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3 6주차, 나카자와 신이치  <곰에서 왕으로>,  2011.8.8 月

대칭 사회에는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합니다. 현재가 과거이고 미래입니다. 채운 샘이 강의 시간에 비전에 대해 현재가 비전이라고 하였을 때 모르겠더군요. 말은 알겠는데 존재를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칭의 시간을 체험했습니다.
지난주 폭우로 공동텃밭이 2/3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집중 호우로 인해 발생한 토사가 밭의 두둑은 무너지고 고랑을 메워버렸습니다. 힘들여서 만들고 심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허망하더군요. 
자연은 정말 잔인합니다. 아니 인간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폭우로 인한 물길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제가 만든 불균형을 무너뜨리고 균형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첫날은 그냥 돌아오고 며칠이 지난 후 다시 밭으로 나갔습니다. 파괴(?) 그대로 변한 것은 없더군요. 그때 레비스토로스의 <슬픈열대>의 구절이 팍하고 떠오르더군요.
"우리는 인간이 과거 수천 년 동안에 걸쳐서 이룩해 놓은 것이라고는 반복의 역사밖에 없음을 아는 이상, 수없이 되풀이 되는 인간이 모든 종류의 사색에 구애됨이 없이 '시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언제나 반성의 출발점으로 삼는 그런 고귀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706쪽)"
이 구절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천년 동안 인간은 반복되는 자연의 시련을 극복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손에게 그것을 물려주었지요. 항상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의지를 말입니다. 그 순간에 이 밭에서 나와 같은 시련을 겪었던 선조들이 떠올랐습니다. 과거의 그들고 이를 극복했을 것이고 지금 나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나도 또는 후손도 극복해야 합니다. 저의 정신 안의 수많은 선조들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시련을 같이 겪고 이겨나가야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공존 합니다. 
이 밭에서 작물을 키웠던 농부들이 저에게 힘을 주더군요. 이들이 극복한 고난을 지금 나도 극복할 수 있다는 힘을 말이죠. 이때부터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가 됩니다. 시간은 하나가 나의 역사를 움직이게 합니다. 이제 이 밭과 저의 역사가 지금부터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폭우와 밭과 제가 만난 이 지점에서 사건이 되었습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4대강도 제가 밭에서 만들고 있는 물길 하나보다 못합니다. 저에게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지금 이자리 입니다. 이곳에 밭을 다시 만들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게 있나 봅니다. 밭의 작물과 저의 공들인 시간을 잃어지만 그를 통해 소중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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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잔인합니다.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인간이 표상화 입니다. 인간은 표상을 통해 자연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채운 샘 강의>
자연에 대한 표상이 인간에게 있다. 노자를 보면 천지인불이라는 말이 있다. 천지는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인간에게 벌을 내리고 복을 내리는 자연의 표상은 인간이 만들었다. 그리스 신화는 자연을 인격화 했다. 이는 인간이 자연을 표상화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제어되지 않는다. 자연은 근원적 폭력성이 있다. 인간에게는 파악되지 않는다. 자연의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 신화이고 문화이다. 자연은 또한 이중적 이다. 모든 생명체는 숨을 쉬게 해주는 산소 때문에 살고 죽는다. 생명은 숨을 쉬어야 살기도 하지만 늙는다는 것은 산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가 수련자는 숨을 적게 쉬려고 한다. 인간의 감정(화)이 세질 수록 숨이 가빠진다. 섹스도 과호흡이 된다. 도가에서는 감정과 섹스를 늙게하는 핵심으로 보았다. 그래서 두가지를 최대한 억제하도록 수련한다. 자연을 삶을 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이중적이다. 섹스도 이중적이다. 섹스로 생명을 잉태하지만 깊이 숨어져 있는 생명을 방출하는 행위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스승인 조르주 바타유의 영향을 받았다. 자연은 인간이 대상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심연이다. 인간의 무의식 내 안에 타자는 도달할 수 없는 심연이다. 폭력성에 마주한 인간은 그것을 표상화해야 한다. 어는 단어로도 만들 수 없는, 표상화 안되는 것은 인간에게 공포(불안)가 된다.
