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史4 2012.02.13 엔트로피로 본 생명과 양자역학으로 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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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중심에 놓고 사유한다. 인간의 지층에서 바라볼 때와 다른 층위에서 바라볼 때는 다른다. 인간중심의 사유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에서 사유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박테리아의 영역부터 우주의 영역까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맥락이 없이 바로 만나야 한다.
역사에서는 흥망성쇠의 개념에 집중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경험하는 시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역사이다. 인간에게는 시간의 방향이 질서로 향한다는 믿음이 있다. 안정을 향해가는 인간의 논리를 부여한다. 안정에 대한 추구는 자연과학과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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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무질서도)하면 부정적인 관념을 가진다. 엔트로피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자연의 원리이고 방향성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어떤 것이 일어날 경우의 수가 많은 것을 말한다. 책의 예와 같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600페이지 원고를 공중으로 던졌을 때 페이지가 1페이지부터 600페이지까지 순서데로 정렬될 경우보다 페이지가 흩어질 경우의 수가 무수히 많다. 이는 엔트로피가 저-엔트로피에서 고-엔트로피로 갈 경우가 즉, 질서에서 무질서로 나아가는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높다는 것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세상은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만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시간의 방향성에 관련해 '시간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흐른다'라는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물리계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상태로 이동한다는 것은 시간의 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지각과 경험의 세계에서 시간은 한쪽 방향으로 진행하며, 시간의 방향으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모든 물리계는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상태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과거로 향하던 미래로 향하던 증가한다. 엔트로피의 원리만을 놓고 보면 시간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다만 현재만이 있으며 과거나 미래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따라서 엔트로피는 저-엔트로피에서 언제나 고-엔트로피로 향한다. 이것이 시간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그럼 엔트로피와 시간의 방향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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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엔트로피는 우주라는 계(System)에서도 증가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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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경험하는 시간의 방향에서도 저-엔트로피로 갈 수 있지만 이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기에는 확률적으로 희박한다. 바닥에 떨어져 깨어진 계란이 원래 모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은 '0'은 아니지만 경험으로 관측된 사례는 인류역사에 없다. 인간도 엔트로피의 원리로 볼때 언제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안정은 일시적인 상태이다. 인간의 안정은 기적적인 확률로 주어진 것이고 고-엔트로피 상태로 향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의 방향은 엔트로피로 설명이 된다. 인간의 생도 저-엔트로피 상태에서 태어나서 청년기에 방점을 찍고 고-엔트로피로 향한다. 즉 생에서 죽음으로 향한다. 140억 우주의 역사는 저-엔트로피에서 고-엔트로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인간의 역사가 안정을 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이것은 인간의 망상이다.
인간의 세계에서 안정을 향해가고 있다는 망상이 비극을 낳는다. 안정에 대한 망상이 커질수록 인간의 아집이 응집된다. 저-엔트로피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도 총 엔트로피는 여전히 증가한다. 인간이 안정을 추구하여 저-엔트로피 상태에 이르더라도 우주의 총 엔트로피는 증가한다(인간의 엔트로피는 우주에서 극히 미미하다). 엔트로피의 감소를 향한 인간의 의지는 결과적으로 총 엔트로피를 증가시킬 뿐이다. 문명은 저-엔트로피 상태로 향해 가려하지만 우주적으로 보면 (미미하지만) 엔트로피 증가를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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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볼때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멸종은 슬프거나 중요하지 않다. 생명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은 부질없지 않지만 멸종은 당연한 것이고, 멸종을 통해서 새로운 종이 생성하는 것이다. 인류의 탄생도 수 많은 개체군의 멸종하는 사건으로부터 태어났다. 20억년전 지구에 산소가 증가하는 환경오염으로 95%의 박테리아가 멸종하였고, 여기에서 산소를 호흡하는 박테리아가 살아남았다. 이때 환경오염은 지구의 대기에 산소의 비중이 오랜 시간에 걸쳐 증가해서 발생하였으며, 그때의 대기중 산소의 비중은 20% 이다. 이 산소의 비중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인류의 탄생은 산소의 환경파괴와 박테리아의 멸종으로 태어났다. 산소의 환경오염으로 인한 파괴와 멸종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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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슨가족에서 DNS를 분석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


인간의 역사의 범주는 천년을 세기로 하지만 지구는 억년의 역사를 범주로 하니 시야가 다르다. 인간의 역사는 그 자신의 심리적 측면에서는 중요하다. 우주의 역사에 인간의 층위는 논할 수 없고 망상일 수 있지만, 인간은 존재를 자신의 층위에서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중요하다.
