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4> 우주의 구조 4주차 2012.01.30


21세기 인류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도 대부분의 인간은 17세기의 의식 구조에 머물러 있습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온지 100년이 지났으나 인간의 의식은 17세기의 뉴턴의 이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각과 경험의 세계 자체도 불안정합니다. 아래 그림을 시각으로만 본다면 우리는 오렌지색의 원이 크기를 다르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측정해보면 두 원의 크기는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요소 중 하나인 시각에서 오류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지각과 경험의 세계인 17세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걸음이 됩니다.

지각과 경험에만 의존하고 있는 인류의 대부분은 아직도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明)의 상태입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써 어떻게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뉴턴, 아인슈타인, 파인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해야 합니다. 즉 감각과 직관의 세계를 바탕으로 상대성 이론의 거시세계(우주) 그리고 양자역학의 미시세계(원자)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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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원을 지우면, 가운데 있는 원의 크기가 같음을 알 수 있다. 과연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일까?
<출처: Fibonacci at en.wikipidea.com>


존재에 대한 인식

틀뢰즈는 자신의 철학 개념을 다른 학문에서 가지고 온다. 예를 들면 지질학에서 지층을 가지고 와서 인간의 의식과 사회를 설명한다. 물리학은 존재라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고 질량과 부피를 가지고 있다. 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면 입자를 관측하는 순간 인간에 의해 보내진 광자에 의해 입자는 변화를 겪게 된다. 이는 인간의 관측이 존재(입자)에 매순간 개입되기 때문에 객관과 주관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관측하는 자체가 주관의 개입을 의미한다. 만약 앞에 빵이 있을 때 빵이라고 인식하기 전까지 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존재를 인식하고 언어를 가지고 자연(지구, 우주)으로부터 그 물질은 절단해 낸다. 원자의 입장에서 보면 빵은 밀집되어 있는 원자의 집합이지만 절단되어 있지는 않고 경계도 없다. 원자들이 떠다니는 공간에 일부 원자가 밀집되어 빵을 구성하고 있을 뿐입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땅속에 있는 광물을 지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을 구성하는 구분되지 않는 요소일 뿐이다. 이를 인간이 과학과 언어를 이용하여 광물을 지구로부터 분리한다. 인간은 화학 작용을 이용해 광물에서 원하는 원소들은 축출해 내서 금, 철, 은 등의 기표로서 지구로부터 절단해 낸다.

물리학자들은 인식하지 않은 것을 존재한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어느 날 왕양명이 남진이라는 곳을 거닐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바위 위에 피어 있는 꽃을 가리키며, "선생께서 마음 밖에 사물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저 꽃은 스스로 피고 집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과 필경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이지요?"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왕양명은 "그대가 저 꽃을 보지 않았을 때에는 저 꽃과 그대의 마음이 다 같이 적막(寂寞)하였다가 그대가 저 꽃을 보았을 때에 저 꽃의 빛깔이 일시에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니. 어찌 저 꽃이 결코 그대의 마음 밖에 있다고 하겠소?"라고 하였다. 사물의 형체와 빛깔은 마음의 지각과 인식에 의해 비로소 작용이 일어나는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비록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을 왕양명은 강조하고 있다. 주관(관측 행위)과 대상을 분리하면 객관의 세계가 존재한다. 주관과 객관의 세계를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두 세계를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가를 상대성이론은 설명한다. 상대성이론은 절재적 시공간의 존재를 이야기하며 객관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양자역학은 관측에 따라 다르다고 사고한다. <우주의 구조>에 나오는 아인슈타인의 달은 누가 보지 않아도 항상 그곳에 존재하다는 것과 양자역학에서 관측하지 않으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의 대립은 이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물을 바라볼 때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볼 때와 상대성이론에 따라 볼 때가 다르다. 물리적 세계를 과학으로 바라 본 것이다. 물리적인 차원의 지각은 역사와 철학에도 영향을 준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고유한 것으로 역사가 진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의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도 역사란 무수히 많은 경로를 통해 결과이기 때문에 인과를 단일하게 설정하지 않고 무수히 많은 경로를 통해 역사의 사유해야 한다. 무수히 많은 역사의 사유는 항상 전재를 의심하는데에서 출발할 수 있다.
리처드 파인만도 "과거로부터 전해진 것이 진정 올바른 것인지 의심하는 것,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직접 경험을 통해 재발견하는 것, 전해 내려온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믿지 않고 실제 상황을 파악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온 종의 경험을 그대로 믿지 않고, 새롭게 직접 경험으로 재확인함으로써 얻게 된 가치 있는 발견의 결과, 이것이 과학입니다.”라고 한다.


