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3 3주차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 (2부~끝)                                                      2011.7.18 月



2011.7.21 木 

2주에 걸친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를 마쳤습니다. 잘 읽히지 않았던 어쩌면 불편해서 읽히지 않았던, 잭 구디의 글은 문자, 언어, 문화에 대한 상식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잭 구디는 역사에 대한 다른 시각을 요구합니다.  자민족중심에서 서양에 역사관에서 벗어나고 의심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리 샘 말대로 왜 서양의 역사 관점이 더 이해가 될까요. 제는 동양에 기반에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한 사실도 의심없이 살았네요.

잭 구디는 또한 동시대에 살고 있는 다른 이들의 삶을 보게 합니다. 항상 산업인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던 것을 원시부족의 삶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타자의 시각을 보여주지요. 

역사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간의 나열이기도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아직도 현재에 공존하고 있는 모듬살이로 이기도 합니다. 조상으로만 간주하던 원시부족과 문명인이라고 자처하는 산업인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은 눈감아 왔나 봅니다.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는 제가 우월하다고 생각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네요.)

특히 자본주의, 근대화, 시민사회 등은 실체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잭 구디의 질문은 저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아직도 잭 구디의 말의 진동에 흔들리고 있나봅니다. 


잭 구디와 만나는 지점은 의혹 또는 의심하기 입니다. 잭 구디는 자신의 기반인 잉글랜드를 철저하게 타자와 합니다. 스스로 의혹을 가지고 잉글랜드의 자존심이라는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존재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내세우는 의회제는 이미 다른 곳에서 오랜전에 존재왔음을 보여줍니다. 자본주의 또한 그 인과라는 가족, 복식부기, 상업 등도 동양에 이미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하였음을 밝혀냅니다. 

자신의 기반을 의심하는하는 것에서 잭 구디의 출발이 있고 그를 위대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상식이나 지식을 의심하지 않았던 삶에 벗어나라고 잭 구디는 강조하고 또 강조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네요. 저의 기반을 의심, 아닌 전제까지 의심하는 것에 대해 아직은 모르겠어요. 아마 모르겠다는데서 제가 잭 구디와 만나는 지점이 됩니다. 제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심에 지점이 출발점이 됩니다. 

이번주에는 레비스트로스를 만납니다. 래비스트로스는 어떻게 저를 타자화하라고 이야기 할까요. 제시해 주는 시각을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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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 샘 강의 정리 2011.7.20 水

 

잭 구디는 2부에서 문화의 개념을 말한다. 문화에서 정치, 사회, 경제 등 다른 영역을 본다. 문화인류학에서 분화되지 않는다. 요리는 전체 사회적 사실이다. 그러기에 문화를 가지고 전체 사회를 볼 수 있다.

인 류학은 시간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말이 있다. 비공식적인 공간을 탐사 한다. 역사 학자들은 문헌을 가지고 조사를 한다. 문헌과 얽혀있는 증거를 찾는다. 인류학자는 현장의 생활을 조사한다. 어떤 시간에 리듬을 부여하는 것이 역사이다. 역사는 인과에 의한 법칙을 분석한다.

인류학은 어떤 양태로 실존하는가, 사회구조와 패턴을 조사한다. 인류학자로써는 지금 현재와 연결하기가 모호하다. 우리 세대와 접속했을 때 의미가 있는가. 타자를 바라보는 것이 역사성이다.

역사는 리듬(법칙)에 맞지 않으면 배제한다. 새로 보다는 것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역사인류학은 일반적인 보편성을 보지 않고 인류의 법칙, 삶의 문제를 끌어낸다.

