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8[EvE]-5<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2/프란츠 파농>태람조/ 보타

 

이번 에티카 시간을 통해 사전 지식(?) 전혀 없이 파농의 책을 처음 대하는 독자로서 이 책『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서두에 언급한 저자의 ‘폭력’에 관한 견해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민족해방, 민족 부흥, 인민에의 국가 반환, 연방 등등 어떤 이름을 갖다 붙이든,

아니면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붙이든, 탈식민화는 언제나 폭력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 p49

 

우선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준을 넘어 예찬하는 듯한 작가의 범상치 않은 태도에는 뜨악한 첫 느낌 한편의 무언가 귀 기울여야만 할 것 같은 힘이 실려 있었고, 그것은 ‘이건 뭐지?’ 하는 의아함과 호기심이 일게 했다.

처음 분량의 반을 후루룩 읽었을 때의 느낌은 뭐랄까? 어떨떨함? 평소 나의 관념으로는 선뜻 찬동할 수 없는, 그러나 차분히 내용을 곱씹어 봐야 할 듯한, 괴상한 마력 같은 것이 묘하게 사로잡았다. 그러면서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을 두 번에 나눠서 읽도록 하신 채 선생님의 강의계획에도 문득 의문이 쏠렸다.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지평을 열어야 하는 걸까? 를 새삼 부담스럽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그러나 그것도 잠시, 책에 서술된 바의 식민화된 원주민의 무기력한 나른함과도 같이 찌들은 직장인의 모습으로 허덕대다 결국에 대충 의무적으로 읽어버리는 수준에 그치고 마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여 좌우당간 수업 전 이 책의 과제를 얼렁뚱땅 마치고, 수업에 임하게 되었다.

헌데, 채 선생님의 강의를 첨가해 듣고 나니 막연히 책을 읽을 때의 어렴풋하고 모호함과는 달리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 같았다. 하여 두 번째 수업 전 과제로 책의 나머지 분량을 읽으면서는 앞부분의 언뜻 어렴풋하고 신선한 충격(?)에 더하여 시종일관 짜임새 있고 심도 깊게 전개되는 책의 내용이 조금씩 마음을 무찔러 들어오며 뭉클함까지 느껴졌다.

처음 책의 반 분량을 읽었을 때에는 책의 맥락을 살피기보다 ‘폭력’ 이라는 단어 하나에 화들짝 놀란 것이 책에 대한 감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하면, 1차 강의를 듣고 책의 후반부를 연결해 읽으면서는 전반 2장과는 또 다른 느낌의, 저자와 이 책에 대하여 더 진지하게 호감이 일었다. 해서 자꾸만 책의 앞부분을 되돌려 읽게 되었다. 과연 사경(死境) 불사르며 투혼을 발휘한 저자의 마지막 역작(力作) 다운 감동이 물신 풍기는 책이다.

 

 민중이 새 운동과 접촉하면 새 삶의 리듬이 생겨나고, 잊혀진 근육의 긴장이 다시 살아나며, 상상력이 계발된다. p244

 

자신과 싸우는 원주민의 목적은 지배를 종식시키는 데 있다. ... 민족이 하나로 움직일 때 새로운 인간은 그 민족의 후천적인 산물이 아니라 민족과 더불어 공존하며 민족과 더불어 승리하는 존재다. p314

 

유럽을 흉내 내지 말자. 우리의 근육과 두뇌를 모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자. p318

 

 

과제겸 마음 내킬 때의 나의 독서법대로 마음에 들어오는 문구들을 필사하며 찬찬히 들여다보니 과연 전후 맥락이 딱딱 들어맞는 파농의 명징한 주장에 감탄이 인다. 저자의 설명은 매우 투명하고 반듯하게 논리 정연하여 이해와 납득이 절로 된다. 덩달아 내 주장 같은 느낌이 들면서 마치 내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 마냥 착각이 들 정도다.

