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물은 삼세를 통찰하고, 일체를 관조하고, 대고뇌를 겪고, 대환희를 맛보고, 대자비를 베풀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고목 아래에 앉아 정관묵상(靜觀默想)하고 천안통(天眼通)을 얻어야 하고, 인간세상을 멀리 떠나면 떠날 수록 인간 세상을 더 깊이 더 넓게 알게 되며, 그리하여 모든 언설(言說) 역시 더 고상하고 더 위대하며, 그리하여 천인사(天人師)가 된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어릴 때는 하늘을 나는 꿈도 꾸었지만 지금은 여전히 지상에 있으면서 작은 상처조차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정인군자(正人君子)"처럼 유쾌하고 활달한 마음으로 공평타당하고 공명정대한 주장을 펼 겨를이 있겠는가. 물에 젖은 작은 벌처럼 진흙 속에서 이리저리 기어다닐 뿐이니 양옥에 살고 있는 통달한 사람과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름대로는 슬픔과 노여움이 있게 마련이니 양옥에 살고 있는 통달한 사람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제기(題記) 중에서)
: 무지하다는 게 뭔가. 자기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자기 옆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관념적으로 이 세계를 공명정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순진한 희망에 젖어 있는 자를 우린 무지하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어떤 고뇌도, 슬픔과 노여움도 없이 세상을 티는 곳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를 우린 무지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글쓰는 자들이 가장 기만적이 되는 때는 자기가 지상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게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