 

언어는 세상을 절단한다

2 부에서 두가지 핵심은 언어와 반문화이다.문화 안에 있는 반문화 문화적인 것과 언어는 세계 속에 삶을 뭉뚱그려 세계를 이해한다. 언어를 가지고 내 방식으로 세계를 절단한다. 동물들도 자신의 경험(조상으로부터 유전된 무의식도 포함된다.-옮긴이)으로 절단한다. 초식 동물이 풀을 먹을 때도 독풀과 먹을 수 있는 풀을 구분한다. 인간의 뭉뚱그려진 세계를 절단하는 것이 언어다. 세계를 구조화 하는 것이 언어다. 틀(Frame, わく )이 생겨야 세계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

글 은 대상을 포착해서 붙잡는다. 이 세계를 좀더 잡아준다. 래비스트로스는 구조학자로 모든 세계를 구조로 분석한다. 역사주의에서는  "인간은 역사를 만든다"라고 한다. 여기에 막스는 "그러나 인간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역사를 만든다"라고 정의한다. 구조주의 관점에서 역사는 패턴에 갇혀있다. 우리는 언어의 방식으로 세계를 본다. 즉, 조건을 본다.

탈 구조주의에서는 구조가 조건 지어있다는 것을 안다면 탈주할 수 있다는 명제를 던져준다. 이것은 한계를 알고 나아가는 것이다. 자기 사유의 한계를 본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한계를 보지 못한다. 틀은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무의식과 싸워야 한다. 우리는 조건화된 구조에서 말한다.

 

엘 리아데가 부족의 의식에 참여했을 때 그들은 조상(죽은 스승)과 함께 있고, 그들은 조상의 말을 듣는다고 한다. 부족에게는 영이 와있고 조상이 그들에게 영향을 준다. 엘리아데의 시각에서 보면 죽은자에 대한 기억이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부족은 죽은자가 함께 있다고 표현한다. 부족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지점을 한계로 인식하고 뚫고 지나가야 볼 수 있다. 저들과 다르다고 하면 뚫고 갈 수 없다.

현 실에서도 자식과 부모가 소통되지 않는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인지하는 것은 모순을 바라보는 것이다. 지역간 또는 세대간 구조가 다르다. 동일한 문화안에서도 계층간에 바라보는 것이 다른다.

 

문화는 관습이다

문화를 통해서 사회를 동질한 것을 만들 수 없다. 문화라는 것이 관습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문화를 습속이라고 말한다. 문화는 과거이고 보수적이다. 문화는 연속성과 보편성으로, 사회에서 승인되어 진다.

반문화는 끊임없이 형성된다. 동시적으로 문화와 반문화는 존재한다. 잭 구디는 책에서 불가지론, 회의주의는 어느 문화에서 있어왔다고 적고 있다. 회의주의는 계몽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형성하는 의심의 핵이다.

타자를 보는 것은 내 안에 있는 타자를 만나는 것이다. 인간은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는 만큼 모 르는 것도 늘어간다. 이것이 동시성이다. 무엇을 아는 순간에 어떠한 것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에는 의심이 있다. 문화구조가 우리에게 새겨지지만 거기에 반하는 역동성을 가진다. 연속성이 보이는 것 안에 변화의 요인이 존재한다. 이런 류의 모순이 인지적 모순이다. 계급마다, 사회마다 다르다. 모순 속에서 문화가 발전한다. 다차원성, 다양성이 역동적으로 문화를 만든다.

 

문화는 표지이다

구 조는 언어와 세계화를 말한다. 현재의 문화구조 안에 역동성이 있다. 문화는 계층의 표지이다. 계급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의 상위문화에서 한층문화를 알고 좋아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국밥을 보더라고 하층문화에서는 자주먹는 음식이다. 그러니 별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상위문화에서는 이를 맛있다고 나도 먹는다고 매체를 통해 보여주고 포장한다. 상층문화는 국밥을 하층문화로 재단해 놓는다.

소비안에도 차이는 깔려있다. 명품의 상표가 밖으로 크게 드러내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하위문화가 따라 하니 이제는 상표가 밖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상위문화가 되고 있다. 상표가 없어도 아는 사람은 안다는 것이다.

19세기 부르조아를 비난했던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이 부르조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 문화를 알고 비판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의 이중성이다.

