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08 18:56

후기 및 7월 13일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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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시간엔 에티카 2부 정리 24부터 정리 31까지 읽었습니다. 범위는 매우 적었지만 내용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앞부분을 다시 읽지 않으면 잘 읽히지 않는 부분이었죠. 이번 시간의 키워드는 상상과 부적합한 인식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상상은 왜 부적합한 인식일 수밖에 없는가?’가 핵심 주제였죠.


 

부적합하다는 건 틀렸다거나 올바르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2부에서 스피노자가 내내 강조하듯 우린 우리 신체의 감각기관이 생겨먹은 대로 외부 물체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정신은 외부 물체를 통해 자신의 신체가 변용된 것만을 지각하기 때문에 늘 부적합한 인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예컨대 눈으로 태양을 보면 나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몇 걸음만 내딛으면 닿을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되죠. 이건 틀린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 정도만 인식하는 것은 매우 단편적 인식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이가 이와 동시에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실은 15천만km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적합한 인식을 할 가능성이 크죠. 그는 자신의 신체가 변용된 것만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질서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 테니까요. 내 신체와 태양의 관계를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와 더불어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의 인식적 역량은 더욱 커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지 단편적으로 신체의 변용의 차원에서 무엇을 이해하는 것(상상적 인식)은 부적합한 인식, 우주의 전체의 질서 속에서 무엇을 이해하는 것을 적합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거죠. 적합한 인식은 불교식으로 말하면 緣起적 차원에서 나와 세계를 인식하는 것을 뜻합니다.

 


상상적 인식은 정신적 자동장치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정신이 자동적으로 자신의 패턴대로 관념의 관념을 재생산해낸다는 것이죠. 어떤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 이전에 변용되었던 관념을 가지고 사고하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관념이 관념을 낳고 또 그 관념이 다른 관념을 낳고……. 기존에 생각하던 대로 생각하고, 반응하던 대로 반응하는 것. 불교에서는 이것을 윤회라고 했죠. 상상은 이런 습관적 사고에서 비롯된 관념입니다. 얼마 전 케이블 TV를 보다 모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사회자가 유독 통념’ ‘천륜이란 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사회자가 패널들에게 하는 질문이 다 이런 식이었어요. “어떻게 저렇게 통념에 어긋난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식들과 혼음을 하고 아내와 아들에게 성매매를 시킨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데요, 그 인간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 줄은 알겠는데 그 목사가 천륜을 어겼다고,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는 말에는 고개가 갸우뚱.... <사기>만 봐도 자기 며느리를 취한 시아버지나 자기 자식과 부모를 죽인 인간들의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등장하지요. 이런 것들을 보면 인간을 도덕적인 존재라고 여기는 것처럼 큰 착각도 없는 것 같아요.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라는 착각도 그렇고요. 수많은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나 붓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지요. 인간 존재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믿었던 그들의 경지가 참 존경스럽습니다. 붓다나 스피노자 모두 이런 한심한 인간들이 결국 깨달을 수 있는 존재들임을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었던 거겠죠...


스피노자가 집요하게 부적합한 인식에 대해 설명하는 이유도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파헤치려는 게 아닙니다. 그는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부적합한 인식에만 머물던 인간은 어떻게 적합한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이 신체와 정신을 가지고 신적인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 쌤은 이번에 읽은 부분에선 정리 29에 핵심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정신이 사물을 자연의 공통적 질서에 따라 지각할 때, 즉 외부로부터 결정되어 사물들과 우연히 접촉함으로써 이것, 또는 저것을 생각할 때, 정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외부의 물체들에 대해서도 타당한 인식을 갖지 못하고, 단지 혼란스러운 <그리고 단편적인> 인식만을 가진다. 이와 반대로 내부로부터 결정되어 여러 사물들을 동시에 고려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치점, 차이점, 반대점을 인식할 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정신이 내부로부터 이런 저런 방식으로 결정될 때에, 정신은 사물들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고찰하기 때문이다. (정리 29 주석)

 

 

외부 사물들과의 우연한 접촉으로 결정되는 관념 하에서 우리는 기억이나 습관의 질서에 따라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여러 사물들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그것들의 일치점, 차이점, 반대점을 인식(=내생적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물들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고찰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던 스피노자. 스피노자가 생각할 때 자연 공통적 질서와 천지만물의 의존 질서를 파악함으로써 인간은 적합하게 인식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스피노자에게 상상적 인식은 그 자체로 한계가 아닙니다. 적합한 인식을 하기 위해선 상상적 인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거죠. 문제는 상상에만 의지해 부적합한 인식으로만 세상을 볼 것이냐, 아니면 상상을 활용해 적합한 인식으로 세상을 다르게 볼 것이냐,입니다. 붓다나 스피노자는 인간의 한계를 정확하게 자각하는 자만이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를 바로 보는 것, 그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2부 끝까지 읽습니다. 공통과제의 주제는 적합한 인식입니다. 더불어 정리 40, 41번 내용을 특히 꼼꼼하게 읽고 스피노자가 말하는 오류와 우리가 생각하는 오류의 차이점도 정리해 보라는 미션이 있었습니다.

 

*7월 20일 에세이 발표를 위해 에세이 주제도 생각해 오셔야 합니다. (법성게의 한 구절+스피노자)

 

*간식은 수영양이 준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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