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에 앞서 본 영화 [폭력의 역사] 후기입니다. (저를 비롯해 총 4분이 감상)

 

나름 끔찍한건 잘 본다고 자부하는 전데도 세미나 끝나고 제공해주신 감이당 숙소에서 자다가 영화가 꿈에 나왔네요. 단순히 끔찍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뭔가가 절 굉장히 당혹스럽게 한 것 같습니다.  채운쌤께서 이 영화를 소개해 줄때 언급하신 내용이기도 하지만 정말 영화 내내 점점 잔혹해지는 폭력의 참상앞에서 의식적인 거부감을 갖게 되는 선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총 세 차례의 살인이 묘사되는데 처음 가게에 침입한 강도를 죽이는 장면에선 '음 저건 정당방위지' 하고 넘어가고 가족을 찾아온 갱단을 죽이는 모습에선 '눈빛 변하는거 보니까 무섭긴 한데 저것 말곤 딱히 방법도 없잖아? 아들을 잡아갔는데.' 하고 또 넘어가고 마지막으로 형을 찾아가 단신으로 거의 갱단하나를 소탕(정말 무슨 용어를 사용해야 할 지 모를정도로 혼란스럽습니다..) 할땐 '정말 어지간히 사람 괴롭히는구만 형이라는 인간이..' 하면서 은근 그 장면을 통쾌하고 스릴있게 바라보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섬뜩하죠. 하나 하나 인정하다보니까 딱 떼놓고 보면 살인마나 할 수 있는 짓을 보면서 전혀 의식적인 거부감을 갖기 힘들게 구성을 짜놓은 무시무시함. 어떤 현상도 혹은 개념도 특정한 배치에 따라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영화에서 한번 더 배운것 같습니다. 이 오묘한 섬뜩함이 텍사스 전기톱살인사건을 보고 나와서 저녁으로 곱창구이를 먹고도 끄떡하지 않았던 저의 무의식세계를 자극한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보타 쌤께서 철저히 현장증언해주신 19금장면시청거부사건은 음... 뭐랄까요 다른 이유 댈것도 없이 전 그런 장면이 정말 부끄러워요. 물론 저도 대한민국의 신체건강한 20대 남성으로서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그런 종류의 영상물도 접해보고 영화관같은데선 뭐 별 신경안쓰고 '관람'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개방된 공간에서 낯선(같이 공부하는 학우분들을 이렇게 표현해서 죄송합니다.) 사람과 그런 장면을 보는건 정말 의식적으로 거부감이 듭니다. 약간 EVE증후군(ㅋㅋ)같이 보일진 모르겠지만 이 부끄러움의 실체가 뭘까요? 그리고 정말 어른이 되면 이런 장면을 아무 동요없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지당한 성장과업중에 하나일까요. 섹슈얼리티는 개방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끄러워하는건 숨기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히, 단언컨데 제가 지금 느끼는 부끄러움의 실체는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릴때 (지금은 좀 덜합니다. 다시 올진 모르겠지만) 느꼈던 부끄러움과는 좀 느낌이 다름니다. 왠지 화면에 나오는 대상이 나인것 마냥 남들에게 보이지 말아야 할 부분을 보인듯한 부끄러움. 허심탄회하게 성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는것과 한 인간의 성행위를 덤덤하게 지켜볼 수 있는건 동등한 차원의 문제일까요.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선 좀 회의적입니다.(다른 의견, 환영!) 혹시나 오해를 살까봐 덭붙여 두자면 보타쌤의 현장증언엔 요만큼의 섭섭함도 없습니다. 그 자리를 피한것 만큼은 저에게 있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어른'된  자의 처신이 어떠해야 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ㅎ

 

으.. 세미나 후기도 쓰고 싶은데 졸려서 아침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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