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 샘 강의>
폴 벤느는 역사학자로 로마시대사를 전공하였다. 자기의 학문체계내에서 언어체계를 발견하였다. 문학이 갖는 언어체계와 과학이 갖는 언어체계가 있다. 그것을 우리가 깔고 간다. 문학에 과학의 언어체계를 가지고 가면 이해할 수 없다. 언어체계는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언어체계가 있다. 
푸코는 언어를 사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말과 사물은 다른 차원이고 상이한 차원으로, 모든 언어는 해석이다. 어떤 방식으로 의미화 하는가. 해석을 통해서 사물의 체계가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이 진실이다. 언어를 붙이는 순간 세계가 만들어(창조, 구성) 진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먼저 사물을 그리고 그 다름 배경을 그린다. 반면에 피카소의 그림은 배경과 사물의 구분이 없이 공간을 만든다. 동시적이다. 하늘에 번개가 칠때 번개가 치고 하늘이 배경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번개가 치는 하늘이 있는 것이다. 언어가 되는 순간, 동시적으로 공간이 만들어 진다. 폴 벤느는 담론을 어항이라고 부른다. 어떤 전제 하에는 말하는 전제가 있다. 전제는 나름대로 우리시대에 깔고 있는 것이다. 
15세기 가족에 대해 얘기할 때 전제와 20세기의 가족의 전제는 단어는 같아도 전제(표현, 언어적 배치, 코드)는 다르다. 神이라는 같은 단어도 원시인, 근대인, 현대인의 담론은 다르다. 푸코와 벤느의 실천은 세계를 구성한다. 경험적이다.
문제는 담론 체제에 있는 사람은 자기가 어떤 전제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담론을 진실이라고 하고 그 밖을 허구라고 본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담론층위의 언어인 진실은 이런 체계를 떠날 수 없다. 언어체계는 틀을 만든다.(패러다임) 비담론적 층위는 물질과는 다르다. 

푸코가 감옥을 말할 때는 비물질적 층위인 지식의 체계와 감옥, 학교, 병원 등 물질적 층위가 연합된다. 둘은 환원되지 않지만 맞물리며 간다. 이렇게 보는 것은 이른바 우리의 담론 세계를 상부구조로 보고 비담론세계를 하부구조로 본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라고 할때 "생산"을 하부구조로 보고 지식체계는 상부구조이다. 막스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다고 보았다. 
지식이나 이데올로기가 신념이다.이데올로기는 실체가 무언가에 기만 당하고 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나름대로 독자성을 가지고 반영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다른 욕망이 작동한다. 그런데 이 욕망을 자본주의가 따르면서(포획) 자본화 한다. 두가지가 독립적으로 얽히면서 간다. 많은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법이다. 이 문법을 보는 것이 타자이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문법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게 역사적 지층(시대)이다. 
들뢰즈는 지구에 몽굴몽굴한 것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한다. 입자들이 모여서 대륙을 형성하였다. 인간도, 생명체도 하나의 지층이다. 이들이 서로 결합하는 입자들이 과정을 거쳐서 40억년전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역사도 비담론과 담론의 독자적인 것이 만나는 것이다. 푸코와 벤느의 역사적 지층은 끊임없이 변한다. 오작동, 새로운 것이 생긴다. 지구의 대륙안에서 지진나고, 해일이 덥치고 계속 변화한다. 그게 결정적인 순간 홍수, 대지진 등 큰(근본적) 단절의 순간에 뭐가 바뀌는데 이것은 무수한 우연들이 모인 결과(?)이다. 

니체는 주사위 놀이. "차라투스트라는 아이들의 주사위 ‘놀이’를 통해 이 문제를 해명한다. 하늘로 던져진 주사위는 땅에 닿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변화에 내맡겨진다. 이것은 삶의 우연성 혹은 현재 상황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의미한다. 하늘로 던져진 주사위를 구속할 어떤 필연성도 없다. 그러나 주사위는 땅에 떨어져 하나의 숫자가 나오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주사위 놀이는 우연과 필연의 반복이다.(···)주사위로 노는 ‘아이들’은 다르다. 던져질 때마다 주사위는 그들에게 매번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더욱이 놀이에 열중해서 경쟁이 붙은 아이들은 주사위 놀이에 몰입한다. 학자들의 주사위 던지기가 동일한 것의 회귀의 문제라면 아이들의 던지기는 매번 차이의 귀환이다. ‘생성’의 반복, 혹은 ‘차이’ 나는 반복이다.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대신 매 순간 ‘설레요.’, ‘힘들어요.’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채운샘이 강의가 생각나지 않아서 고전톡톡 중에서 가져왔습니다.)

