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명명하면서 4월을 자신의 달로 만들어버렸다. 그가 4월을 자신의 달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프레이져의 <황금가지> 덕분이었다. 엘리엇 왈 ‘나의 ’황무지‘는 <황금가지>를 시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어쨌거나 1년 12달 중 4월을 엘리엇에게 빼앗긴 기분이다.
<황금가지>를 읽으면서 엘리엇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나카자와 신이치가 대칭성 사회로 명명했던 시기를 엘리엇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시대로 보았던 것일까? 그리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환멸과 현대문명의 불모성을 ‘황무지’로 진단했던 것일까?
나는 <황금가지>를 읽으며 재앙 같은 8월을 보냈다. 도시는 지하철이 침수되고 도로가 끊기고 산이 무너져 내렸다. 날마다 질겨지는 오랏줄 같은 빗줄기에 발목이 묶여 가장 뜨거운 생의 여름을 앓았다. 엘리엇에게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면 8월은 내게 재앙의 달이 되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이태리타월로 영혼의 때를 미는 일과 같다. 눈과 정신에 씌었던 두터운 때가 벗겨지고 시각이 넓어지는 것 같은 기쁨으로 한동안은 즐거웠다. 그러나 그런 기쁨은 잠시 뿐. 시간이 지날수록 탐史라는 이태리타월에 마음의 살갗이 벗겨지고, 벗겨진 마음에 딱지가 앉기도 전에 다시 벗겨지곤 했다. 남은 것은 티끌과도 같은 인간이라는 유한성의 존재에 대한 연민과 쓸쓸함이다. 사마천이나 레비스트로스의 심정은 어땠을까? 외롭다는 말을 이제야 겨우 이해하게 되는 듯하다. 외롭고 쓸쓸하다고 하더라도 남은 탐史를 비켜가지 말기로 하자.
상강
천 리 너머 대륙의 북풍
큰 하품을 하자
서리가
겨울로 가는 지름길을 냈다
내게로 오는 모든
따스한 바람이 묶이고
천지가 숙연하다
다시 한 철
외로움의 관절
하얗게
삐걱이겠다
후기에서 결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후기 쓰기가 아니 제의의 희생양을 비껴가기가 이렇게 어려울줄 미처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