었다.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비정통적인 분석법을 사용하였고 치료가 정신분석학의 목표라는 생각을 거부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많은 동료학자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1963년 국제정신분석학회가 프랑스정신분석학회의 가입을 위해서 학회에서 라캉을 교육분석가 목록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자 그는 프랑스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였다. 1964년 파리프로이트학회를 창설하였는데, 이 단체는 1980년 라캉 스스로에 의해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충분히 추종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해산되었다. 1966년 논문집 Écrits의 간행으로 유명해져 구조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 떠올랐다. 1981년 파리 시에서 사망하였다.





선택 영역_013.jpe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4.2개강] 다시, 노동을 사유하자 4 jerry 2015.02.03 2717
80 8월 8일 탐사 후기요~^^ 정민지 2011.08.09 3241
» [탐사3] 5주차 후기 <슬픈열대> 상수(빈칸)를 본다 file 인비 2011.08.04 4295
78 8/1 탐사 3 <슬픈 열대> 두번째 시간 후기 및 공지! 장료 2011.08.03 3498
77 결석계, 지금써도 될까요ㅡㅜ 김민수 2011.08.03 3266
76 결석계 김지원 2011.08.01 3181
75 7/25 탐사 시즌 3 <슬픈열대> 후기 및 공지 장료 2011.07.30 3232
74 [탐사3] 4주차 후기 - 구조주의 file 인비 2011.07.28 3809
73 결석계 김사라 2011.07.25 3126
72 결석계 정다연 2011.07.25 2761
71 결석계 김미정 2011.07.24 3586
70 결석계 황동옥 2011.07.22 2776
69 못난 소리 합니다. 덕불고 2011.07.21 3350
68 [탐사3] 3주차 후기 - 언어는 세상을 절단한다. 문화는 습속이다. file 인비 2011.07.20 3448
67 결석계 낭만거북이 2011.07.15 3614
66 7/12 탐사 후기&공지 장료 2011.07.14 2817
65 [탐사3] 2주차 후기 - 타인과 만나는 것 인비 2011.07.13 4401
64 결석계 황동옥 2011.07.08 3408
63 [탐사3] 1주차 후기 - 자기 자리를 외부에서 본다는 것 file 인비 2011.07.06 4028
62 7/5 <탐사 시즌 3> -역사와 인류학 첫 번째 시간 후기&공지 장료 2011.07.05 3426
61 <오월애> 상영 후원금 회계 정리 20세기소녀 2011.06.23 3547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