푸코는 중세에는 범인을 처형했던 것을 근대에는 감옥에 감금하는 것을 지식의 진보가 아니라고 보았다. 지식과 권력의 작동하는 방식이 달라져서 감옥에 가둔다. 이때의 권력구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았다
21세기 사람들인 우리는 지층인 자신의 담론을 보지 못한다. 과거로 가서 이 지층과 저 지층이 어떻게 보았는가를 본다. 이 시대의 지층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의 실마리가 역사이다. 열쇠만 준다. 자물쇠를 푸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자기의 힌트를 찾아가는 것을 계속하면서 열쇠가 되고 그게 사후적으로 구동된다. 역사는 우리시대를 ... 실마리만을 주더라도 우리 지층을 반성하고 또 다른 지층을 상상하며 단절을 만나는 것이다.

상상력이란 실제적이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힘이다. 이미지도 구체적 상으로 떠오른다. 상상력은 허구라는 것을 깬다. 이성은 상상력이다. 무언가를 구성하여 우리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학자는 자신의 의식으로 구성한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구성하고 독자에게 이해시킨다. 믿게한다. 믿는다는 것은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는 순간 움직인다. 믿음은 복종이다. 실천이고 따른다. 교회에는 믿음의 체계가 작동한다. 그것을 비난할 수 없으나 교회 밖의 믿음체계와는 다르다. 진실 프로그램은 장소, 환경에 따라 여러개의 진실이 있을 뿐이다. 그 역사에서 진실이라는 믿음 체계, 진실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진실보다 먼저 이 프로그램(전제)이 선행한다.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기도 했고 안 믿기도 했다. 신화를 대하는 방식은 기원전 5세기 투키디데스 이후 변한다. 투키디데스는 객관적인 것을 역사에서 취했다. 그리스 인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달랐다. 둘다 믿었는데 신화를 믿는 차원이 달랐다. 뭐를 진실이라고 했는가의 과정을 보아야 한다. 그리스인은 누구도 신화가 거짓이라고 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없는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 인들은 신화를 역사로부터 과장되었거나 변형되었다고 허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받아 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누구가 말한 것은 그리스 인들에게 거짓이 아니다. 진실이 뭘로 자인하는가 관점이 중요하다.

벤느에게 진실은 Fact 의 문제가 아니다. 허구라고 하는게 무엇인가. 이야기 한다고 하는 것, 줄거리화 한다는 것에는 허구적인 것이 있다. 역사는 Fact 가 아니라 그것을 연계하는 줄거리이다. 줄거리를 가지고 세상을 구성한다.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알 수 없다. 줄거리는 잘 하는 것이 구성적 상상력이다. 역사라는 것은 하나의 시간관을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각각의 지층이 존재하고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진실의 프로그램으로 나의 키워드를 얻는다. 내 시대의 여러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나의 지평을 이해한다. 진실은 믿음 체계이고 실천한다. 

어떤 대상을 어떻게 문제화 하는가. (1) 대상이 어떻게 사유되는가. 곰이 조상으로 사유되는 시대. (2)다른 사회적인 실천하고 연관되어 있는가. 곰이 사회에서 어떻게 의미가 되는가. 그것이 신이라고 생각되는 동시에 다른 메카니즘을 보아야 한다. 그것을 하는게 역사가 이다. 
조선 실록의 기록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기록적 fact 외에 왕과 왕위를 어떻게 사유하고 왕을 왕으로 보는 것은 무엇인가. 하늘은 왕을 또 어떻게 보는가. 이런 왕을 민중은 어떻게 보는가를 역사가는 본다. 역사가는 여러 층위를 고려해서 본다.
역사가 배제하는 역영을 분석하는 것, 담론과 비담론의 체계를 보고 이것이 진실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역사는 대상의 의미를 지층이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만들고, 이런 것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믿음의 양태가 한사람에게도 존재한다. 역사는 시연(구연)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스 역사가들에게는 언제나 독자가 있었다.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독자의 사고를 존중했다. 민중의 믿음에 따라 경이로움을 제거하기도 하고 민중의 믿음에 뭐가 있다고 경이로움을 추가하기도 했다. 
자금의 역사가는 새로운 사료를 발견하는게 목표이다. 만약 논어의 판본이 거짓이라는 사료가 발견된다면 지금까지 수백년 논어의 연구(가)는 큰일이다. 그런데 그리스 인들은 사료가 나오더라고 그전에 있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고 존속해 간다. 

