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조차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걍 놀다 돌아온 절 내치지 않으시고 반갑게 맞아주셔서 어찌나 황송하고 감사스럽던지요. 애들이나 하는 빤하고 입에 발린 소리 같지만... 더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다짐, 또 다짐해 봅니다.^^
‘절탁’을 통해 띄엄띄엄 니체의 ‘아침놀’을 읽고 있습니다. 읽기도 쉽지 않고 받아들이기는 더욱 쉽지 않아, 한 문장 앞에서 수십 분들 멍때리고 앉았거나 수십 번을 되뇌면서 질질 끄을듯이 나아가고 있답니다. 근데, 참 숨막히게 하는 긴장감이나 살얼음을 걷는 거 같은 아슬아슬함에 책에서 쉽게 눈을 떼기 힘들 때가 많네요. 마력 같은 것이 온 몸을 휘감는다고나 해야 할지... 이 책을 읽고 있는 내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이 책을 만난 인연 앞에서 누군가에게 무한 감사를 드리고 싶을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근래에 겪어보지 못한 좀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답니다. 왜 이런 부끄러운(ㅋ) 고백을 하냐면요, 꽤나 긴 기간 더 열심히 읽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기’는 아직도 왜 이런 느낌을 안겨주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기 때문입니다. 같은 문화권이라도 2-3천년 전 인간의 삶과 사유에 다가가는 건 정말 쉽지 않아서 인 걸까요? 권력이니 역사니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나의 문제 의식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인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니체라는 세계 자체가 한 번 발 디디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그런 지대라서 그런 걸까요? 어쩌면 맞대놓고 견주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지만, 사기, 그거 생각만큼 아니 채운 샘의 요구만큼 치열하게 읽히지 않는 게 읽는 내내 드는 고민 중 하나랍니다. 그냥 좀 재미있게 읽히기만 한다는 거. 어떻게든 넘어서야 할 텐데 쉽지가 않네요.
이번 주에는 <본기>는 여태후 편부터 한무제 편까지, <세가>는 오태백 편부터 노주공 편까지 읽었습니다. 저희 조에서는 많은 분들이 주로 문제적인 여인 ‘여태후’에 대해 공통과제를 준비했습니다. 그녀의 그 소문난 악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 악행과 당시의 정치적·경제적 안정과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단순히 한 여자의 성격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게 불안정했던 한나라 초기의 상황과의 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했고, 당시에 백성들이 체감했던 풍요와 안정이라는 것도 아이러니한 결과로만 봐버릴 게 아니라 정치 권력과 국민의 삶간의 입체적이고 복잡한 관계를 고려해야 그 의미가 제대로 드러날 수 있다는 얘기들이 나왔습니다.(이 와중에서 빛을 발했던 곽은남 샘의 뿌리 깊은 본처 의식! 채운 샘 왈, 이래서 기혼자들은~~~ ㅋ) 여태후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소위 ‘문경지치’의 시기 또한 단순히 좋았던 시절이라고만 보아 넘길 게 아니라, 이전과 이후 시기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이렇게 서술한 사마천의 의도까지 헤아려 가며 읽어야 풍부한 독해가 이루어질 거라는 얘기들이 오갔습니다. 전 갠적으로 ‘세가’ 편이 흥미로왔는데, 권력의 존재방식이나 제후국들간의 상호역학 관계의 측면 등에서나 본기보다 훨씬 다채로운 이야기꺼리들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다음 시간부터~~~!!!