자연에서 표상화 되지 않는 겨울은 가장 폭력적이다. 겨울은 모든 것은 묻어 버린다. 그런데 겨울이 봄을 잉태한다. 겨울은 인간에게 죽음과 같은 시기이다. 인간의 방식으로 제어해야 문화가 된다. 문화는 낮의 영역이다. 인간의 밤의 영역에 겨울이 있다. 불안은 어떻게든 조절해야 한다. 불안을 없애기 위한 장치가 신화이다. 신화는 문화의 규칙이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다. 인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축제, 비밀결사를 만들고 가면을 쓴다. 낮에는 사회적 ID를 가지고 있는데 밤이 되면 ID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것을 받아 들인다. 자연의 세계를 받아 들이는 사회가 대칭사회이다. 대칭사회의 축제, 비밀결사, 식인 등 통과의례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표현이다. 물고기 뼈로 문신을 새기는 행위는 물고기가 인간의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자연을 폭력성을 받아들일 때 문화를 지킨다. 그것이 유동적 지성이다. 전혀 다른 타자와 거대한 힘과 문화의 영역을 넘어들 수 있는 앎이 있다. 일상적인 앎에서 인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동적 지성을 받아 들인다. 유동적 지성을 받아 들이며 그때부터 마음의 문제로 다루었다. 
대칭 사회에는 위계가 있다. 그런데 위계가 국가를 만들지는 않는다. 대칭 사회는 문화의 영역으로 자연을 끌어들인다. 자연의 핵심은 균형이다. 균형은 넘치는 것을 파괴한다. 균형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외부와 접촉해서 불균형이 나타난다. 자연에서 소비와 파괴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봄과 겨울이 리듬이 그런 예이다. 자연의 폭력성을 받아 들이면 개인에게 부를 쌓는 행위를 경계하게 된다. 부를 독점하지 않는 사회가 대칭사회이다. 자연의 교훈을 받아 들임으로써 지혜를 얻는다. 자기들도 자연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대칭 사회에도 위계가 있다. 낮의 세계를 표상하는 수장과 샤먼, 전사, 비밀결사 리더는 자연의 힘을 받아 들인 존재이다. 이들은 각자 초월적인 방식으로 인간을 고치고, 보복을 위한 전쟁을 하고, 의례를 이어간다.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국가 발생은 초보적인 사고에서 나 > 가족 > 사회 > 국가로 생각하고 또는 계약론으로 보기도 한다. 국가에 대해 다른 것을 본게 니체이다. 니체는 "국가는 어느날 갑자기 번개 처럼 온다" 밖에서 온다. 전혀 다른 매카니즘이 들어오게 된다. 사고를 받아 들이면 국가가 생긴다. 국가는 생기는 동시에 폭력이 된다. 낮과 밤의 세계를 통합하는 왕이 나온다. 수장은 봉사를 통해 위신을 얻는다. 인간의 세계마 다스린다. 그외의 세계는 곰이 다스린다. 문명(왕)은 곰을 죽이고 시작했다. 자연을 문화하 했다. 국가와 함께 문명이 시작된다. 곰을 잡아먹고 끊임없이 관계를 신화로 나타냈다. 가족인 곰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최근에 SBS의 툰드라 관련 다큐를 충격을 받았다. 다큐를 보면 몽골에서는 양을 잡을 때 최고 연장자가 양을 몰래 데리고 가서 목을 자른다. 그리고 의례를 행한 이후에 피를 흘리지 않게 고기를 발라내고 양 가죽안에 뜨거운 돌을 넣어 익힌다. 그렇게 익힌 양을 남기는 것 없이 깨끗하게 먹는다. 이 지점에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깨끗하게 먹어준다면 양이 나라면 보람을 가질 것이다. 내 몸이 그들에게 소중한 생명이 되었을테니 말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힘이 있다. 국가를 가르는 것은 권력의 형태이다. 자연의 힘을 문화화 했을 때 겸허함이 없어질 때 국가가 탄생한다. 국가 권력의 문제의 심층에는 문화와 자연의 문제가 있다. 인류학에서 이러한 시각이 흥미롭다. 국가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폭력이다. 이때부터 인간의 땅의 소속이 아니고 권력과 에고가 증가한다. 