들뢰즈는 철학을 하는데 지층을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지층에서부터 사유할 수 있다. 역사에서 망각이 필요한 지점이 있으나 망각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지각의 지층을 인지한 상태에서 망각을 도입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지구의 층위와는 어긋남을 인정하고 가야 한다. 인류은 폭넓은 층위에서 모든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의 시각이 아니라 우주의 시간에서 박테리아의 시간까지 시야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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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대한 인식은 범주의 문제이다. 인간의 시야를 어떤 층위에 놓은가에 따라 우주의 지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사유할 수 있다. 모든 층위를 고려한다면 주체의 자리를 설정할 수 없다. 어떤 자리를 설정하는가가 세계를 만든다. 대립의 시각이 아니라 인간, 박테리아, 우주의 층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가? 인간의 망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고 심리적 관점과도 다르다.
필연은 우연에서 출발한다. 37억년전에 지구에서 생명이 출현했다. 우주의 역사를 설명하려해도 빅뱅에서 막힌다. 빅뱅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아직까지 빅뱅이전의 상태를 설명할 논리가 없다. 단지 우연이 무엇이 일어났다는 것으로 보는데, 여기가 우연의 순간을 긍정해야 하는 지점이다. 빅뱅과 생명 탄생이 우연성의 지점이다.
에피쿠로스는 우연을 비스듬한 운동(편위, declination)으로 보았다. 에피쿠로스는 "원자들은 영원히 운동한다. 원자들 중 어떤 것은 아래로 곧장 떨어지고 어떤 것들은 비스듬히 떨어지고 다른 것들은 충돌해서 위로 튕긴다."라고 <쾌락>에서 밝힌다. 에피쿠로스의 비스듬한 운동이라는 개념은, 원인이 없다고 하는 뜻으로 엄밀하게 보자면, 우연이라는 개념과 같은 것이다. 키케로는 에피쿠로스의 우연을, 비스듬한 운동에 있어서는「원인이 없는」사건이 중요하다고 말함으로써,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원자들의 직선으로부터의 편위(declination), 즉 클리나멘(clinamen)이다. 데모크리투스는 원자들의 허공에서의 운동을 두가지로 기술하였다. 우선은 수직 낙하하는 직선운동이며, 두 번째는 원자들간의 충돌에 따른 직선 운동이다. 그런데 에피쿠로스는 그 중간에 직선으로부터 벗어나는 편위 운동을 집어넣었다. 클리나멘이란 접선으로부터 이탈하는 곡선의 미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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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의 제1원인을 창조에서 출발하는 사유와 우연으로 출발하는 사유가 있다. 이것이 차이이다. 근원의 제1원인을 초월성으로 사유하는 방식은 과학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데카르트는 신의 관념에서 실체를 관한 사상을 전개시켰다. 그는 중세에 성립한 신, 인간, 세계라는 개념을 신, 정신, 물체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이것들을 실체(實體, substantia)라고 부른다. 실체란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 자기 이외에 아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mens)과 '물체'(corpus)는 '유한실체'이고, '신'은 '무한실체'이다. 따라서 신만이 진정한 실체이고, 정신과 물체는 넒은 의미의 실체일 뿐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신은 정신과 물체라는 두 실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매개적인 것이기 때문에 실체에 관한 그의 사상은 정신과 물체에 집중하고 있다. 정신의 속성(attributa)은 '사유'(cogitato)이고, 물체의 속성은 '연장'(extensio)이다. 이 사유와 연장(延長)은 서로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기 때문에 정신과 물체는 서로 어떠한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과학이 근원에 다가갈수록 우연의 발생을 바탕으로 깔고 간다. 들뢰즈는 생물학을 공부하고 '차이'를 철학으로 가지고 와서 생명안에서 자기차이를 생산하지 못하면 존재할 없다고 보았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통해 반복을 긍정한다. 반복은 동일성마저 차이로 정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동일성이란 차이나며 반복되는 것에서 차이를 제거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심리적인 관점에서는 동일성을 가지고 있지만 양자적인 관점에서 매순간 양자의 배치가 차이를 나타낸다. 물리학적으로 인간은 배경과 분리되지 않으면 우주의 양자들과 배치를 이루고 있다. 자신을 구성하는 양자는 우주와 끊임없이 주고받기를 반복하는 것이고 매순간에 차이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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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를 통해 종합하여 통일성을 가진다. 통일성을 부정하지 않으나 (시간 종합) 차이가 선행한다. 대칭성에서 비대칭성으로 우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제1원리를 끌어들이지 않고 이것을 끌어들여 설명한다. 차이가 중요한 문제이다. 우연이 자기차이를 내재적으로 생성한다. 시간은 경험의 영역에서 흐른다. 변화를 통해서 경험한다. 이것이 자기차이다.
