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3 2주차 2011.7.11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

책 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한주였다. 잭 구디의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 책의 논점을 읽을 수 없으니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이분이 이렇게 글을 쓴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현존하는 영국의 지성계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군림하는 대가이신데 좀더 면밀하고 반복해서 책을 읽어야 나에게 남는 것이 있겠지. 이번 책을 읽은 후에 전제를 의심하고 질문할 수 있는 시각을 갖고자 한다  또한 초월성에 한발 더 접근하고자 한다. 

인도 경전에 신을 사랑하면 7년이면 신을 알게되고 신을 미워하면 3년이면 된다고 했다. 이는 인간이 미워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대상 보다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 저자에 대해 감정이 없이 보는 것보다는 저자를 미워하거나 사랑해서 자주 생각해야 했다. 책을 읽을때도 저자에 대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를 미워하거나 사랑하든 마음을 가지고 읽어야 그의 사유가 보인다.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를 읽으면서 내용을 이해하려고만 했다. 저자를 향한 마음이 없으니 내용도 이해될리가 없는데 말이다.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를 읽었는데 남는데 없었다. 그래서 서론은 상세히 읽었다. 그러니 잭 구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인 보였다. 그것은 읽고 있는 나의 역사에 대한 의식과 상식을 흔들기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 근대화가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있는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근원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잭 구디가 전제를 묻고 있는데 나는 자본주의와 근대화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가지고 읽고 있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잭 구디는 서양이 역사의 발전이라고 하는 자본주의와 근대화에 대해 의심을 한다.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근대화를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서양의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원인과 결과로서 핵가족, 복시부기 등에 대해 서양의 특이성이라고 밝히고 있다. 잭 구디는 이러한 서양의 특이성을 동서양에 공존했거나 다른 형태로 존재했으며 서양내에서 조차 계급에 따라 다른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잭 구디의 논리는 서양 역사에 지배되어 왔던 나의 시각에 변화를 준다. 자본주의, 근대화를 비난하기 이전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본주의와 근대화를 발전이라는 역사의 프레임으로 봐서는 다른 것을 볼 수 없다. 

채운 샘은 강의에서 타인을 바라볼 때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는 것은 위월의식이라고 지적한다. 인류학자들이 아프리카와 동양, 인도를 다니면서 그들의 생활을 볼때는 높은 위치에서 보는 우월의식이 있어 동시대인으로 보지 않고 인류의 기원 또는 잃어버린 세계로 묘사한다. 아프리카의 부시맨, 인도의 라다크인이던 그들의 삶은 현재도 진행형인데 나의 시각으로 그들의 과거의 낭만이나 조상으로 가두어 둔다. 이렇게 그들을 가두는 것은 나의 우월적 의식에서 기인한다. 그래서는 나는 타인을 바라볼 수 없다. 우월의식에서 보는 타인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때문에 실제를 알 수 없다. 타인과 만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타자를 만나는 것이다. 융은 환자와 만날 때 먼저 자신을 겸손하게 내려 놓았다. 그리고 환자의 생각과 말은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한다. 나의 상식을 여지없이 흔들어 줄  잭 구디의 음식, 의혹들이 기대가 된다. 

"성찰성은 읽기 행위의 중요한 요소로서, 대화나 말의 즉각적인 상호작용은 없지만, 좀더 명상적인 방식의 이래를 조장한다. 내 식으로 설명하자면, 성찰성은 암묵적인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곹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근대화는 바로 그런 지성과 감정의 기술들의 현실을 함축한다.(p155)"

"란츠는 "감정이 사람들의 경험의 일부가 되기 전에 사람들은 감정을 읽고 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시사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글쓰기와 읽기는 그 과정의 성찰적 성격으로 인해 감정을 정교하게 다듬고 고조시킨다.(p181)"