식빵으로 본 상대성이론

구에 무수히 많은 직선의 합이라고 보는 것과 둥그런 원이라고 보는 것 다른 세계의 차원이다. 인간의 눈으로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직관이 아니 것으로 경험할 수 있을까. 物에는 생각과 사건이라는 뜻이 담겨있는데 물질과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모든 서술이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컵도 마시는 컵, 담는 컵, 깨뜨리는 컵, 장식으로 컵, 놀이의 컵, 살인도구로 컵 등 무수히 많은 사건으로 컵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컵에 무엇이 담겨있는가에 따라 다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다. 세계를 다르게 보는 것은 다른 사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공간이 비어있는 것과 차있는 것이 다르고, 실체라고 부르는 것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과 진동하고 있다는 것은 다르다.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과 시공간이 물체와 복합체로 관통하고 있다는 것은 다르다.
직관과 경험의 세계는 뉴턴의 이론으로 이해가 된다. 인간의 힘을 느끼는 때는 가속도 운동이 일어날 때인데 이는 힘의 변화가 일어난 현상이다.
<우주의 구조>에서 식빵을 예를 아인슈타인의 절대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사건을 본다는 것은 시공간의 4차원 공간에서 빛이 망막에 그려지는 활동이다. 식빵을 자를 때 정사각형, 마름모형으로 자를 수 있다. 이때 식빵의 모양(시간과 위치)은 다르게 보인다. 식빵을 1mm 간격으로 같은 숫자들이 50개정도 있도록 만든다면 식빵을 정사각형의 자르면 식빵 단면에는 같은 숫자들이 쓰여 있겠지만 마름모로 자르면 식빵의 단면에는 여러가지 숫자가 쓰여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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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은 서구식이고 구분이 잘 되지 않으니 한국식으로 무지개 떡을 가지고 설명해 보자. 위 그림과 같이 무지개 떡을 썰때 직각으로 자르고 단면을 보면 단색만 보인다. 그런데 이것을 대각선으로 자르면 단면에는 여러가지 색이 겹쳐 보인게 된다. 각 색을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면 직각으로 자를 때와 대각선으로 자를 때 단면이 다르듯이, 정면에서 바라보는 겉과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공간에서는 사건은 관측자의 시공간에 따라 고유한 관측점이 생긴다. 모든 관측자에 따라 사건을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지구에서는 이 관측의 오차가 미세하기 때문에 차이를 알 수 없다. 만약 지구에서 일어난 사건을 우주의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본다면 그 차이는 현격하게 날 수 있다. 우주에서 지구 관측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중국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데 유럽은 아직 로마가 지배하고 있는 모습이 보일 수 있다. 우주의 반대에서는 그 반대가 보일 수 있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우주로 나가는 빛이 우주에서 시공간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의 세계이다. 반면에 뉴턴의 공간에는 시간이 분리되어 따라서 어느 곳에서 보던 절대공간은 변하지 않고 사건을 동일하게 보인다. 우주에서 운동할 때 시간이 들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무의식으로부터 생성