시간은 인간의 환상이다. 아인슈타인의 관점에서 시공간은 흘러간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이란 단일한 시공간에서의 모든 점들이고 우인간은 경험하고 있는 현재 밖에는 경험하지 못한다. 현재에는 시공간의 모든 점이 들어 있다. 하나의 시공간이 한번에 존재한다. 사유의 문제에서 고민하면 경험하는 지금의 단면에서 과거는 어디에 위치하는가. 경험의 시간에서 지금은 현재이고 과거의 위치는 다르다. 인간이 심리적인 차원에서 시간은 중요하나. 우주적인 차원에서는 인간의 시간 또는 시간에 대한 의식은 별의미가 없다.
내가 겪고 있는 변화는 시간의 경험에서 나오는데 변화가 무슨 의미인가. 시간을 어떻게 종합하는가는 인간의 문제이고 동일성으로 인가을 사유하는데 그 자체가 시간은 아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경험과 지각의 차원에서 종합되는 것이지 진실은 아니다. 시간의 되집기는 물리법칙으로 가능하다. 시간의 되집기 문제는 인간의 경험과 물리법칙의 간극이 너무 넓다. 인간의 물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을 환상이라고 보기 어렵고, 엔트로피법칙으로도 한쪽 방향으로 무질서도가 증가한다. 엔트로피 증가는 파괴적인 상태를 생각한다. 인간은 고-엔트로피 상태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개입시킨다. 질서와 무질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자연의 상태이다. 그런데 이를 구분하자면 질서는 어떤 것이 응집되어 있는 일시적인 안정 상태로 곧, 안정이 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를 나타낸다. 금속 중에도 금이 가장 안정된 상태로 응고되어 있어 해체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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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는 물질의 안정도가 최고도에 이른 상태이자 해체가 곧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이다. 어떤 상태로도 될 수 있는 잠재적 상태가 무질서도가 높은 고-엔트로피이다. 계절에서 겨울이 고-엔트로피이고 봄이 오면 만물은 무질서에서 생명을 생성하여 안정을 위해 저-엔트로피가 일어난다. 겨울에는 잠재적인 차이들이 존재하고 현실화하는 것이 봄이다. 무질서의 상태는 무에 얶매이지 않고 무엇인지 질서를 잉태하고 있는 상태이다. 어느것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
바다유는 소모를 고-엔트로피로 보았다. 자본이 축적되는 것을 저-엔트로피 상태로 파괴의 위험도가 증가한다. 문명사의 변화 원인을 잉여의 소비 방식에서 찾는 바타이유는 비생산적 소모, 즉 <저주의 몫>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가 어떤 형태의 끔찍한 소비와 맞닥뜨리게 되는지를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등 전방위적 성찰을 통해 깊이 있게 탐사한다. 바다유는 <저주의 몫>에서 자본의 축적은 인간의 욕망이 달라붙는 것이고 이것은 깨지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왕성하게 자라는 것은 물질의 법칙에 위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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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은 자기를 보존하려는 욕구가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소모가 동시에 일어난다. 이러한 자기 보존 욕구를 스피노자는 코나투스(Conatus, 힘)로 언급한다. 코나투스(Conatus)는 역량(potentia, puissance)이 윤리학·인간학적 의미로 사용될 때, 가질 수 있는 의미로, 자아를 보존·발전·완성하려는 욕구 내지 노력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자기보존 욕구를 위해 소모가 동시에 일어난다. 나를 위해서 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다. 자기를 보존한다는 것은 자기를 죽음으로 가는 욕구와 대립되지 않는다. 고-엔트로피는 특정상태(현실차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지 많다는 것이다. 생물적으로 저-엔트로피는 내 생명을 수백년을 이어서 존속살 수 있는 확률이 적다는 의미이다(물론 0은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변이 가능성이 높다. 생명체를 보존하는 본질은 분자이지만 실제로 개체군 안에서 무질서도가 증가하여 변이가 일어난다. 저-엔트로피의 종은 외부 자극에 쉽게 멸종한다. 나치가 추구했던 순수혈통의 아리안인은 하나의 질병에도 절멸할 수 있는 위험을 노출된 위험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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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말라르메는 “우주를 보고, 생각하고, 분별한다는 것, 그것을 그 진면목으로 예감한다는 것은, 우리가 말을 하고 있다는 그 이유 때문에─이 무슨 발견인가!