<강의 요약>
잭 구디가 역사인류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아주 우연한 경험 때문이다. 원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는데, 포로수용소에서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와 당시 최고의 인류학자이던 고든 차일드의 《역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읽고 전공을 인류학으로 바꾸게 된다. 
인류학이라고 하면 서양에서 바서양을 관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양이 인류학을 연구하기 위해 서양으로 간다는 것은 낯설다. 인류학자들이 아프리카나 동양에 가서 현지조사를 하면 처음에는 협조적이나 두세번 반복이 되면 비협적으로 된다. 인류학자들이 조사해 가는 것이 우월적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피관찰자는 이용 당한다는 불쾌감을 가지게 된다. 518 광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감독도 현지의 배타적 분위기에 힘들었다고 이야기 한다. 518 광주를 언론과 학자들이 취재하고 조사를 해도 실제로 해결되는 것은 없기 때문에 분노만 커진다. 
인류학자는 조사에 대한 결론은 원시부족을 보고 인류의 조상으로 또는 낭만화 한다. 그들을 동시대의 인류를 바라보지 않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내려다 본다. 높은 위치에서 피관찰자를 조망히하다. 거리를 두고 본 시선이다. 그들의 삶이 태고적 기원이며 뭐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인류학자 자신이 발전된 존재이고 앞서다는 것을 전제로 조사를 한다. 그리고 다양성을 이야기하는데 그럴듯하게 논리이다. 다양성은 상대주의로 차이를 중요하게 이야기 한다. 차이를 이야기할때 동일성을 전제한다. 예를 들어 나는 남자다를 전제로 너는 여자다라고 한다. 경계를 인정하는 것이 상대주의이고, 경계를 견고하게 만들 수 있다. 아프리카를 볼때 저래하고 인정하고 구분짓는다. 인정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인정은 문제를 고정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가야하는데, 경계가 만든 이미지가 견고해서 돌파하여 가기 힘들게 만든다. 
잭 구디는 막스의 고대노예에서 18세기, 19세기 등 프리근대, 포스트근대 등의 구획을 짓는다.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구획도 필요하다. 삶의 구조에서 변화가 일어날 때 변수를 보는 것이 잭 구디의 시선이다. 르네상스를 볼때 르네상스가 아닌 것은 배제한다. 이렇게 배제하면 르네상스 시기의 다른 것을 볼 수 없다. 본다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새롭게 보는 것은 새롭게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잭 구디는 삶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계기와 구조가 무엇인가 보려 했다. 서양 중심주의 핵심이 근대=서양화의 구조를 말하는데 잭 구디는 근대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질문하고 있다. 근대화의 논리를 근대화의 과정을 몇가지 원인과 결과로 설명하는데 당연하고 보편적으로 받아 들인다. 또한 동양, 아프리카, 인도 등에서는 근대화가 왜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는 역사에서 근대화와 자본주의를 발전이라는 전제를 깔고 질문하는 것이다. 
이점 바로 어떻게 질문하는가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왜 동양에는 과학적 사고가 없는가라고 질문을 하면 과학적 사고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적 사고란 무엇인가 질문을 하면 전혀 다른 접근이 된다. 차이를 인정하고 이야기 하는 것은 동일성을 전제로 이야기 한다. 검은색과 흰색을 머리에 두고 회색을 이야기한다면 회색은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것이 된다. 질문은 검은색이 무엇인가 의심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질문하고 원인을 찾아가야 한다. 왜 인생이 이모양 이꼴이야라고 할때 모양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럼 부모, 공부, 얼굴 등 다양한 원인을 나오고 무엇을 들어도 틀리지 않는다. 그중 하나만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한다. 학문에서는 이게 결정적이었다. 학문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몇가지를 놓고 현상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에서 근대화와 자본주의를 서양에는 있고 동양에는 없는 것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서양 역사학에서 자본주의 요소에 핵가족적인게 중요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잭 구디는 가족을 가지고 자본주의를 설명하려고 해도 서양안에서 조차 모든 계급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동양에서도 서양의 가족 특이성이 나타난다. 그런데 뭘 가지고 근대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고 잭 구디는 의구심을 던진다. 

