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2일의 에세이 쓰기와 발표가 끝났습니다. 다들 홀가분한 하루 보내셨는지요. 저도 하루 푹 쉬고 났더니 심신이 아조 개운하네요. 에세이 풍경을 간략하게 스케치해 볼게요. 이번 학기 반장으로서 마지막 미션이네요.(뭐, 시키지 않았어도 할 거였지만요.^^)
9시 30분이 넘자 한두 분씩 파리한 낯빛에 상기된 표정으로 입김을 뿜으며 도착하셨고, 줄서서 원고를 출력하면서 무사히 마치자며 덕담들을 나눴습니다. 인쇄도 좀 늦어지고, 간식들도 챙겨드시느라 10시 20분쯤 돼서 발표 시작.
첫번째 그룹은 혜원과 태욱. 혜원은 ‘사마천의 시대 읽기’라는 제목의 에세이로, <사기>를 사마천 당대의 현대사로 읽어보고자 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네요.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푸코의 말에 바탕해 <사기>가 왜 통사가 아닌 현대사인가에 대해 논증을 시도했는데, 고대사와 현대사를 서술하는 관점이나 방식의 차이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논리적으로 허술할뿐더러, 전체적인 밑그림을 잘못 그렸다는 평를 받았습니다. 김태욱은 ‘하늘의 뜻, 인간의 운명 그리고 역사’라는 거창한 제목의 에세이였는데, 문제의식은 인정할 만하지만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천도’에 접근해 억지스러운 데다 설득력도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분량과 시간의 압박만으로 문제를 돌리기엔, 치밀한 사고와 뒷심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더랍니다.
두번째 그룹은, 선영, 영수, 제리 샘. 동사서독 첫 에세이를 쓴 선영은 ‘한나라의 도의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춘추전국시대에서 진한으로 접어들며 나타난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에 주목해, 새로운 유형의 인물들의 등장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중앙집권 국가가 되면서, 더 이상 영웅적인 스타일보다는 골계나 일자, 화식과 같은 잔챙이들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었다는 것이죠. 근데,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표현들이 많고, 인용문을 이용하는 방식도 서투르다고. 나아가 사유의 게으름을 털어내고, 익숙한 것들을 깨나가면서 더 치열하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셨네요. 영수샘은, ‘진섭과 항우, 죽음 앞에서 자신의 에토스를 발휘한 사람들’이라는 에세이. 제목에 드러나 있다시피, 진섭과 항우를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묶어 현대인들과는 다른 에토스를 지닌 고대인들의 삶과 철학을 읽어내고자 하신 듯합니다. 근데, 죽음으로 묶이기엔 진섭과 항우가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어, 오히려 형가와 같은 자객이나 진시황 같은 인물을 끌어왔으면 어땠나 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제리 샘은, ‘천하를 소유할 방법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로, 진시황과 유방, 그리고 무제의 통치 스타일의 차이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영원히 변화를 거듭해가는, 그래서 누구도 천하를 소유할 수 없다는 역사의 원칙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제로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흥미롭게 정리해주셨는데, 문제의식이 다소 빈약하다며 아쉬워들 하셨네요. 그동안 배운 여러 개념들을 녹여내 다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요.