─우주를 곧바로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시 <주사위를 한 번 던짐>에서 이야기 한다. 말라르메는 주사위 던지기 처럼 매번 다른 우주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매번 현실의 지층을 유지하려는 욕망이 있다. 안정된 상태를 욕망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수록 탐욕스러워 진다. 현자가 되는 것은 우주의 법칙으로 자기를 만든다. 엔트로피를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을까. 엔트로피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높아지는데 근대의식은 엔트로피를 낮추려고 한다. 모든 우주의 질선느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거기에서 물질, 에너지의 결합이 일어난다. 고-엔트로피는 많은 수의 배열 상태를 가지고 있다. 삶은 일시적이라는 것은 안정이라는 저-엔트로피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말한다. 고-엔트로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삶에서 방황하고 싸우고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우주의 (무)질서는 인간이 안정을 추구하는 의식과 반대되는 방향을 가진다. 인간은 고민에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태가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중국 역사에서는 수많은 왕조의 소멸을 볼 수 있는데 왜 멸망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오랜기간 존속할 수 있는가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중국에서 당나라는 290년이라는 기간 동안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가 미스테리로 보아야 한다. 조선왕조는 500여 년간 계속됐다. 평균 수명이 200∼300년밖에 안 되는 중국ㆍ일본ㆍ영국 등의 다른 왕조와 비교하면 두 배 정도 오래 유지된 셈이다. 비결이 무엇일까에 의문을 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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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왜 유지할 수 있었는가와 왜 멸망했는가는 다른 의식이다. 지속되는 것은 내 어떤 망상이 지속하게 하는가. 일상에서 부부 생활도 30년정도가 저-엔트로피로 볼 수 있고 그 이후에는 고-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이 탄생하고 봄에 싹이 피는 순간은 고-엔트로피에서 저-엔트로피로 나아가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어떻게 한 순간 배치가 바뀌었는가.
왜 18세기 어떤 우연이 자본주의 상태를 형성했는가를 질문해 볼 수 있다. 저-엔트로피는 극미한 우연의 순간이고 안정된 순간은 한시적이다. 무질서의 상태에서 안정성은 희귀한 상태이다. 인간이 안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인류에게 중요할 수 있으나, 지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의 20만년 역사는 짧은 시간(46억년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이라고 비유해보며 인간의 출현은 자정전 1분 17초이고 이중 호모 사피엔스는 3초가 될까말까이다.)이며 수많은 생명이 생멸은 슬픈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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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억년 지구의 역사
붓다에게 인류가 멸망해도 지금 할 일을 할 것이다. 인류가 지구에 살고 있는 것이 기적이다. 불교에서는 ‘맹구우목(盲龜遇木)’과 ‘침개상투(針芥相投)’라는 비유를 통해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하고 있다. 전자는 백 년에 한 번씩 바다 위로 올라오는 눈먼 거북이 마침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나 그 위로 머리를 내밀고 쉬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후자는 수미산에서 겨자씨 하나를 땅바닥에 던져 놓고 다시 바늘 하나를 아래로 던져서 바로 그 겨자씨에 꽂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 어느 쪽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확률을 말하고 있다. 스님들은 다음 생에도 기적의 확률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라고 덕담을 한다.