타자를 관찰하는 것은 우위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서양은 인종주의라는 말을 싫어하면서 머리 속에는 다른 인종을 보지 않으려 한다. 타인종은 열등하다고 고정된 생각을 가지고 보려하지 않는다. 피부색을 말하지 않는 것이 금기라고 해서 의식에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잭 구디가 인류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다. 나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잭 구디는 유사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나 인류학자에게 보편적인 것을 볼 수 있다. 그곳에서 가족을 형성하는 변수를 볼 수 있다. 이 변수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변수를 보지 않고 왜 그들은 핵가족이 서양의 특이성이라고 인정하는가. 
나라는 보편을 버리고 들어가야 한다. 인류학은 역사에서 내 안에 당위성을 가지고 본다. 나의 뒤를 보지 못한다. 인류학은 타자를 만나는 것이고 바탕의 차이를 보아야 한다. 나에게 있는 것이 그들에 부재하다. 부재하는 것은 본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회는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타인의 역사에 자본주의가 안 생긴 것은 이해할때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그것을 비판한다. 그들안에 있는 변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변수를 보면 그 안에 유사성이 있다. 그럼 자본주의를 발전이라 볼 있을까?
잭 구디 거시사를 보지 않고 한 사회를 바라볼 때 부재, 무엇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결론으로 잭 구디가 도달한 것은 결정론이다. 인과를 따져서 설명하면 좋은데 다이아몬드는 물리적인 것을 가지고 설명했고 아○○○는 심성을 가지고 설명한다. 이들의 설명은 심각한 오류를 가질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친족구조로 문명을 설명하고 있다. 문명을 분석하는 것은 퍼즐을 빈칸을 맟추어 가는 것이다. 잭 구디는 레비스트로스의 관점을 인간문화의 몰이해라고 비판한다. 
산업혁명이 이루어져도 망탈리테가 다른다. 동일한 시대에도 부르주아에게는 아이를 키울 때 옆에서 다정하게 가까이에 두고 접촉해 주어라 하면서,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아이와 같이 있지 말라고 했다. 대가족에 의해서도 상업 자본주의는 발달했다. 
우월적 시각을 버리고 타인을 만날때 무엇인가를 보게된다. 잭 구디는 서양의 특이성을 보편적으로 보라고 주문한다. 이것이 서양의 특이성이 아니라 다른 곳에 없는있을 뿐 아니라 다른 곳에 없는 것 자체도 특이성이라는 것이다. 
잭 구디 음식, 사랑, 문자 타자를 통해서 자금 나를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요즘 드라마의 트렌트가 친자,복수,돈인데 여기에 무엇이 있다. 바로 자신들의 불안이다. 나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지점에서 드라마가 보여지기 때문에 유행이 되고 있다. 자신을 인류학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도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 다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글을 암묵적인 것은 가시화 한다. 원시에서는 글과 비슷한 문신이 있었다. 니체 글쓰기는 몸에 각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잊지 않기 위해 새긴다. 글을 통해서 의식을 확장하는 것이다. 란츠 글을 가지고 감정을 표현한다. 잭 구디 계급, 사회경계, 문자를 간과하면 안된다. 문자와 구술 방식에서 사랑의 수용방식이 다르다. 음식, 죽음, 사람 모든 문화에 나타난다. 상식은 사유의 한계이다. 타자를 만나면 상식이 의심된다. 칼 폴라니의 <사람의 살림살이>는 서구식 자본주의 체제는 인류의 보편적 경제체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즉 자본주의체제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무수한 경제체제 가운데 극히 특수한 하나의 체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류학은 다른 학문에 자양분을 제공한다. 역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역사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자기 전제를 의심하지 않고 질문한다. 그럴 능력이 없었다. 이식론 조선의 근대화는 식민지 시대가 아니다. 근대화는 조선 후기에 있었다는 식의 논리는 자본의 우위성을 인정한다. 아이들의 말싸움과 다를바가 없다. 마치 너희 집에 TV없지 하면 우리집에 TV가 있다고 반박하는 거와 같다. 아이들의 싸움에서 TV가 우위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된다. 관찰이 아니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이 책의 결말에 비교 연구의 한계에 대해 지적한다. 잭 구디가 뭘 보려고 하는가를 보라. 


<칼 폴라니>
폴라니는 최근에, 경제가 사회와 문화 속에 착근된 방식을 강조하는, 경제학을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실질주의의 주창자로써 각인되고 있다. 이는 주류 경제학에는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인류학과 정치학에서는 인기가 높았다. 고대의 경제에 대한 폴라니의 접근은, 다소의 학자들이 통상적으로 고대 사회에서의 경제의 유용성을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과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같은 다양한 경우에 적용되었다. 그의 책 《거대한 변환》은 또한 역사사회학에서 하나의 모형이 되었다. 그의 이론은 결국에는 경제 민주주의 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칼 폴라니는 그의 책 《거대한 변환》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불안정요인을 밝혀냈다. 그는 자본주의가 상품화할 수 없는 것들 또는 상품화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상품화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불안정요인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가치인 노동능력을 상품화함으로써, 제도와 신뢰의 표시인 화폐를 상품화함으로써, 만인이 공유해야 할 자연을 상품화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불안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금융위기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 경제이론으로 폴라니의 문제의식이 각광받고 있다.

저서
《거대한 변환 (The Great Transformation)》, 1944, 박현수 옮김, 민음사, 1997
《초기 제국의 교역과 시장 (Trade and Markets in the Early Empires)》, 1957, 이종옥 옮김, 민음사, 1994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들 (Dahomey and the Slave Trade)》, 1966
Primitive, Archaic, and Modern Economics: Essays of Karl Polanyi, 1968
《사람의 살림살이 (The Livelihood of Man)》, 1977, 박현수 옮김, 풀빛, 1998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홍기빈 옮김, 책세상, 2002
《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적 기원》, 홍기빈 옮김, 길(박우정),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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