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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저는 분명히 추석 지나고 목요일까지로 기억했는데 들어와서 공지를 보니 8일까지네요.

희생제의ㅠㅠ

 

 

 

 

탐사 3기 중간후기.

 

장금쌤과 때때로 하는 이야기인데,  탐사는 정말로 재미있는 세미나 같습니다. 지난 2기도 아주 좋았는데 이번 3기도 예상치 못한 충격들이 강타합니다. 기원전 3세기 사람들이 비슷하면서도 얼마나 다르게 살았는지 보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원시인님(?)들의 내공이 한 차원 더 센 것 같습니다.

 

 

탐사 3기의 첫번째 책인 잭 구디를 읽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왜 공부를 하고 또 공부로 뭘 하려고 하는지, 구디의 글을 보고는 이거다 싶었습니다.

구디의 책이나 다른 인류학 저서들을 읽으면 내가 얼마나 좁고 캄캄한 곳에 서 있는지 보게 됩니다. 그 손바닥만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참으로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좁은 공간은 앎을 축적하고 지식을 키우는 만큼 벗어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타자를 내 안에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딱 그만큼 이 좁은 '감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 채운쌤이 '공감'이란 동일화가 아니라 나를 버리고 너에게 가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나와 너의 '다름'의 간극만큼 저의 좁은 공간도 커지는 거겠지요. 그것이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오리엔트의 타자이든 이웃의 타자이든 (혹은 심지어 우리들 자신의 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든) 타자들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맞설 우리의 안전장치 위에 있을 필요가 있다. 잘못된 해석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그 일을 피할 이유는 아니다. 특히 타자를 재현하는 과정은 우리가 그 일이 대해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잭 구디, <역사인류학 강의>, 341)

 

조금 웃기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원동력은 중학교 때 처음으로 겪은 충격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저는 아주 협소한 ‘관계맺기’를 지향하는 그런 꼬맹이였는데요(ㅡ,.ㅡ). 친밀성을 지향하는 대안학교에 입학하면서 저의 그런 습관들을 다 버려야했습니다. 남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한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관계맺는 방법을 그 나이에 A부터 Z까지 일일이 새로 배워야했는데, 매일매일이 번뇌의 장이었습니다. 쟤는 도대체 왜 저럴까? 왜 내 행동에 화를 내는 걸까?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좋은 관계란 그냥 두루두루 친하면 되는 걸까? 이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미스터리였으니... 이 캄캄한 무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때보다 동요를 덜 할 뿐 여전히 ‘미스터리’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헌데 인류학자들은 공부를 통해서 그런 지점을 돌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에 <곰에서 왕으로>와 <황금가지>를 읽으면서 매우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아마존의 눈물>처럼 피상적인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던 원시인들의 삶이 갑자기 피부로 와 닿았습니다. 추수를 할 때 기뻐도 기쁜 척 하지 않는 태도, 곰이 내 아내이고 내 자식이라는 신화, 새끼곰을 고이고이 키워 한방에 죽이는 축제. 이 사람들이야말로 자기자신과 타자(외부)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살기 위해 타자를 매번 죽이고 상처 줄 수밖에 없는 우주의 리듬. 이 리듬 속에서 최대한 예와 존경심과 신성함을 갖출 줄 아는, 그리하여 다시 새롭게 관계를 만드는 그 뛰어난 감각.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너를 나와 동일시하는 게 아니라 나를 버리고 너에게 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 같습니다. 죽음과 삶, 타자와 나 사이의 경계가 숭숭 뚫려있는 이 사람들에게 과연 역사가 필요할까요. 그들은 과거를 돌이켜볼 필요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발전할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타자와 내가 어떻게 서로 공존하는지 그 비밀을 안다면 지금-여기에서 충분히 영원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뢰즈/가타리가 <천의 고원>에서 모든 것은 처음이나 끝이 있지 않고 ‘중간’에서 시작한다고 말했을 때,  갑자기 이 <황금가지> 사람들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 백지상태이고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 또한 모두 ‘중간’에 있는 게 아닐까요.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관계가 새로 맺었다가 헤어지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과 마찬가지라고 정화스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원시인들의 삶은 이 모든 것이 ‘중간’에서 구별되지 않고 어우러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능숙하게 중간에서 또 다른 중간으로 넘어갑니다.

 

(제가 저번 시간에 프레이저를 보고 김을 샜다고 해서 많은 질타(?)를 받았는데요. 사실 그 김샘은 너무 큰 기대를 건 반동작용이었습니다ㅎ 신이치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구체적이고 리얼한 사례를 통해서 커다란 자극을 주었으니, 마무리도 멋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는데 너무 정돈되어있고 겸손한 결론이어서...)

 

 

 

겸손해서인지 다들 장수하신 인류학자들. 그분들은 빛나는 공부만큼 일상에서도 타자와 공감하는 감각을 터득했을까요. 궁금해집니다. 저번 2기에 <몽타이유>를 읽었을 때 몹시 놀라운 경험을 했는데, 당장 옆 사람도 이해가 안 될 판에 쌩판 남남인 ‘14세기초 랑그독 지방 산골마을 100가구’의 사람들이 생생하게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보다 더 쎈 <황금가지>를 읽으면서, 거꾸로 내 일상이야말로 나에게서 가장 ‘먼’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시인들은 그 몸짓 하나하나가 다 다른 까닭에 놀라고 희한해하고 또 공감해보려고 하지만, 함께 있는 사람과는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미처 다르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상대를 동일화하거나 아니면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가장 어려운 공부의 현장은 일상...! 지금도 여전히 ‘관계’의 번뇌가 저를 공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훌륭한 책과는 달리 제 일상은 너무나 서투르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는 도대체 내가 무엇을 공부했는가 돌이켜보게 됩니다. 책과 삶의 현장이 너무 멀어서, 도대체 책을 읽는다는 게 무엇을 알게 되는 것인지 모르게 되는 것인지 헛갈리다가도, 그래도 하는 수 없이 또 다시 길을 찾아 책을 손에 들고...

(그러나 잭 구디의 말처럼 "그러나 그것이 결코 그 일을 피할 이유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자와 함께 살고 또 공감한다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이상 계속될 테니까요.)

 

 

탐사 3기가 반이나 왔습니다. 늘 제가 놓치고 보지 못한 부분을 꼼꼼하게 짚어주시고 새롭게 상상하게 해주시는 조원들, 이 멋진 공부를 하게끔 길을 내주신 채운쌤, 발랄한 목소리로 씩씩하게 토론을 이끄는 제리쌤에게 무한감사입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남은 절반도, 아리송하지만 한발한발 함께 공부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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