 

예 술과 철학은 의심의 핵을 포착한다. 인지적 모순 거기에 문화의 본질이 있다. 동질성을 강조하면 차이가 확 드러난다. 이때 복수성으로 다른 문화를 비교하게 된다. 즉, 한류를 강조하면서 일본, 동남아 문화를 구분해 낸다. 비교는 a,b 를 고정한다.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시점에서 본다.

(p389)

내 가 어떤 질문으로 연구하려는가. 자기의 언어 패턴을 보아야 하고 사유를 의심해야 한다. 내 안의 타자를 만나는 순간 역사를 만난다. 현재 삶이 충만한 사람은 만나지 못할까. 삶에 문제가 있을 때 인간은 뒤돌아 보는데 삶이 충만하면 뒤돌아 보지 않으니 말이다.

 

비전은 현재를 보는 것

비 전은 관점이다. 비전은 내 시각으로 내가 어떻게 보고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이다. 현재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나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비전은 현재적인 것에서 미래가 보인다. 지금 이자리에 있는 내가 잭 구디를 읽지 못했다는 것이 비전이다. 잭 구디는 영국인임에도 끝까지 자신의 문화를 타자와 해서 간다. 이게 그의 위대함이다. 잭 구디와 같이 자신의 문화를 타자와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역사주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화를 끊임없이 부정해야 한다.

 의 심을 계속 보아야 한다. 요리, 꽃 안에 계급성이 있다. 꽃은 주고 받는 것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과정에 계급성이 있다. 문화는 정서적인 차이가 아니라 청치, 경제를 포함하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튤립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부를 상징한다. 정물화가 있는 그림은 당시의 무역과 금융으로 부유해진 상인들을 상징하고 있다. 튤립이 아름다워서 정물화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부를 상징하기 때문에 많이 그려졌다. 정물화 하나에도 정치적, 경제적 문화가 담겨있다.요리 문화에도 상징이 있다.


구조와 언어의 보수성

" 그러나 역사가 구조 없이 있을 수 있는지를 알기는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구조는 역사 없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떤 종류의 구조이든 세월 속에서 존속할 수 있으므로, 진전한 의미에서 구조는 현존하는 과거이다. 곧 구조는 과거를 표상하고 과거를 재생산한다.(p228)"   지금의 문화가 청동기 시대의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4천년전의 신화인 길가메시를 보더라도 지금의 삶과 사는 모습은 다르지 않더군요 -옮긴이). 그 시대 벽에 "요즘 아이들 큰일이야"라는 문구가 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요즘 아이들이라면 혀를 끌끌차는 제 모습이 부끄럽네요. 청동기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멸종하지 오고 있느니 어떻게 보면 아이들은 문제가 없는가 봅니다.-옮긴이).

"언어는 임의적인 것으로 세대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대 간에도 소통하기 위해 본질적으로 보수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래의 근거, 초기의 결합은 소멸되었고 역사 연구를 통해서만 그 관계들을 규명할 수 있다(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설명할 수 있다). 어원의 연구가 살아 남는 것은 그것이 과거의 개념들과 사회적 관계들을 통합하기 때문이다(p240)"

언어는 이미 굳어졌다. 우리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언어다.  언어가 세계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만든다. 언어의 해체가 탈구조주의이다. 언어는 끊임없이 건설한다. 


의심

3부 의혹들은 중요하다. 문화는 구획한다. 동양의 문화는 예를 나타낸다. 문화 본질은 마디 짓는다. 그래서 유교에서 말하는 예는 마디를 나타내며 계급간에 마디는 넘을 수 없다. 모든 문화는 마디를 넘을 수 없다. 프랑스 혁명 후에도 부르주아는 프로레탈리아가 문화를 따라하면 그 문화는 버린다. 그게 자기를 다른 계급과 구분짓기 때문이다. 

잭 구디는 문화는 한 사회의 양식이 아니라 자신의 전통으로 만드는가, 철저하게 구분하는가로 보았다. 다른 계층의 문화를 모방하거나 사리지게 한다고 마디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회의주의의 개념을 추구하려고 한다. 인간 사회에서 회의주의는 다른 인지적 특징들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서 중요하기 때문이다.(p309)"

글쓰를 통해 포착하는 순간 구멍이 생긴다. 글쓰기로 다 채우지 못한다. 문화에서 이 지점이 중요하다.