아인슈타인에게 실체는 존재하고 엮여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을 말하는 데 공간은 비어있지 않고 힘이 작용한다. 모든 물체는 힘을 주고 받는다. 어떤 물질이 존재하면 거기에는 힘들이 존재하고 물질의 힘이 장을 형성한다.
생물이 죽으면 원자는 흗어지고 다른 물질과 결합하게 된다. 다른 물질과 결합할 때 힘들이 작용한다. 그렇게 모인 원자가 물질을 형성하고 생명체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나라는 의지 이전에 원자의 의지에 의해 생명된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최소단위인 원자 힘의 차원이 업이다. 업이라 다 끌어내는 것이다. 윤회하는 것은 업을 가지고 있다. 원자 최소단위에서 이끌린다.
불교의 유식을 보면 마음을 8종으로 분류하여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 등 8식을 세운다. 유식에서 아이비설식은 인간의 오감으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미각, 감각에 의지해서는 의식을 변화하는데 한계가 있다. 의식을 바꾸려면 말나식, 아뢰야식인 무의식까지 보고 생성해야 주체를 바뀔 수 있다. 정신의학은 무의식이 미치는 영향을 정신분열로 간주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보았다. 반면에 들뢰즈는 무의식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정신의학에 대해 사회의 관습으로 되돌리려하는 인간의 창조를 가로막는 장치(?)로 보았다. 무의식을 본다는 것은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에 이르는 출발점이다. 또한 무의식을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할 수 없다. 해석은 무의식을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짐착할 수 있을 뿐이다. 들뢰즈는 무의식을 잠재력으로 보았다. 들뢰즈는 무의식으로 부터 생성의 힘인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프루스트는 홍차와 마들렌(프랑스식 빵)을 먹을 때 어릴적 기억이 무의식으로 나오면서 회상을 시작하여 작가가 된다. 어린 아인슈타인도 만약 빛의 파동을 타도 여행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를 하는 의문을 계속 품었다. 그리고 그 해답이 상대성이론이다. 프루스트는 글을 쓰기 위한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사회적 활동을 중단하고 평생을 글쓰기에 매달린다. 프루스트는 천식까지도 글쓰기 리듬에 맞추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도 대부분의 시간을 빛을 타고 다니지 않았을까 그의 창조력은 모두 빛에 쏠렸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일상에서 무득 부딪치게되는 무의식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생성의 문제가 된다.

인간은 사회의 습에 얶매이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를 고(苦)라도 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전제를 가지기 때문에 끼리끼리 모이고 다르게 보기 어렵다. 자아 의식의 오류인 전제를 의심하지 않고는 다른 것을 볼 수 없다. 사회의 관습에 따라 살아가는 내가 자유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전제를 의식하여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자유의지가 있다.
장이라는 것은 빈 것이 아니라 힘이 가득차있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끌려가고 끌려온다. 그것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지만 기질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지금까지 관측으로 우주는 일상적인 물질4%, 암흑물질23%, 암흑에너지73%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이 감각하는 것과 의식도 물질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에서는 감정도 타인이 느낄 수 있다. 분노가 차있는 사람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노기를 직감하고 보지도 않고 피한다. 실제로 작동하고 얽히는 것이다. 현대 과학이 물질에 대한 사고 방식을 바꾸어 준다.

보이지는 않아도 힘을 미치고 있다면 다르다. 여기에 아인슈타인 중력장이 중요하게 사용된다. 물질이 A에서 B로 이동할 때 공간과 함께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분리되지 않은 시공간 복합체로 생각했다. 역사도 역사적 공간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이동한다. 20세기에서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설명한다고 하면 두시공간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의 관측자도 시공간의 복합체로 흔들리고 18세기의 프랑스 혁명도 시공간 복합체로 진동한다. 이때의 언어, 글도 진동한다. 이렇게 진동하고 있는 두개의 시공간 복합체를 관측자가 패트를 뽑아내어 진동하는 것을 붙잡아 고정된 것으로 보고 서술한다. 현재의 공간 배치를 고정하고 18세기의 패트를 뽑아내는 것이 역사이다.