 

저자의 약력대로 정신과 의사답게 인간 심리에도 일가견이 있어 그런지 파농의 주장 하나하나는 매우 주도면밀하고 설득력 있다. 식민지 지배자나 탈식민화의 원주민, 양측의 입장 모두를 신중하게 간파해 들어간다. 마치 경험 많은 의사가 환자를 다룰 때의 상냥함과 노련함같이 조곤조곤 상세한 설명과 이유를 빠뜨리지 않고 명확하게 조명해 나간다. 그러나 전문의가 진단을 마치고 썩은 살을 도려낼 때의 단호함과도 같이 탈식민화를 위한 그의 논리는 명료하다. 민족의식과 민중을 향한 혁명노선의 당위성, ‘폭력’의 정당성에 대하여는 추호의 양보도 없이 초지일관 확고부동할 뿐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맞서는 서로 상반된 입장의 양측이 각 지점마다에서 겪게 되는 사안들에 대해 샅샅이 파헤치고 낱낱이 고발한다. 아프리카 흑인의 해방과 식민화된 지역들의 탈식민화에 이르는 방향, 나아가 전 인류를 향한 모색에 이르기까지 아낌없이 마지막 사력을 다하는 듯한 신념을 지닌 자의 모습이다.

더 이상 책에 무엇을 덧붙여 언급할 필요가 전혀 없이 완전하게 기획된, 인류의 미래와 민중의 해방을 위한 탄탄한 혁명서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는 텍스트 같은 느낌이다.

 

처음 파농의 이 책『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펼쳤을 때는 솔직히 주장이 잘 들어오지 않고 감이 잡히지 않는 듯 했다. 당혹감 한편, “이거 운동권 서적 아냐?”, “제대로 된 운동권의 바이블 같은 책이네?” 하는 선입견과, 책에도 간간히 언급되었다 시피 이왕에 이런 책을 읽을 거였으면, 맑스에 대해 먼저 공부 좀 하고 체계적으로 읽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이고 맑스와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며, 파농은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80년대 학번을 지나왔지만 여러 정황으로 인하여 애초에 운동권 곁에는 가지 않았고,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 시절 학번의 대다수가 ‘운동’을 하며 대학생활을 보내지도 않았다고 생각된다. 학교마다 특성이 있었고, 운동권은 운동권대로 비운동권은 그들 나름대로 각자 어울리며 지냈다고 생각되는 정도다. 그러니 직접 겪기보다는 주변을 통해 먼발치에서 접하는 정도가 고작(-그래도 간접적으로나마 운동권에 몰입된 경우에 대해 일시적 관찰이 가능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투쟁은 가히 심각할 정도의 강경노선이어서 그들 자신들조차 힘들고 벅찰 만큼 개인적으로 큰 위기가 되기도 했고,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빼도 박도 못할 정도가 되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을 엿보기도 하였다....)이었고, 별로 관심도 없이 지내서 이런 종류의 책은 생소하단 생각부터 들기도 한다.

