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번의 일기는 그렇게 “커다란 기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처럼 아주 간단한 것도 아니며, 지금은 아직 없고 써가려고 하는 것이다. 4, 5일 전에 반농(장사조)을 만났을 때, 그는 ‘『세계일보』부간(副刊)을 편집하려고 하는데, 원고를 좀 보내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야 물론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원고는? 이는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부간을 보는 사람은 대체로 학생들이고 모두 경험자로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논” 또는 “인심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의(議)” 따위를 해본 사람들이라 글을 쓰는 것이 어떤 맛인지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나를 “문학가”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하며, 그 증거가 바로 내가 글쓰기를 가장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즉흥일기> 중)
: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건 마지막 문장이다. 특히 “내가 글쓰기를 가장 두려워한다는 점”이라는 구절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위대한 작가들 중 일필휘지하는 사람이 있을까. 쓰고, 고치고, 엎어 버리고, 다시 쓰고…. 이 과정을 잘 견뎌내는 사람들이야말로 훌륭한 작가가 아닐까. 한 페이지짜리 글을 완성할 때에도 우리는 한 문장에서 그 다음문장을 잇는 것이 정말 어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왠지 이어질 것 같던 말들도, 써놓고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일 때가 많다. 마치 분열증에 걸린 사람처럼 우린 종이 위에서 횡설수설하기 일쑤다.
글을 쓰고 싶다, 잘 쓰고 싶다, 글로 인정받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는 사람은 어쩌다 쓴 자신의 문장들에 쉽게 도취되고, 허세부리는 글들에 쉽게 현혹되는 것 같다. 꾸준하게 열심히 쓰고 있는 사람은 막연한 감상에 쉽게 젖어 들지도, 다른 사람의 번지르르한 글에 잘 속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말과 글에 속지 않는다. 루쉰이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을 소위 “문학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글쓰기가 그에게는 가장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글을 씀으로써 가장 용감해질 수 있었다. 자기 한계를 보는 것이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글쓰기. 그것이 바로 루쉰의 글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