양자중첩
과학자는 자신이 이론이 통일 이론을 되기를 원한다. 과학자는 자신의 이론이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원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인문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역사 서술이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역사가로써 역사의 관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역사가는 자신이 서술하는 지점에서 흔들림이 과거의 역사서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아야 한다. 어떤 시대에서 역사의 사건을 바라보는지를 알아야 한다. 현재를 회의하고 바라보는 것과 하지 않고 보는 것은 다르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로 본다면 위치를 고정할 때 운동을 희생해야 한다. 역사에서 희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중력에는 힘이 작동하는 존이 만들어 진다. 중력과 가속도운동이 같다. 지구에서는 항상 중력을 받고 있고 느끼고 있는 것이 운동성을 설명해 준다. 힘을 느끼다는 순간에는 계속 운동하고 있다. 운동은 곧 변화이고 존재이다. 운동은 살아있는 존재의 증명이고 속도의 변화는 시간의 변화이다.
존재라는 것은 모두 진동하고 다 다른 시공간에 있다. 중력에 의해서 시공간이 휘어진다. 그 사람의 존재 방식에 따라 힘은 다르게 작동한다.  물리적 차원에서 그 변화는 미세하나 원자에게는 엄청난 변화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왜곡된 상태이다. 절대진리가 있는가. 절대진리가 아니라 가설이 있고 과학도 언제든지 깨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물질'들(산, 행성, 별, 은하 등)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총물질과 에너지의 4%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4%중 수소와 헬륨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무거운 원소들은 0.03%밖에 안된다. 다시말해 우주를 구성하는 나머지 96%는 안보이는 '미지의  물질'로 되어있다는 뜻이다. 현재를 서술할 수는 있지만 현재의 지층에서 물질과 언어, 정신도 계속 진동하고 있다. 말과 언어로도 한 시대를 붙잡을 수 없다. 인간은 동시대의 지층의 흔들림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입자를 관측할 때 융기되어 있는 곳에서 입자가 발견될 확률이 높다. 불확정성의 원리와 같이 역사의 사건도 진동하고 있는 것이고 그중에서 위치를 고정하고 계열화하는게 역사이고 지층이다. 관측 자체가 항상 인식에서 비롯된다. 관측자에 시각에 따라 역사에 서술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계보학이다. 현재에서 관측하고 철저하게 현재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 역사 서술의 출발이다. 그것을 의심하지 않은 채로 다양하게 설명한다. 미시사와 거시사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이 아니라 같은 영향을 주는 것이다. (계보학은 채운샘에게 한번 들은 것으로는 한계가 있네요. 계보학을 공부해서 다시 정리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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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중첩, 양자역학에 의해 밝혀진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성질 중 하나로 하나의 물리계가 서로 다른 두 상태에 동시에 존재하는 효과를 보이는 현상이다.


에너지와 질량은 등가이고 변환 가능하다
중력은 시공간의 곡률을 변화시킨다. 물질이 힘을 받기도 하고 거꾸로 시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시공간에서 존재가 변화이다. 인간이 주고 받는 에너지도 엄청나다. E = mc² 는 질량-에너지 동등성(mass-energy equivalence)을 나타내며 모든 질량은 그에 상당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그 역 또한 성립한다(모든 에너지는 그에 상당하는 질량을 가진다)는 개념이다. 70KG의 남자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빛의 속도는 대략 30만 KM/s, 여기에 공식을 적용하면 빛의속도제곱x질량=에너지, 300000 x 300000 x 70 =  6300000000000이다. 이는 6조 3000억이라는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
태양은 내부가 2000만℃, 외부가 7000℃의 온도로 열과 빛을 지구로 보낸다. 그 거대한 에너지는 태양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수소원자 4개가 융합해서 헬륨원자 1개가 되는 반응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원자량표에 의하면 수소 원자량은 1.008, 헬륨은 4.003이다. 그렇다면 수소원자 4개로 질량이 4.032가 될 터인데도 헬륨이 4.003에서는 0.029만큼의 질량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7/1000만큼이 에너지로 변환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을 E = mc² 식으로 계산하면 충분히 거대한 에너지로서 태양이 열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질량 자체가 무한한 에너지 즉 잠재력이 있다. 태양과 같이 인간도 질량 중 일부만 에너지로 변화하더라도 엄청난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잠재력을 어떻게 에너지로 현실화할 수 있을까.
배치(관계)에서 어떻게 질량을 에너지로 전화하고 시공간을 굴절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힘들이 장에 영향을 주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사건을 구성할 때 인과관계를 단일성이 아니라 장에 미치는 모든 힘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