생명의 잉태는 고-엔트로피에서 저-엔트로피로 변환하는 장치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환경 파괴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치적 층위에서 환경파괴(건설)와는 싸워야 하나, 우주의 질서로 볼 때는 다른 말을 할 수 있다. 바다유는 문명이 해체되는 방식이 여러가지로 나타난다고 본다. 지구의 층위에서 말할 수 있는 방식이 있고 정치적 층위에서 말할 수 있는 방식은 다르다. 여러 층위에서 생각해 보면 지구의 선택과 인간의 선택은 다를 수 있다. 질서가 존재해도 전체 층위에서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우주의 근원을 말할 때 물질은 시간의 방향과 관계없이 고-엔트로피로 향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빅뱅은 극저-엔트로피 상태로 추측할 수 있다. 초기 우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저-엔트로피 상태였으며 시간의 불가역성을 이렇게 증명한다. 빅뱅 이론이 왜 요청되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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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그런데 관측을 하면 양자가 입자로 보이며 파동상태를 분철시킨다. 양자는 관측으로만 알수 있고 배치(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모든 가능한 과거들이 동시에 존재하다가 관측의 행위하 분철을 한다. 이같이 세계에 대한 인식은 끊어내기이다. 인식하는 것 자체가 본질적인 것도 아니고 절대적이지 않다. 물질은 우주에서 끊어낼 때 내 위치가 물질의 상태를 다르게 인식한다. 물질과 나의 관계가 절단되는 동시적 세계이다. 배치가 세계이다. 물질이 나에 의해 변환된 상태로 존재하고 나도 그 물질과 더불어 변화된 상태로 존재한다.
닐스 보어는 '상보성 원리(몇몇의 모순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현상이 개별적으로 분석될 수 있음)'은 하나의 가능성을 현실화한다. 이는 모든 가능한 과거를 하나로 끊어내는 것이고 현재의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 푸코의 의미에서는 나를 감싸고 있는 지층에서 과거를 볼때 현실의 막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막, 안에서 굴절된 과거를 절단하여 현실화 한다. 과거의 가능한 층위에서 계열화하여 현실화 한다. 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술되는 것도 아니고, 과거는 매번 다르게 현실화 된다. 패트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고 이것을 현실화 할때 과거가 매번 다른 현실을 말한다. 과거는 입자이고 파동이며 관측되는 순간 드러난다. 지금의 시대를 일방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다. 관측 행위에는 관측자의 욕망, 의지, 문제의식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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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적 차원에서 과거를 수정하거나 지울 수 있다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새롭게 형성한며, 지금 현실화된 방식이 과거까지 설명한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변용능력이나 반응능력 그리고 자극능력에 따라 사물들을 분류한다. 이들은 어떻게 서로간에 결합하고 해체되는가? 존재들은 관념의 일치가 아니라, 신체들의 능력의 공통성에 따라 서로간에 결합하거나 해체된다. 니체는 지금의 힘이 에너지를 증가시키는가 감소시키는가로 부정과 긍정을 판별한다.
양자역학에서 과거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며 어느 것이 현실화될 수 있는가를 여러가지 잠재성으로 볼수 있다. 입자를 붙잡을 때 과거는 인식된다. 파동의 상태에서 과거는 알 수 없다. 어떻게 우리가 과거를 현실화할 수 있는가를 역사서술로 가지고 올때 무슨무슨 정신은 근대적 역사서술이다.


역사의 원형은 알 수 없고 지금의 현실적인 방식을 역사를 볼 수 있다. 근대의 역사는 기념비적인 것이 된다. 전태일이 노동자로써 분신한 사건을 기념비나 기념사업, 행사 등으로 가지고 오는 것은 들뢰즈가 말하는 '벌거벗은 역사'이다. 들뢰즈의 '옷을 입은 역사'는 전태일의 분신을 지금의 행위인 노동운동, 인권운동 등과 현실화하는 지점에서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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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에 세워져 있는 전태일 기념비.


