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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게융의 인터뷰를 보았다. 진행자가 융에게 물었다. “Do you believe in God?” 융은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하였다. “I know God.”  이 대답에는 왜? 라는 질문이 이어질 수 없다. 신은 경험할 수 있고 자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야스퍼스에게도 그런 자명한 통찰이 왔을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섬광 같은 선지자들과 현자들의 출몰에 秘意를 느끼고 그의 몸 속을 타고 오는 전율을 환희로 받아들였겠지. 직소퍼즐의 막판에 퍼즐조각들이 우르르 제자리를 찾아가듯이 우주 사이에 숨겨진 신의 구도가 자명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아니면 번쩍이는 배암의 혀가 갈라진 검은 하늘 사이로 낼름 거리는 것을 보았노라고 외치는 지도 모른다.

 

신의 역사는 선지자와 현자들의 축을 구동력 삼아 돌아왔다. 그들은 신이 인간역사의 여정에 세워놓은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축의 시대는 일정한 시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야스퍼스가 비록 축의 시대를 일정기간에 설정해 놓았기는 했지만)- 비가 올 때 수면에 이는 무수한 파동과 같이 실로 생명의 역사에는 무한한 시간을 통해 무수히 많은 축들이 유성과도 같이 꿰뚫고 지나갔다. 부처에는 부처의 스승이 있고 부처의 스승에는 다시 부처의 스승이 있다. 예수 이전에 선지자가 예수를 예언했고 다시 선지자를 예언했던 이전의 선지자가 있었다.

 

야스퍼스는 관성을 잃고 이성의 오만과 전쟁에 비참해진 인류를 위해, 우주의 지속을 위해 매일 같이 제의를 올리는 무당과도 같이 새로운 구동력으로서 축의시대의 재현을 기원한다. 지구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순간 종말과 재림이 오듯, 마지막 한 생명까지 성불해야 내 몸이 성불할 수 있듯이 만물이 공명하는 축의시대가 궁극적인 통일인가? 인간-비인간을 구분하지않고, 생물-무생물-귀신을 따지지않는 통일.

 

야스퍼스와 내가 공유하는 통찰 중 다른 하나는 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세계)를 창조하였다이다. 세상에 대한 깊은 고뇌의 밑바닥에서 돌연 스며 나오는 계시와도 같은 통찰에 온 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깨어나고 찬송하는 경험은 누구나 있다. 내 경험을 얘기해 본다.

 

왜 사람은 통증을 느낄까라는 질문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밥을 먹거나 길을 걸어 다니면서 그 질문을 잠시도 떠난 적이 없었고 잠에서 깨어보면 밤새 내 꿈속에서 그 질문의 해답을 찾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한 일본 뇌과학자가 고등학생 여름캠프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한 ‘…뇌과학…’를 읽었다. 피실험자의 뇌피질에 전극을 연결하고 피실험자로 하여금 버튼을 누르고 싶을 때 누르도록 하였다. 그리고 뇌피질에서 측정된 흥분전위의 발생시간과 버튼에서 기록된 시간을 비교해 보았다. 결과는 흥분전위가 버튼을 누르고 난 후에 발생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피실험자가 행동을 먼저 한 후에 행동을 지시하는 뇌활동이 뇌 속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내 기억에는 전극을 부착한 뇌 피질이 운동의 발화에 관여하는 일차운동영역인지, 운동의 해석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인지 명확하지 않다. 현재 뇌과학에서는 limbic system등에서 운동에 필요한 동기나 impulse가 발생하여 기저핵에서 운동의 형태가 정해진 후 전운동영역을 거쳐 일차운동영역에서 최종적인 상부운동신경의 발화가 이루진다고 본다. 행동과 동반되는 자율신경활동이나 의식화를 위해 시상하부나 전전두엽등이 같이 활성화 된다. 하나의 행동은 담당 뇌부위들이 순차적으로 활성화가 되면서 일어나므로 뇌전기활동 측정 부위에 따라 활동전위 발생시각은 차이가 난다. 따라서 단순한 행동인 경우 행동의 지시는 피실험자의 행동이전에 뇌에서 발생하고 행동에 대한 의식은 피실험자의 행동 이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통찰과 정확한 신경회로에 대한 지식은 관계가 없다. 설령 내 독서기억나 뇌과학적 지식이 전적으로 틀렸다 하더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내 통찰은 무한한 시간에 걸쳐 무한한 인간들이 느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독서를 계기로 나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 전까지는 모든 통증은 언어화 되어있고, 언어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듯이 인간 서로간에 통증을 소통하기 위해 인간은 통증을 느낀다고 생각하던 것에서 변화가 왔다. 

 

뇌는 판단을 통해 유리한 행동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의 목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상의 그 무엇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며 인간의 뇌에게 허용된 것은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한 자각(conscious)내지 감상(affection)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행동이 철저하게 무의지적이고 목적이 없음을 깨달은 순간 모든 구속과 원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우주란 철저히 연기하고 있다는 결정론으로 되돌아간다. 이때 인간은 그 무엇을 찬양하기 위한 존재가 된다. 개개 인간의 행동이 주어진 각본에 따라 움직여진다면 전체 인간행동의 목적은 이미 역사이전에 정해져 있을 것이다. 우주는 시작과 끝이 짜여져 있고 베틀 위의 실과 같이 갈 길이 정해져 있어, 이 때 인간에게 주어진 배역이란 고통에 구원을 요청하거나 자비에 감사하거나 우주의 심원을 보여주는 그 무엇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재학이나 황재의 만화를 보면 고수는 서로의 존재를 직감한다. 어떻게? 그저 상대방이 고수임을 느낀다. 셜록이나 포와르류의 추리는 통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간 야스퍼스의 코트자락에서 느껴지는 고수의 기운에 흠찟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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