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읽으면서 무엇을 겪었는가.

저의 장렬한 실패였습니다^^

책을 대충 읽은 것도 아니고 파농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폭력-비폭력을 악-선의 구도로 보지 않고자 무던히 노력했으나... 결국은 거기에 걸려 넘어진...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해서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고 또 파농에 대해서 감명도 받았는데, 글을 쓸 때는 다시 오랜 습관처럼 "왜 굳이 폭력이어야 했을까?"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간 겁니다. (알 게 모르게 저는 파농이 굉장히 호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강의 때 알고 놀랐습니다! 이런 식상한 상상력같으니!!) 파농의 입장에서 <폭력>이 새롭게 개념화가 안 된 셈인데, 발제에서 사르트르 비판해놓고 제가 그의 오류를 똑같이 번복하고 있었습니다-_- 강의를 듣고 파농에게 감동 받으면서 얼마나 부끄러워지던지... 마음은 쓰리지만, 그만큼 제 안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지대로 직면하게 되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볼 때 두려움 같은 게 있습니다. 이 사람의 입장에서 찬성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너무 감정적으로 동조해버리면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 같고, 너무 비판적으로 봤다가는 그 사람과 공명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좋은 독서란 이 둘 다 해당되지 않으며 그저 내 안의 전제를 다 내려놓고 읽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번번 실패하는 저를 봅니다ㅎㅎㅎ

그래도 공부는 계속 됩니다! 전제를 깰 때까지,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니까요!!!




이번 강의에서 감동받았던 것은 자기증오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돌파하는 흑인들의 태도였습니다. 우리는 약자에게 폭력을 사용하지 말고 대신 인류를 사랑하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해자의 논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증오를 양산하는 제도를 기초로 해서 말해지는 <사랑>은, 결국 자기증오의 또다른 변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적대성과 번뇌를 억누른 채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증오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증오를 극복한 자에게만 가능한 해방된 행위가 아닐까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증오를 기반으로 하는 폭력 역시 허망합니다. 그것은 자기증오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품지 못하고 스스로를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증오를 제도화해서, 마치 그게 원래부터 그런 것처럼 감춰버리고 아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말해버리는 상황입니다. 그건 반드시 파농의 시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자기증오를 일상화하면서 살아갑니다. 나는 왜 잘 하는 게 없는가. 나는 왜 어제보다 더 나아지지 못하는가. 나는 왜 얼굴이 희지 못하는가.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하는가. 가끔은 이 마음이 너무나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이 증오가 똑같은 형태로 남에게 향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스스로 정당화하는 것을 볼 때도요.


폭력은 실체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폭력은 반드시 물리적인 형태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관계 안에서 누군가 그것을 폭력으로 느낀다면, 그것은 폭력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해자-피해자 구도가 똑 떨어질 수 없는 것인데, 우리는 매 순간 사건이 터지면 가해자를 찾느라고 버둥버둥 대다가 녹초가 되버립니다) 그러므로 <평화> 역시 반드시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어떤' 폭력, '어떤' 평화냐입니다. 평화를 가장한 불편한 침묵인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폭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습니다. 어떤 이미지, 어떤 사유, 어떤 주장이 지금까지 특정한 태도를 고집하고 있던 누군가에게 폭력적으로 다가간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기증오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면 이 폭력은 혁명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혁명은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폭력적인 사건이었지요^^





자기증오라는 말이 매 시간마다 제 안에서 탁탁 걸립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증오하면서는 결코 잘 살 수가 없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이게 가장 지옥스러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선과 악의 편을 가른 채 저와 그 선의 세계를 동일시하는 순간, '악'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제 자신에 대해서는 증오할 길밖에 남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 대해서 어떤 행위에 분노해야 하는가? 분노해야 하는 <악의 축>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분노해야 할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가 아닐까요. 그것은 <적>에 대한 전투가 아니라 나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까지 포괄한, 파농의 말대로 "끊임없는 투쟁"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도 고민해야 할 것은 산더미지만....


아~~~

EvE 세미나 시작한 후로 몸 속에 혹 하나를 넣고 다니는 기분입니다.

일주일동안, 다른 걸 하다가도 이브세미나에서 읽었던 책 구절들이 불쑥불쑥 생각나서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래도 직면한 이상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고 또 불편하다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혹이 종양(?)이 안 되고 뭔가 새로운 애로 나왔으면 좋겠는디^^ 


이래저래 EvE에서 가장 공부가 많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은 12주, (빡센 스케줄 한도내에서~흐흐) 최선을 다해 달려보겠습니다. 5주차가 되니 많이들 빠지시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달려요 우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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