지금의 우리의 문제를 보아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역사는 반복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를 반복한다고 볼때 희극이 되고 비극이 된다. 푸코는 현재의 역사를 본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본다. 자기 시대를 보기 위해서 현재를 본다. 과거에 사람들이 투쟁하였던 패트를 현재에서 바라보면 지금의 욕망을 사유할 수 있다. 역사서술은 과거를 기록하거나 기념,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서술 안에서 현재의 욕망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역사서술은 모두가 다른 세계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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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년 9월 10일 - 2002년 5월 20일)는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인 고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 과학사가였다. 당대에 가장 널리 알려지고 많이 읽힌 교양과학 작가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말년에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하며 자택이 있는 뉴욕 시 소호지역 인근의 뉴욕 대학교에서 생물학과 진화 이론을 강의하였다.
굴드의 가장 큰 과학적 업적은 1972년 닐스 엘드레지와 함께 발표한 단속평형설이다. 단속평형설은 생물이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종을 유지하다 특정한 시기에 종분화가 집중된다는 이론이으로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계통점진이론에 반하는 이론이다.
굴드는 두 종류의 달팽이, 버뮤다 달팽이(Poecilozonites)와 땅콩 달팽이(Cerion),를 연구한 진화발생생물학 전공서적 《개체발생과 계통발생》(1977년)을 시작으로 많은 서적을 출간하였다. 굴드는 진화 이론에서 자연선택만을 강조하는 것이나, 이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 등에 대해 반대하였다. 또한 굴드는 창조론을 부정했으며 과학과 종교는 서로 중첩될 수 없는 별개의 권위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굴드는 《네추럴 히스토리》에 300여 편의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이 중에 많은 글이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다.《다윈 이후》, 《판다의 엄지》, 《풀하우스》등이 유명하다.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 ; 1842년 ~ 1898년)는 프랑스의 시인이다.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와 더불어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단을 주도했다. 시인의 인상과 시적 언어 고유의 상징에 주목한 상징주의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 출신으로 에드거 앨런 포의 《갈가마귀》를 불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당대 파리의 문인들을 비롯 인상주의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했으며, 폴 발레리, 앙드레 지드, 폴 클로델 등 20세기 전반 프랑스 문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 시집으로는 《목신의 오후 (L'après-midi d'un faune)》(1877), 《주사위 던지기 (Un coup de dès)》(189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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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2/13 <탐사4기> <우주의 구조> 2,3부 후기 및 다음주 공지 장료 2012.02.15 5254
137 탐사4 PBS다큐 초끈이론 1 file 인비 2012.02.14 13660
136 [탐사4] 후기-<마이너리티 리포트> 실존과 필연에 대한 질문 file 인비 2012.02.08 7208
135 탐사 4기 역사와 시간 4주차 후기 및 공지 장료 2012.02.08 3613
134 음미해볼 문제 4 그녕 2012.02.07 3691
133 [탐사4] 후기 <우주의 구조> 1of3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으로 세상보기 file 인비 2012.02.04 5012
132 [탐사4] BBC Atom(원자) 3부작 file 인비 2012.02.03 12114
131 탐사4 3주차 공지&후기 장료 2012.02.02 4238
130 [탐사4]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실려있는 다른 책 인비 2012.02.02 3706
129 탐사4 보조 자료 BBC 다큐 TIME file 인비 2012.01.31 6412
128 탐사4 후기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2 file 인비 2012.01.24 5883
127 1/16 탐사 후기 및 다다음 주 공지(다음주는 설연휴 관계로 쉽니다~) 장료 2012.01.19 4485
126 탐사4 보조자료 다큐 <NGC 우주의 미스터리> 인비 2012.01.17 30082
125 탐사4 후기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file 인비 2012.01.11 5910
124 1/9 탐사 시즌 4 후기 그리고 공지 장료 2012.01.11 4209
123 탐사 보조자료 남산강학원 2012.01.10 4034
122 탐사 시즌 4 역사와 시간 후기&공지 장료 2012.01.03 4247
121 탐사 시즌4 [역사와 시간] 세미나 안내 채운 2011.11.15 6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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