세 번째 그룹은, 태람, 윤정, 완수 샘. 태람은 ‘권력, 인간의 삶을 재단하는 힘’이라는 글로, 진시황, 항우, 유방에게서 나타나는 권력의 운용 및 존재 방식의 차이에 대해 주목하려고 하신 듯합니다.(맞나?). 개인적으로도 가장 기대가 컸던 제목이었는데,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는지 진시황 본기의 내용만 잔뜩 늘어놓고 알맹이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이나 과정들을 싸그리 무화시킨 채 매번 제로 상태에서 글을 쓴다며 학인들 전체가 떼로 한 마디 단단히 들어야했죠(ㅋ). 다음으로, 윤정은 ‘새로운 유학, 이념의 시대∥-<사기>를 통해 본 한 대 지식제도화의 의미’라는 긴 제목의 에세이로, 한 무제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요구로써 유학이 국교로 요청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이를 중화주의와 연결시키고자 했다는데, 도입을 너무 길게 잡은 탓인지 본론까지 이르지 못해, 이번에도 주위를 안타깝게 했네요. 당근 욕은 욕대로 먹었지요, 마는 초반문제의식이 뛰어나다고 말씀하셨네요. 앞으로는 자기를 더 내려놓고, 쓴 만큼이라도 정리해서 마무리를 지어오라는 당부도 있었고요. 완수 샘은, ‘흉노 열전 및 장군 열전들에 나타난 사마천의 시각’이라는 제목의 글이었고요, <사기>에 나온 흉노에 관한 부분들을 정말 꼼꼼히 읽고 정리하셨다는 생각에 기립 박수를 쳐드리고 싶었답니다.(난 정말 이런 게 잘 안되는데.) 그런데, 정리에 그쳤을 뿐 사마천의 시각이 잘 드러나지 않았고, 역사에서의 동일자와 타자에 대한 논의로 확장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많이들 아쉬움을 표하신 듯합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로 중국 음식을 맛있게 먹고, 현옥샘의 에세이 발표. ‘사마천의 뜻을 헤아려 본다’라는 다분히 문학적인 제목을 다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샘의 지극한 애정이 잘 느껴지는 글로, 갠적으로 아주 좋았답니다. 사마천의 사상이나 인간적인 면모가 ‘이릉의 화’를 기점으로 큰 폭으로 변했다고 하면서, 과정을 주로 ‘태사공자서’와 ‘보임안서’, ‘공자세가’의 글들을 끌어와 보여주셨는데요, 다른 편들에서 근거들을 끌어와 좀더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네요.
몸이 안 좋으신 현옥 샘께서 댁으로 가시고, 마지막 팀. 은남, 은영, 혜경 샘. 동사서독의 마스코트 은냠 샘이 쓰신 글은 ‘신하들의 표상이 된 재상들-관중 vs 이사’. 관중과 이사를 통해 춘추전국시대 신하들이 군주와 관계 맺는 방식이나 그들에게 요구된 덕목 등에 대해 살피고, 이를 이 시대의 관료들과 연관지어 보고자 하셨죠. 제대로 안 풀렸는지 주로 관중에 대한 이야기만 세세하게 늘어놓고, 이사는 소략하고도 엉뚱한 방식으로 차용이 되어버렸는데요, 덕분에 욕은 많이 얻어드시고 눈물콧물까지 쏟으셨는데, 뭐 이번이 두학기째 아닙니까. 채운샘 말씀대로, 글을 쓰실 때 남의 눈치 보지 마시고 자기 관점을 소중히 여기시면 더 나아지겠지요(^^). 다음은 은영. ‘지아자, 나를 세상에 내는 자’. 늘 은영 샘의 글은 알토란 같은 느낌이 있어, 이번 주제는 어떻게 써올지 내심 궁금하고 또 기대도 많았는데, 생각했던 것과 방향이 좀 달라서 의아한 느낌이 좀 있었답니다. 개념에 대한 보편적인 의미나 상을 전제하고 나서 그에 맞는 것들을 끌어오지 말고, <사기>에 나온 여러 사례들을 먼저 유형화하고 정리해서 이를, 때나 관계의 문제로 풀어갔으면 좋았겠다고 조언하셨는데요, 다른 뭔가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혜경샘은 ‘천하을 유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쓰셨는데요, 사실 컨셉은 매력적인데 이걸 근사하게 풀기는 어렵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춘추전국기라는 미증유의 유동기에 제후국들을 떠돌며 권력의 외부성을 보여준 인물들을 개별적안 행적들을 제시하는데 그쳤는데요, 더 밀고가서 이들을 통해 당시의 문화나 사상, 정치권력 등이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엮여가는 양상이 드러났으면 좋았겠다고 말씀하셨네요.
