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6 02:38

0603 수업후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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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글은 여러 가지의 나를 끄집어냅니다. 이렇게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일은 꼭 유쾌한 경험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표상하는 나와는 다른, 기대이하의 나를 발견할 때 그렇습니다.(대체로 전 기대이하의 저만 확인하곤 합니다) <선악의 저편>은 저에게 또 다른 형태의 질문을 주었는데요, 이는 여타의 니체 책과는 좀 달랐습니다. 아니, 진작 이런 방식으로 질문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늦게 이 방법을 깨달았는지도요.

 

이전의 니체의 책을 읽을 땐 니체는 이걸 보고 이렇게 사유했구나. 나는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선악의 저편>니체는 도대체 왜 당연한 것을 아니라고 하지? 불편하게? 나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나는 왜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할까???라고 다르게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다시 말하지만, 썩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늪 속에 목까지 잠겨있는 듯한 느낌이니까요.

 

그러나 이후의 질문이 저를 더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이 늪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가?” 고통스럽게, 고통스럽게 발버둥치고, 안간힘을 쓰고, 온갖 방법을 고안해내면서 이 진창에서 빠져나오기를 진정 나는 원하는가? 아니면 그저 이 늪 속에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를 원하는가?

 

...어렵습니다.

 

 

저는 소아성애자들을 보면 역겨운 감정과 분노를 느끼는데요, 이 분노의 감정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이번에 처음 묻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물을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거든요. 게다가 저는 동성애자에 관대하다는,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 비해 막혀있지 않다는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여 나는 성적 취향에 관대하다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었습니다. 관대하다고 자부하는 제가, 남의 취향에 관심 없다고 말하고 다니던 제가 왜 소아성애자에 이르면 참지 못하는 걸까요? 세미나에서 수경샘은 소아성애자라는 단어로 규정되는 그 폭력에 대해 질문하면서, 인간은 비슷한 나이의 사람만 사랑할 수 있냐고 되물었습니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사실 이 질문의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수십억명의 인구는 수십억 개의 성을 갖고 있고, 이는 나이와 인종과 하물며 종족과도 관계없다는 것을요. 그럼에도 제 안의 어떤 도덕이 이렇게 평가하도록 만든 걸까요?

 

강의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여성에 대한 니체의 시선도 그렇습니다. 저는 읽으며 내내 어처구니없네. 그래도 지금 니 책을 줄 그어가며 열심히 읽고 있는 건 여자인 나다!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고!’라고 툴툴댔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셨죠. “니체는 남자도 까고, 자신의 민족도 까고, 이도저도 다 까는데, 왜 유독 여성에 대한 시선에만 민감한가요?” 이 질문에도 역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나는 왜 여성을 상대적으로 더 귀하다고 생각할까? 나는 왜 어린이의 성을 더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할까?

 

예전에 서울대 미대의 졸업전시회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전시회를 연 학생이 자신의 전시회 입구에 이런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지금 이 갤러리 안에는 제가 고용한 직업여성이 한명 있습니다. 이 직업여성이 누군지 맞추시는 분께는 1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서로 머뭇거리면서 눈치만 보다가, 결국 한 남성이 어떤 여자를 지목하면서 혹시... 아니세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지목당한 그 여성은 고용된 그 직업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지목당한 순간, “내가 직업여성처럼 보이냐면서 울먹거렸다고 합니다. 그러고선 전시회를 연 학생에게 주기로 한 돈을 달라고 하고 도망치듯 전시장을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당시에 저는 이 기사를 읽고, 이 전시회를 기획한 학생에게 분노가 치밀었는데요, (사실 지금도 화가 나긴 합니다) 그보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왜 어린여성의 성을 순결하다고 칭송하고, 직업여성의 성은 상대적으로 천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직업여성은 왜 수치심을 느끼는가? 그리고 왜 남성보다 여성의 성에서 이런 구분이 극명한가? 이건 누구의 도덕일까?

 

저는 9장을 읽을 때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니체의 전제를 거북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불편한 상태에서 고귀한 인간이란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닌, 어딘가에서 나는 것이라고 니체는 말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미나와 수업을 들으며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귀한 영혼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 287>

 

수업시간에 함께 읽었던 부분 중 이 문장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은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기 자신은 언제나 극복되어야 할 것이고, 이런 끊임없는, 자신의 고귀함을 향한 깊은 갈망이 바로 고귀한 영혼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점점 더 높고 점점 더 드물고 좀더 멀리 좀더 폭넓게 긴장시키는 좀더 광범위한 상태의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고귀한 인간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에 비해 노예도덕은 본질적으로 유용성의 도덕이기 때문에 좀더 유사하고 좀더 평범한 인간들은 언제나 유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니체는 강력하게 말합니다.

 

좀더 선택된 자, 좀더 예민한 자, 좀더 희귀한 자, 좀더 이해하기 어려운 자들은 쉽게 고립되기 쉬우며,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 재난을 당하기도 쉽고 거의 번식하지도 못한다. 이 자연스러운 것, 너무 자연스럽게 유사한 것으로 진행하는 과정, 유사한 것, 일상적인 것, 평균적인 것, 무리적인 것으로비속한 것으로!인간을 다시 교육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거대한 저항력을 불러일으켜야만 한다. <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 268>

 

내가 이렇게 도덕적인 인간이었나?”

 

니체를 읽기 전에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사람을 본다면, 대단한 나르시스트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한 줄의 질문이 꽤 다르게 읽힙니다. 그래서 선악의 저편을 읽는 내내 저 스스로에게 줄곧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무리에 안주하는 인간이었나? 내가 이렇게 관성적인 인간이었나? 내가 이렇게 도덕적이었나?


니체가 말하는 거대한 저항력이 무엇인지 아직 가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무리도덕에 단단히 매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효 

 

 

  • 채운 2015.06.06 10:48

    우리 자신의 무리도덕에 대해 알았다니...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안 거네! 후기에서 덕순이의 충동들이 격렬히 투쟁하는 게 느껴졌음!^^

  • 수경 2015.06.06 11:50

    절박하고 진지한 느낌이 글에서 물씬~  그나저나 서울대 졸전의 미대생의 의도는 대체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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