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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한 기억 하나.

 중학교 때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자기가 어떻게 해주면 같이 교회에 다니겠냐고. 난 만화방에서 만화책 100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만화책 100권! 이건 완곡한 거절의 의미였다. "그래, 좋아!" 엥?! 내가 정말 만화책 100권을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됐건 친구와 교회에 갔고, 예배 시간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단편적 기억만 남아 있을 뿐. 


신화에 대한 기억 하나.

 고등학교 때 국사 수업시간이었던가. 선생님이 단군신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곰이랑 호랑이가 인간이 되겠다고 동굴에서 마늘 쑥만 먹다가 100일을 견딘 곰만이 여인으로 변해서 환웅과 결혼한다는 이야기잖아. 신화잖아. 꾸며낸 이야기. 이걸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거지?? "곰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겠어?" 어?!  


 그때의 기억 그대로 종교에는 일종의 거부감과 편견을 가진 채, 나는 종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신화는 머나먼 그 옛날 인간들이 만든 허구적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이브 첫 번째 텍스트, 나카자와 신이치의 '신의 발명'을  읽고 깨졌지만. 이번 시즌 이브 가장 충격적인 한 문장.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마음의 구조는 반드시 ‘초월성’의 영역과 접촉하게끔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쉽사리 완전한 ‘무신론’에 처할 수 없다.” (물론 그가 말하는 신은 유일신을 뛰어넘는 훨씬 넓은 범위의 신을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뇌구조가 그렇단다. 뉴런의 결합 방식이 네안데르탈인과는 달리 훨씬 복잡해져서 기술적 지식, 사회적 지식, 박물학적 지식 등을 취급하는 영역들을 연결하는 통로가 형성되었다는 것. '유동적 지성'의 탄생! 이로 인해 인간은 비유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사고를 뛰어넘는 사고, 초월성을 사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쿠야, 나와 신 사이에는 단절이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신화는 이런 뇌구조를 갖게 된 호모 사피엔스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가 왜 필요했는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장치, 삶에서 만나는 다양한 충격들에 대한 완충장치가 신화였다. 현실은 가혹한 것이고 내가 살려면 동물을 죽이고 식물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신화시대의 사람들은 그것들은 먹을거리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을 중심에 놓고 대상화하지 않았다는 것. 그들은 수렵의 시대에는 동물과, 농경의 시대에는 식물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발명했다. 내가 네 몸을 먹지만 언젠가는 다시 태어난 너에게 내가 먹히리라. 그러므로 그들을 취하는 행위에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엘리아데는 속(俗)의 세계를 사는 인간들이 성(聖)을 사유할 수 있으면, 즉 저와 같이 새로운 관계를 발명할 수 있으면 종교적인 인간이라고 하였다. 이사한 첫 날, 울 엄마가 방 곳곳에 팥을 놓아두고 빌었던 것. 이건 꽤 경건한 행동이었다. 우리 딸을 잘 맞아달라는. 별 탈 없이 지내게 해달라는. 그때 난 참 아무 생각이 없었지. 아, 그런 의미였구나~ 이번 공부를 통해서 그걸 알게 됐다. 집에 와서 다시 한번 내 방을 쭉 둘러보면서 새삼 잘 지내자고 중얼거렸더랬지. ^^ 그러니까 아니라고 했지만 난 꽤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삶 속에 있었던 거다. 인간이 존재해 온 이래 우리는 쭉 그랬다는 것.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무엇하고도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으니. 저것들이야 그냥 내가 이용하고 취하는 대상이지 관계는 무슨~ 동물, 식물과 서로를 나누던 기억은 사라지고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내지만 그것에 조물주처럼 행세할 뿐이다. 너무나 많은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었는데도 그것들은 물건으로만 남아 버렸다. 동물과 만났을 땐 동물과, 식물과 만났을 땐 식물과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우리 시대에는 그런 신화가 없는 걸까? 물건은 만들되, 그들과의 이야기는 사라진 시대. (왜 컴퓨터와의 관계는 발명하지 못하는 거지?) 아! 하나 있다. 돈에 대한 신화는 점점 덩치를 불리고 있잖아. 동물 없이는, 식물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시대, 이제는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우리는 그것과의 관계를 발명하지 못했다. 신화가 아니라 거의 숭배...이건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고. 에잇! 돈! 

  신화와 종교에 대해 이런저런 텍스트를 읽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지만, 그래서 분명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깨지긴 했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혼돈'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 겨우 몇 권 읽고 알기를 바라는 것이 오만이겠지만 좀 많이 머리 속이 뒤죽박죽 복잡~ 첫 시간, 신을 사유한다는 것, 초월을 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아니 무엇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 가져가야 할 것 같고. 마지막 시간, 톨스토이가 보여준 종교적 삶에 대한 뜨거운 고민과 실천이 내게 던진 질문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고. 언제나 공부 끝엔 새로운 질문과 고민이 남는다.

  암튼 '신화와 종교'와 함께한 참으로 놀라웠던 3개월이었네그랴. ^^b 

  • 채운 2014.05.20 00:43

    헐~  기어이 후기를 쓰셨네그랴. 도선생을 영접하려면 이 정도 공부는 깔아두셔야지! 이브의 영은이, 수고했네그랴.^^b 담학기엔 한층 성숙해진 영은이를 만나고퐈 ㅋㅋ

  • 영은 2014.05.20 10:30
    넵! 좀 더 성숙한 영은이가 되겠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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