이렇게 긴 에세이 발표 시간은 끝이 나고... 왜 이리 글쓰기의 진전이 없는지, 사고의 나쁜 습관들을 잘 고쳐지지 않는 건지... 그리고 적어도 이번에 들은 얘기들은 다음 번에는 듣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제 나름대로 했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셨는지요. 생각도 말씀도 남들 10배는 하셨을 차운샘과 에세이 준비하고 쓰시느라 힘든 며칠을 보내셨을 학인 여러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백수영 샘과 강지영씨는 못 나오시고, 재길 샘께서는 에세이를 쓰지는 못했지만 학인들의 몸을 생각해 뒤늦게나마 건강음료를 싸들고 뒤늦게나마 나오셨습니다. 특히 반가운 손님 한분이 뒤늦게 등장하셨는데요, 바로 옥상 최정옥 샘! 한라봉인가 뭔가 사오셔서 응원도 해주시고, 끝까지 에세이를 듣다 가셨답니다.(그리웠답니다. 기회 되면 다음에 함께 해요.)
그러고 보니, 남은 과제가 있네요. 이번에 지적 받은 사항들을 바탕으로 2월 한 달 동안 고쳐 써 오는 거랍니다. 욕심껏 고민해 보고 도전해 보시길요. 이에 더해 과제 아닌 과제가 하나 더. 사기 인물 베스트와 워스트 5. 근데, 이걸 어떤 식으로 올리죠? 덧글로 달까요, 아님 숙제방에 올릴까요? 방법을 말해주시고, 선정된 인물들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 모임 공지. 아시다시피 우리의 장윤정 양이 올 한해 동안 북경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답니다. 2월 28일에 떠난다 하니, 그 전에 송별회를 해줘야할텐데요, 적당한 날짜가 없어 2.14일(토) 18시로 정하였습니다. 이번 학기 쫑파티도 제대로 못했으니 두 개를 겸해서 그 날 다들 오시면 어떨지 싶습니다. 일단, 규문으로 와야겠지요. 그럼, 그날 모두 뵈어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건 제안입니다. <사기>를 읽었는데, 이대로 끝나버리면 정말 남는 것이 없을 듯해서요. 한 번 더 읽을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주제별로 입체화해서 읽어보면 어떨지 싶은데요. 가령, 오자서가 나오는 편들을 모아서 읽는다든지, 공자와 그의 제자 및 유림을 묶어서 등등 여러 방법이 있을 듯하네요. 기간은 길게 잡고 가고요... 다른 날 시간 내기 어려우니, 토요일 수업 전에 2시간 정도 일찍 와서 토론해 보면 어떨지 싶네요. 구체적인 것은 인원이 모이면 결정짓는 걸로 하고요. 다른 공부들 많이 하시니 큰 부담없이 관심을 오래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요. 살다살다 이런 제안을 다하게 되나니... 반장 맞네 뭐~~~^^.
동사서독 학인 여러분들, 이번 학기도 덕분에 내내 즐거웠습니다. 다음 학기에 뵈어요.
1) ㅋㅋ 살다보니 태욱샘께서 저런 능동적 제안을 다 하시는군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닌 듯하니, 많이들 참여하심이 어떠실지... 어차피 이번 에세이도 계속 다듬어가야 하니깐요.*^^*
2) 베스트&워스트는 <월간규문>1월호에 실었으면 합니다. 이쁘게 편집해서 실을 예정이오니, 심사숙고 선정하셔서 숙제방에 올려주셔요(선정이유도 간단히). 결과 발표는 <월간규문>에서 확인하시라! 기한은 수요일까지~!
3) (속보!) 김태욱 반장은 유임입니다. '문고리 반장'으로 거듭나주시길! 쿄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