상대성이론이 나온지 100년이 지났으나 인간의 인식을 변화하지 않았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엄청난 관성이 작용해 아직도 인간은 뉴턴의 17세기에서 살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직관과 경험의 보수적 세계로는 원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양지약학은 동양의 기의 세계와 유사하다. 그래서 서양의 과학자들이 인식론의 한계를 뚫고 나가기 위해 동양의 불교, 역학을 공부하기도 한다.
양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물질이 두가지 형태인 입자이며 파동인 상태로 존재한다. 동양에서는 물질이 물질과 반물질 상태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에 대한 추가적인 가정이 아니고 양자역학의 통계적 해석으로부터 얻어진 근본적인 결과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위치-운동량에 대한 불확정성원리이며,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위치가 정확하게 측정될 수록 운동량의 퍼짐(또는 불확정도)은 커지게 되고 반대로 운동량이 정확하게 측정될 수록 위치의 불확정도는 커지게 된다.


지금까지 모든 물질은 뉴턴,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3가지 이론으로 어떻게 물질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바람 깃발 마음도 없다

*바람이 절의 깃발을 울리고 있었다. 이를 두고 한 승려는 깃발이 펄럭인다 하고, 또 하나는 바람이 펄럭인다 했다. 둘이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자. 육조가 말했다. “바람이 펄럭이는 것도, 깃발이 펄럭이는 것도 아니고, 다만 너희들의 마음이 펄럭일 뿐이다.” 두 승려는 이 말에 흠칫 놀랐다.
*나 혜개가 말한다. “바람이 펄럭이는 것도, 깃발이 펄럭이는 것도, 또한 마음이 펄럭이는 것도 아니다. 어디에서 육조의 뜻을 볼 것인가. 만약 여기서 절실한 파지가 있다면 알게 될 것이다. 두 승려가 철을 팔아 금을 얻으려 하고, 육조는 참을성 없이 끼어들어 결국 한바탕 코메디가 벌어진 것을.”
*송하여 가로되, “바람과 깃발, 마음의 펄럭임은 한 줄로 엮여 있다. 다만 알지니, 입을 열면 덜컥 낭패한다는 것을.”


채운 샘이 던지신 <무문관>에 나오는 '육조의 깃발'의 화두입니다. 채운 샘이 설명해 주셨지만 각자 화두로 가지고 고민해 보는 것도 우주와 양자를 이해하는 데 길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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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o t e ────────────────────