지금은 지식이 개인 소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 체계에서 뭔가를 가지고 온다. 무언가의 진실 프로그램에서 표절의 의미가 있다. 
벤느에게 진실은 복수적이다. 그럼 변형은 어떻게 하는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이해관계이다. 힘의 의지(욕망, 권력의 의지)이다. 자기의 욕망이 이해 관계가 다른 언어와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이게 다르지 않다. 어떤 것은 믿는 프로그램 그것이 의지이다. 내 의지는 무엇인가. 누구의 판단을 비난할 수 없으나 싸울 수는 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는데 타인과 싸우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진실은 이해관계의 전제에 있다. 진실은 허구의 딸들이다. 진실은 대상이 없다. 믿는 다는 것과 진실의 대상을 만든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내용(기계적 배치, 영토)을 바꾼다. 내 욕망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결국 궁전과 공간, 줄거리(인과)를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가지 인과관계들이 만들어 내는 우연성이다. 결국은 여러 우연들이 그 순간 그렇게 작동했다.

진실은 가변적 척도이다. Fact가 있고 구상적 상상력으로 구성하는게 역사이다. 궁전은 공간안에 세우는 것이 아니고 궁전 자체가 공간이다. 그 시대의 공간에서 그 시대의 사람을 보는 것. 세계의 흐름은 똑같은 방식이 아니다. 매번 지층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다시 촉발한다. 그런 순간에 우연이 모여서 그런그런 변화가 시작된다. 변화에 의한 단절은 그 시대에 보지 못하고 후대에 단절이 있었음을 설명할 수 있다.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있는데 무엇보다 진실하고 무엇보다 정의롭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상대주의가 아니다. 자신의 진실을 가지고 가는데 자기의 것이 절대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자기 내부의 한계에서 싸울 수 있어도 자기 내부까지 적으로 돌리고는 싸울 수 없다. 비교주의, 나만이 진실이라는 것은 피해야 한다. 얼마나 다양한 진실을 가질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담론은 안경을 쓴 것을 인정하고 언제든지 안경을 바꾸어 쓰거나 벗을 수 있다. 이 역사의 지층과 저 역사의 지층은 다르다. 
니체는 비(반)역사를 반시대적 고찰의 역사라고 보았다. 진실은 어쨋든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안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지점에서 멈추는 것이 비고 반이다. 지층을 인식하지 못할 때 멈추고 타자로써 본다. Fact가 중요하지 않고 fact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중요하다. 이럴 때 키워드 또는 안경이 주어진다. 스피노자는 말년에 렌즈를 깍으면 살았는데, 철학을 하면서 사는 것은 내가 맞는 렌즈를 깍는 것이 아닐까. 다른 말로 문제화이다. 안경을 깍는 작업, 폴 벤느에게는 역사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본다는 것은 비전, 앎, 삶을 같게 한다. 진실을 매 순간 마주한다. 누구에게나 진실은 있다.(이명박에도 오세훈에게도) 

벤느와 푸코는 우리는 환상을 가지지 않고 어떻게 싸울 수 있는가.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고 무기를 내려 놓을 수 있는 사람. 자기의 진실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사람. 루쉰은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아는것이다."이라고 말한다. 무사의 이미지이다. 
무사는 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면 스승으로 모시지 않는가.

PS. 11주차 후기를 노특북에 저장해 놓았는데, 노트북 그래픽 카드가 수명을 다하여 화면을 볼수가 없습니다. 노트북의 자료를 옮기는데로 올리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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