비대칭 사회는 자연을 막는다.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든 온다. 대상을 문명화 한다. 왕에게 힘이 집중이 되면 부가 집중이 된다. 부가 집중되지 않게 하던 자연의 메카니즘이 사라진다. 니체는 이를 "자연과 왕 사이에 채무관계가 생긴다"라고 지적한다. 국가는 끊임없이 무엇을 해준다고 한다. 백성에게 국가가 이것 저것을 해 준다고 대의를 말하지만 결국은 노예의 신분외에는 주는 것이 없다. 대의를 말하지만 국가는 폭력이다. 국가는 만인에 대한 자연에 대한 폭력을 행사한다. 진짜 야만은 뭔가가 중심으로 모인다. 그리고 넘나들 수 없는 위계가 생긴다.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도 위계가 생긴다. 축제에서 가면을 쓴 것은 사회적 코드르 없애는 의식이다. 
국가가 생기기 이전과 이후가 갈린다. 대칭과 비대칭의 세계 
대칭사회에서 에고는 점선으로 되어 있어 그 틈으로 소통을 하여 위계를 넘을 수 있었다. 비대칭은 이 점선이 실선이 되어 뚜렸한 경계가 생겼다. 대칭 사회에서 에고를 넘기 위해 식인의 문화가 생겼다. 인간을 먹는 것을 의식화하여 에고를 해체한다. 자아를 끊임없이 해체해 가는 사회이다. 국가의 명령을 듣게 하려면 에고의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 명령하는 체계가 된다. 세금으로 강는 파는 사회가 되었다. 
신이치는 비대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불교로 보았다. 자연의 불균형을 자연을 지배하여 해결하려 한다. 국가는 합리성의 탈을 쓴 폭력이다. 강고한 에고를 가지고 민족, 가족, 인종의 경계를 만든다. 이런 시대를 뚫고 갈 수 있는 사유가 없을까 하는게 불교이다. 불교 극단적으로 무아를 이야기 한다. 그 사상의 극단으로 가 있다. 불교는 너라는 것이 없다. 내가 너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주의 모든 힘이 합해져서 생긴다. 너라는 것이 그러니 없다. 언제든지 교환이 가능하다. 내가 이루는 것은 우주이다.  호흡과 만나는 것이 나이다. 신석기 시대의 사람과 만나는 지점에 불교가 있지 않을까? 비대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불교 말고도 있다.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에 이런 사상이 있고 철학에도 이런한 것이 있다. 문제 해결 방안은 본인들의 선택이다. 신이치는 불교가 어떠한 경계도 거부하고 소통하고 교류하기 때문에 중요하게 본다. 그는 또 신화가 옛날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철학과 사고의 패턴으로 보았다. 
단선적 역사관은 크로노스 (Cronus, 자식을 잡아먹는 신)의 이미지이다. 현재가 과거를 잡아 먹으며 존재한다. 단선적 시간관과 다른 시간관이 베르그송이 말한 현재와 과거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가 ‘흘러가는’ 것은 그것이 현재인 동시에 과거라는 사실 이외의 것이 아니다. 시간이란 현재인 그 순간 곧장(아니, 동시에) 과거가 되기 때문에 ‘흘러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와 과거의 공존과 현재가 동시에 과거로 ‘되는’ 운동이 없다면 현재란 허깨비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경향신문, 2011.8.8, 이정우의 철학카페)" 
신석기인이 겨울에 곰과 같이 들어가는 겨울의 긴 시간은 100년 또는 1,000년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들에게 역사는 연대기적 역사가 아니라 신화가 역사이다. 국간는 역사에도 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촘촘하게 만든다. 그래서 낮과 밤 모든 것을 지배한다. 역사는 국가의 성립과 존재한다. 반면 신석기인에게는 신화가 과거이고 미래이다. 이런 시간관이 미래를 작동하는 힘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 신화에는 시간이 같이 공존한다. 그들이 지나간 시간이 어떻게 사고할까?