채운 샘께서는 우리가 ‘사기’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호사가적인 읽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네요. 어디 가서 "나 <사기> 읽은 여자야"하고 뽐내기 위해 대단한 인물들의 행적이나 재미난 사건들을 줄줄이 꿰는 식의 읽기가 아니라, 전체 구조를 생각하며, 역사란 무엇인지, 사마천이 생각한 역사와 우리 근대인에게 익숙한 역사관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읽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자면, 우리가 만나는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사건들이 전체 속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 전체와 부분들이 어떻게 만나고 배열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을 러시아 영화 감독인 푸도프킨의 영화 이론을 끌어와 설명하셨답니다. 다들 기억 나시죠? 하나의 시점에만 머무르지 말고 다양한 시점을 여러 차례 왔다갔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즉 다양한 거리화가 있어야 해요!!! 여태후나 문경제에 대한 기술 모두 그 자체만을 보아서는, 호사가적인 지식 이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하겠죠.
효혜제의 ‘인약’과 대비되는 여태후의 ‘강의’한 성격을 강조하며, 여태후의 권력의지를 설명한 부분이 전 좋았습니다. 건달이나 다름없었을 유방을 만나, 항우의 포로가 되어 죽을 위기에 놓이는 등 온갖 간난신고를 겪고, 한나라가 세워지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지척에서 지켜 보았을 그녀가 고조 사후 착하기만 한 아들이 제위에 오르는 상황을 맞게 되었을 때, 그녀의 ‘강의’한 기질이 이런 식으로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권력의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는 것이 그녀에게 맡겨진 시대적인 임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 이를 도외시한 채 개인적인 애증이나 질투의 관점에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문경지치가 가능했던 것도 여태후가 만들어 놓은 초석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고 보면, 그녀는 권력을 남용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또 다른 사용법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하셨고요. 참, 어렵네요. 그녀의 마음이 직접 드러난 것도 아니고, 몇 십년 뒤의 기록을 통해 그녀를 이해해야 하는 것인데, 결국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건 권력과 인간, 그리고 역사를 바라보는 사마천의 관점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우리가 권력자의 덕을 떠올릴 때, 인품이나 도덕성 같은 것을 즉각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이게 아니라는 것. 국가 권력이 도덕적인 이상태를 바탕으로 성립하지 않고, 개인적 인격의 훌륭함과 통치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분명히 보여주는데도, 달리 보는 게 참 쉽지 않은 듯하네요. 그러니 피바람 몰아치던 여태후 시절이 백성들한테는 호시절이었다는 사실을 아이러니로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겠죠. 익숙한 관념에서 벗어나는 거 참 힘든 일인 거 같아요.
원래 예정되었던 ‘세가’부분은 다음 시간에 묶어서 함께 얘기하기로 했고, 천퉁성의 <사기의 탄생, 2·3천년의 역사> 중에서 한무제의 유학부흥 정책과 봉선에 관한 논의 부분을 읽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학과 봉선을 대하는 사마천의 근본주의적 태도를 확인하였네요. 깐깐하면서도 경건하기까지 했던 원칙주의자 사마천의 눈에 ‘한무제’가 어떻게 비쳤을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상의 정리에서는 빠졌지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기 시대를 기록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현실정치의 측면과는 별개로, 자신이 속해 있는 시대의 일들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많은 난점과 고민들을 수반하는 일일 것임에 분명합니다. <사기>를 보더라도 그의 시대에 대한 기록은 그 이전 시대에 비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음 시간 공지!!!
1. <사기> [세가] ‘오태백 세가’부터 ‘정세가’까지 읽어옵니다.(앞부분 세편은 다시~~~) 2. 발제는 곽은남 샘.(각 세가별로가 아닌, 주제별로 덩어리지어서 발제해 오시라는 당부) 3. 간식은 백수영 샘과 저 김태욱. 4. 공통과제와 맹자 암송 |
수영샘께서 다음 시간까지 나오시고, 미국으로 장기 외유를 다녀오신답니다. 해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신 거 같은데, 구체적인 말씀은 없으셨네요. 맞죠?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될 듯하고요... 날 춥고 눈도 많이 온다는데 낙상 주의하시고, <사기>와 함께 충만한 한 주 되옵시길요.
다시 반장님 공지 만나니 좋네요.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