그래서 솔깃하기보다 이런 종류의 책에 대해서는 미리부터 계획된 장치에 걸려들지 않으려는 반감 내지 걱정이 없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특정인(?)들이나 찾아 읽을 법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예의 그 전술과 전략 노선에 섣불리 말려들지 않으려는 경계심부터 일고는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물론 액면그대로 책의 주장과 내용에 입각한 ‘운동’을 하기만 한다면 누가 걱정을 하고 무엇이 그리 큰 문제가 될까? 싶기도. 그러나 책처럼 선의와 희생으로 점철되는 듯한 ‘운동’과 ‘운동권들의 혁명노선’ 이란 것도 막상 현장에서의 실상은 많은 차이와 괴리가 나타나는 듯도 한 것이 바로 현실적인 문제요 넘어서야하는 벽일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할 분명한 길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그러니까 소위 문민정부 이후부터는 서서히 이전의 정부와는 달리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다. 흔한 예로 만약 1980년대라면 모르긴 해도 지금 이런 정도의 책이라면 이른바 당연 금기서적일 테고 불온서적이라고 시뻘건 딱지가 붙여질 법하지 않는가. 너무도 세세히 농밀하게 왜? 무엇을 위해? 어떻게? 민족운동과 민중의 의식을 개혁하고 해방시키며 주장하는 바의 정신을 고착시켜 나가야 하는지가 아주 구체적으로 적나라하게 서술되어 있고, 방법과 실례나 설명 또한 대단히 치밀하고 철저하게 기획되고 논증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우수개소리로 개인적 일화 하나를 털어놓자면, 그러나 당시에는 정말 어색한 느낌이기도 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오직 박정희 하나여야 하는 것처럼 생각에 갇힌 시절이 있기도 하였다. 그가 시해되고 다른 이들의 이름이 대통령으로 호명될 때 어찌 낯설던지. 그도 그럴 것이 날 때부터 무려 스무 해 가까이 귀에 박히듯 들어온 이름이었으니 왜 아니 그랬을까 절로 이해가 간다. 지금은 아스라한, 그러나 불과 유년시절의 일이기도 했던 우리 사회의 변화에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 무엇이 우리들의 역사와 국가․사회의 진실이고 이념인가가 혼동되기도 하면서... .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일제 36년간의 식민치하가 먼저 떠올랐지만, 후반부를 읽으면서는 자꾸만 우리의 근·현대사와 나의 학창시절, 광주사태 등으로 연결되었다. 그렇게 이해를 돕고자 하는 것이겠다. 그러면서 도대체 민중, 민족의식 어쩌고 떠들어 대는 소위 진보라고 자청하는 세력들이 주장하는 게 정말로 신뢰할 만한 것일까? 하고 의문이 든다. 책에서처럼 정말 오롯이 진지하게 신념을 가지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자신과 더불어 타인들과 인류를 위해 신뢰할 만큼 희생적인 걸까? 궁금해지면서 책의 앞부분의 주장을 거듭 다시 되돌려 읽게 되곤 하였다. 그것은 어쩌면 은연중 나라면 이렇게 초지일관 확고부동한 신념으로 전 인류가 나아가야 하는 진정한 방향에 대해 언제까지나 미련 없이 진지하게 임할 수 있을까를 거듭 가늠하고 자문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책을 통해 파농이 말하고자 하는 민중, 민족의식, 민족해방, 탈식민화의 방향과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일말의 관심과 뭉클한 생각을 가져보는 계기가 되었다.

 

탈식민화는 결코 은근슬쩍 전개되지 않는다. 개개인에게 큰 영향을 주고 그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탈식민화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던 방관자들을 특별한 배우로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역사의 밝은 조명을 비춘다. 또한 탈식민화는 그들의 존재에 새로운 인간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리듬을 부여하며, 그와 더불어 로운 언어와 새로운 인간성을 부여한다. 즉 탈식민화는 새로운 인간의 창조 셈이다. 그러나 그 창조는 어떤 초자연적 힘의 소산이 아니다. 그동안 식민화되었던 ‘사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탈식민화에서는 식민지적 상황을 철저히 의문시할 것이 요구된다. p50

 

이 폭력의 진정한 성격은 뭘까? ...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폭력이지만 그것이 체계적으로 전개된다면 정당의 구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85

 

개인적 차원에서 폭력은 정화의 힘을 가진다. 폭력은 원주민에게서 열등감과 좌절, 무기력을 없애주고, 용기와 자존심을 되찾게 해준다. p105

 

민중이 지금 시작하는 움직임, 곧 모든 것을 의문에 부치게 될 그 꿈틀거림 속에서 민중과 동참해야 한다. 여기에는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민중이 머물고 있는 그 신비스런 불안정성의 지대다. 우리의 영혼이 구체화되고 우리의 지각과 삶이 빛나게 될 곳도 바로 거기다. p230

 

제3세계가 할 일은 인간의 새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p320

 

동지들이여, 유럽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인류를 위해 우리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새로운 발상을 만들고, 새로운 인간을 정립해야 한다. p321

 

또한 개인적인 화두와 연결시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소소함에서 나타나는 폭력 등에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에는 책에서처럼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신념을 가지고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의외로 연결되고 알게 모르게 연류되는 지점들이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오랜 나의 화두도 더불어 풀리는 실마리가 제공될 수 있을 듯한 느낌이다. 더 자세히 차분히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해서 채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세자르의 책 3권도 주문하여 두었다. 읽어보면 분명 이 책과 같이 제법 진지하게 흥미로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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