유식(唯識)
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오직 마음뿐으로 외계의 대상은 단지 마음이 나타난 결과라는 불교사상이다. 여기서 유식의 '식(識)'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말해서 마음이고 유식이라고 하는 말은 글자 그대로 '오직 마음''모든 것은 마음에 의한 것이다'라고 하는 이 학설의 기본적인 주장을 요약한 명칭이다. 유식은 모든 것을 마음의 작용으로 보고 마음이 어떤 형태로 작용하는가를 심도 있게 추구한 이론이라는 의미에서 진정한 심리학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마음의 구조와 그 심리작용 등을 잘 인식하고서 활동하면 궁극적인 목적인 성불(成佛)의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원리와 그 수행성을 강조한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다.
   세친(世親)의 《유식삼십송》에서 정립된 사상으로 유가학파의 근본 철학인 유식사상은 일반적으로 바깥에 있다고 생각되는 대상들은 인식작용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로부터 생긴 것으로 견분(見分)이 상분(相分)을 인연하여 생긴, 결국 자기 자신의 인식수단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은 결정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인식을 통해 비로소 존재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2차적인 현상일 뿐이다.
  즉, 유식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마음을 8종으로 분류하여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 등 8식을 세웠다. 이중 앞의 5식을 전오식(前五識)이라 하고 뒤의 3식을 각각 제6식·제7식·제8식이라고 한다. 제7식(말나식)·제8식(아뢰야식)은 무의식의 영역에 속한다. 3성설(三性說)을 새롭게 내세우고 있다. 모든 존재의 양상을 마음속으로 환원하여 앞에서 말한 3종으로 분류했다. 3성은 마음의 본래적 양상인 동시에 포괄적으로는 존재의 본래적 양상이다. 요가수행을 통해 유식관이라는 구체적인 관찰법을 교리적으로 조직하고 체계화했다. 이중에서 가장 큰 특징은 아뢰야식을 온갖 존재를 낳는 근본식(根本識)으로 삼고, 그 위에 말나식과 의식을 세운 점이다. 아뢰야식이란 장식(藏識)으로 번역되고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으로 별칭되듯이, 그 속에 과거에 지은 업의 영향이 종자로 보존되는 동시에 현재·미래에 걸쳐 자기의 심신 및 자연계를 낳는 근원체이다. 마음 이외에 사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식설에서는 마음을 객관인 소취(所取)와 주관인 능취(能取)로 이분하는데, 능취로서의 마음인 견분(見分)이 사물의 모습으로 유사하게 드러난 소취로서의 마음인 상분(相分)을 바라본다고 한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마음이 마음을 본다는 인식구조설에 근거하여, 모든 것은 마음의 드러남에 불과하며 자기 및 외계를 실체라고 보는 마음에서 괴로움과 오류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말나식(末那識) [말라식]
삼식(三識)의 하나. 모든 감각이나 의식을 통괄하여 자기라는 의식을 낳게 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객관의 사물을 자아로 여겨 모든 미망(迷妄)의 근원이 되는 잘못된 인식 작용을 이른다.


아뢰야식(阿賴耶識) [아뢰야식, 아뤠야식]
삼식(三識)의 하나. 일체(一切) 법의 종자(種子)를 갈무리하고 일으키는 근본(根本) 심리(心理) 작용(作用).

암흑에너지dark energy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빌렘 드 지터는 '무한히 크면서 물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서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진공이 반중력에 의해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음을 알아낸다. 즉, 물질이 전혀 없는 우주라 해도, 그곳에 있는 암흑에너지가 우주를 팽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우주는 정적이면서 그 안에 물질이 존재하지만 드 지터의 우주는 동적이면서 물질이 전혀 없다. 아인슈타인의 우주에서 우주상수의 역할은 중력을 상쇄시켜 정적인 우주를 유지하는 것이지만, 드 지터의 우주에서 우주 상수는 팽창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암흑물질dark matter
천문학자 베라 루빈은 은하수의 움직임이 은하 중심으로부터의 거리와 상관없이 모두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는데,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빠른속도로 회전하는 은하수는 원심력때문에 분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은하수가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은하수 총 질량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10배이상 커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뉴턴의 법칙 (만유인력에서의  이 힘은 두 상호작용하는 점질량 사이 질량의 곱에 비례하며, 두 점질량 사이의 거리에는 제곱에 반비례한다.)에 의하면 은하수 질량의 90%가 우리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예를들면 암흑물질로 이루어 져 있다는 것이다.) 별의 총 질량보다 10배나 많은 미지의 물질들이 은하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우주의 이해 하지 못한 암흑물질들이 그 '잃어버린 질량'을 차지하고 잇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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