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것이 인간인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중학교 때 학교 추천도서여서 이미 읽었었습니다.

(그때는 아~ 아우슈비츠 정말로 끔찍하구나~ 정도의 감상이 다였지만)

대략적인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도, 이번에는 유달리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이게 '히틀러'나 '아우슈비츠'의 문제라는 건 별로 문제가 안 되었는데, 왜냐하면 제가 기존 가지고 있었던 그것들에 대한 이미지보다 이번에 읽은 책이 더 험악했거든요-_-;;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가. 저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는 살아있다는 게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직전에 저는 '아무리 시시한 일상이라도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가'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 그 근거가 나는 수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아우슈비츠가 제 얄팍한 경탄을 가볍게 박살내더군요!! 살기 위해 남을 짓밟아야 한다는 명제가 뚜렷이 부각되는 곳. 하지만 그 명제도 결국엔 일시적으로밖에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까요 열심히 살면 살수록 더욱 비참해지니 '살아있다'는 것에 어떠한 의미부여도 불가능했습니다. 게다가, 강의를 듣다보니 이것은 단지 '아우슈비츠'라는 곳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살아남아 다시 정상적인 문명으로 되돌아온 레비에게, 계속해서 살아남은 것에 대한 수치심이 따라붙었기 때문입니다. 괴로워하면서 나약하게 죽어갔던 수많은 무슬림들보다, 멀쩡히 돌아와 세계적인 작가가 된 레비가 훨씬 더 존재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에 눈이 번쩍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살아있다'는 것으로는 삶의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는 겁니다.


이상하지만 저에게 남는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이 역시 자연인가? 아우슈비츠는 문명으로부터 태어난 인간이 설계한 곳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인간들은 굶주림과 고통 앞에서 사회성을 모조리 벗어던집니다. 그 교차로에서 보여지는 끔찍함. 인간도 자연이라면, 이 역시 자연이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인가? 인간이라는 종에게 이런 이해불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면, 도대체 인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자연스럽다는 표현을 차라리 잃어버리고 싶더라구요ㅠㅠ) 윤리를 알지 못하는 '개'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지적이고 똑똑한 '독일군'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이에 다른 길이 있을까요.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제목이 <인간> 일반명사로 생각했다면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채운쌤 강의대로 레비가 제기하는 문제는 결국 '나', 이해불가능성으로 충만한 내 안에서 반복해서 펼쳐지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게 집단적 기억이 아닐까요. 왜 하필이면 70년 전 지구 반대편 독일에서 벌어진 사건이 제 안에 들어온 것인지... 미스터리하지만.... 최소한, 이 사건을 정면으로 뚫고 나아가지 (나아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다른 말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몰랐으면 모르되 이미 이러한 세계를 알아버렸는데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포기한다면 그건 비겁한 외면 밖에는 안 될테니까요.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 분들과는 별개로 제가 저를 위해서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에릭 호퍼 씨 같은 책을 뚝딱 써낼 수는 없지만, 일단은 지금 수준에서는 제 안에서 좌충우돌하는 걸로 충분하다는 마무리를!!!





이제 운디드니를 향해 달려가볼까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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