"회의적인 사고의와 회의적인 전통의 발전을 가져온 (더 많은 것이 포함되었지만) '옮겨 적기'의 손수운 방법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Goody & Watt 1963). 회의적인 사고의 발전은 글쓰기가 말하기와 사고의 탈컨텍스트화의 수단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p314)"

" 한 세기 동안 인류학의 강조점이 변하고 있었던 것처럼 역사학 역시 그랬다. 사회사의 부활을 통해, 역사학은 차츰 국가의 문서에 잘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 곧 여성, 아이들, 다른 성적 취향을 지닌 사람들처럼  외면당해온 다른 집단들은 물론이고, 특히 낮은 계급, 글을 모르는 사람들, 특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 소수 민족들을 고려하고 있다. 이들 모두를 포함하는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기 학자들이 간과했던 사료들은 검토해야 하고 심지어는 역사를 인류학적 관행들에 더 근접시키는 방식으로 구전과 현장연구에 의지해야 한다.(···)20 세기를 다루는 학자들이 특히 민중의 삶에 대한 구술 설명들로 향했다. 자연히 글을 아는 중간계급에서 글을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노동계급, 인도에서 지칭되는 대로 하자면 서발턴(subaltem, 하위주체)의 역사로 초점이 옮겨갔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의 연구, 그가 멕시코의 빈민 문화라고 부븐 것에 대한 연구에 자극을 받았다."(p338~p339)

서발턴, 이름 없는 자들의 목소리.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난 연구가 서발턴이다.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가 하위 주체에 존재하는가를 조사한다.

" 태초의 창조라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빅뱅(창조)과 팽창하는 우주(진화) 가운데 양자택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듯이, 인간의 문화 역시 신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보거나 인간 스스로 창조한 것으로 볼 수 잇다. 나는 이런 설명들이 얼마나 달리 해설될 수 있는지와는 상관업싱, 그 설명들이 '인지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 곧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들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려한다.(p385) "

창조와 진화는 역사학자 관점에서 역속성, 변화로 공존한다. 인류학적 부분 때문에 역사의 범위가 넓어졌다. 최근의 역사책이 커피, 화장실, 무덤 등 다양하게 나온다. 역사 인류학은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본다. 보편성이 사회 패턴에 다라 다양하게 있는가. 우리의 관점이 다양해 질 수 있는가.

자기가 어떤 조건하에서 말하고 사유하는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내가 타자와 어떻게 만나는가를 찾아야 한다. 자기 인식에 근본적인 질문에 타자가 들어온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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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klod levi stʁos], 1908년 11월 28일 ~ 2009년 10월 31일)는 프랑스의 인류학자로, 인간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구조주의를 개척하고 문화상대주의를 발전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슬픈 열대에서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긴해도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고 야만적인 문화는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서구중심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서구의 오만과 편견을 깨는데 크게 기여했다. 원주민의 과거 식인풍습조차도 종교적 차원의 문화 현상으로 함부로 나쁘다고 매도할 수없다고 했고 오히려 서구 근대 문명의 대규모 학살과 전쟁으로 빚어진 야만성과 잔인성을 신랄히 비난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태인계 프랑스인으로 태어나 파리 대학 법학부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34년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58년 프랑스 콜레즈 드 프랑스 인류학과 정교수가 되었다.

2009년 10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한글로 번역된 책들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ISBN 89-88295-41-2

《슬픈 열대》, 한길사 ISBN 89-356-5174-5

《야생의 사고》, 한길사 ISBN 89-356-3072-1

《신화학 1 - 날것과 익힌 것》, 한길사 ISBN 89-356-5654-2

《신화학 2 - 꿀에서 재까지》, 한길사 ISBN 978-89-356-5743-8

《보다 듣다 읽다》, 이매진 ISBN 89-90816-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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