국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있다. 국가의 시간에서 중요한 것이 개체에게는 의미가 없다. 전혀 다른 역사이다. 대칭적 사고를 가져올 수 있다면 전혀 다른 역사의 서술이 가능하지 않을까?
"과거는 저 멀리 흘러간 지난날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바로 아래에서 약동하는 ‘현실’이다. 기억을 그저 필요할 때 끄집어내는 재고품인 양 생각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그것은 그저 소산적 기억일 뿐이다. 현재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작동하면서 현재를 만들어 가는 과거, 그런 과거의 기억 즉 능산적 기억을 약동하게 만드는 것이 사유가 죽어버린 듯 보이는 이 시대에 사유가 해야 할 일이다.(경향신문, 2011.8.8, 이정우의 철학카페)"
불교의 시방삼세(十方三世, 끝없는 시간과 공간을 이르는 말.)가 여기에 있다. 유교는 삼대까지 제사를 지내며 이들과 연결되어 진다. 역사의식을 내가 언제까지 사상하고 있는가에 따라 다르다. 
핵심은 왕이 탄생하는 곳에서는 폭력이 태어난다. 문명의 폭력성을 생각하는 것이 공부의 과정이다. 비대칭 사회는 명분을 내세워 사람을 무참히 학살한다. 대칭사회는 모욕에 대한 복수로 전쟁을 하고 대부분 전쟁은 위협만으로 끝나거나 보복으로 전쟁은 끝난다. 
인간이 에고를 해체하고 세상을 보면 미세한 벌레부터 우주까지 밀려온다.  


<조르주 바타유 GEORGES BATAILLE>
프랑스 사상가, 소설가. 바타유의 저작은 철학, 사회학, 경제학, 예술론, 소설, 시, 문예비평 등 광범위한데, 그의 책에서 다룬 죽음, 에로티즘, 금지, 침범, 과잉, 소비, 증여, 성스러운 것 등의 주제는 모두 지고성이라는 중심 테마에 수렴된다. 아버지는 매독 환자에 맹인, 어머니는 우울증을 동반한 정신착란에 시달렸다. 극도로 불안한 가정환경을 혐오하며 성장한 그는 17세 때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은 글을 쓰는 것, 특히 역설의 철학을 만들어 내는 것”임을 깨닫고 글쓰기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 겸 중세 전문가로 일하면서 프로이트를 접하고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어울리던 그는 에로티시즘과 신비주의를 토대로 한 저술 활동을 펼쳐 갔다. 밤새워 술 마시고 노름에 빠지고 매음굴과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글쓰기를 계속하던 1962년 7월 9일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바타유는 당대의 지성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사가들에 의해 ‘저주의 작가’로 불릴 정도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젊은 시절 성직에 뜻을 둔 적도 있었으나 누구보다도 신성모독적인 저술을 많이 남긴 이단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일생을 무신론적 입장에서 인간의 절대성을 탐구하는 사색을 지속하였다. 저서로는 무신론 대전 3부작 『내적 체험』, 『죄인』, 『니체에 관하여』, 처절한 죽음과 에로티즘을 다룬 소설 『눈 이야기』, 『마담 에두아르다』, 문학 이론서 『문학과 악』, 『에로스의 눈물』, 미술에 심취한 시기에 쓴 『선사 시대 그림: 라스코 또는 예술의 탄생』, 『마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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