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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세미나 시간에는...


 지난 세미나 시간에는 ‘힘’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는데요. 힘관계에는 지배와 복종만이 있고, 따라서 한 무리의 지배자(나폴레옹, 부족의 추장, 박근혜 등)는 무리 내 힘들의 투쟁에서 승리한 힘, 그에게 복종하는 자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힘들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아니다, 지배자에게 복종한다고 해서 그 힘이 약한 것은 아니다, 이유는 힘의 방향이 다를 뿐 그것이 그들의 힘의지이고 따라서 복종하는 방식으로 그들은 힘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의견이 맞섰어요. 부족의 구성원들은 추장보다 힘이 약한건가? 마을에서 조용히 고기를 잡으며 사는 사람은 그가 속한 국가의 지배자보다 힘이 약한 건가? 라는 질문들이 나왔고, 힘이 약하다는 말에 어떤 반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힘의 강약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통치자의 지배하에 있는 이들은 어쨌든 그보다 약하다, 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 것 같은데요;; 전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국가의 명령인 정책과 법이 허용하는 내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은 모두 약한 힘이라면, 그럼 니체도..? 니체도 독일 국민이었는데요... 분명 니체는 소송을 걸거나 신문을 만들며 국가의 정책과 법에 직접 맞서 싸우지는 않았잖아요. 내면에 침잠하는 철.학.을 하며 이곳저곳 방랑했을 뿐. 국가의 국민이라 해서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나약한 힘은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의 명령은 나의 무의식과 의식에 새겨지고, 따라서 어떤 무의식과 의식을 가졌느냐가 지배자에 대해 강한 힘인지, 약한 힘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 같은데...

지배자와 복종하는 자의 힘관계를 얘기했던 이유는 바로 무리도덕 때문이었어요. 무리도덕을 가진 이들은 지배자를 원하고 복종을 원하는 나약한 힘의지로, 이들은 고통이 제거되길 바라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무리의 안전을 제일로 삼아서 대표자를 선출해 그 임무를 맡겨버리려고 하죠. 자연스레 무리에 협조하는 것들은 선, 해를 가져오는 것들은 악이 됩니다. 무리에 협조하는 자신들은 마치 선을 행하는 고고한 사람들이 되고, 이웃사랑을 외치며 최대 다수의 행복과 평등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도덕들은 선, 무리들과 무리를 벗어나 독립적인 개인이 되려는 이들은 악인 것이죠. 하지만 이처럼 이웃 사랑이 아닌, 이웃 경멸을 외치던 때도 있었다는 거. 무리도덕을 가진 이들의 ‘우리 서로한테 잘해주자, 그래서 갈등을 피하고 고만고만하게 안전하게 살자.’라는 합의는 이들에겐 아주 경멸스러운 덕이었다는. 이들에겐 적을 정복하고, 약탈하기 위한 전투만이 선이죠.

최근 개봉한 매드맥스란 영화를 봤는데요, 이웃경멸의 시대가 이런거구나 싶더라구요. 핵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인간들의 이야기인데 이 사람들은 매순간이 그저 살거나 아님 죽거나 둘 중 하나인 사람들이예요. 이들에게 동정, 배려 따윈 정말 사치, 우스운 것. 최고의 덕은 용맹함으로, 장렬하게 죽기를 자랑스럽게 여기죠. 죽기 전 항상 입가에 은색 회칠같은 것을 하고 ‘나의 용맹함을 기억하라!’고는 죽음을 기꺼이 맞이해요. 무리도덕이 없다면 이 사람들처럼 죽음은 항상 눈앞에 두고 살아갈 것 같아요. 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이겠죠. 사실 지금도 다르진 않지만.... 무리도덕은 이 냉정한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든 회피보려는 나약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게 피부로 확 와닿았던 것 같아요. 무리도덕 없음 어떻게 살지....허허 이런 나약한 의지는 이 이웃경멸의 시대에 죽기 딱 좋은 의지이겠죠..

 

강의 시간에는 2단원 자유의지 부분을 계속 강독했어요. 일단 선악의 저편이란 책은 바로 진리에의 의지를 다시 묻는 책. 니체가 종교적인 것, 자유의지, 도덕을 얘기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진리에의 의지를 보기 위해서라는. 모두 다 이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죠. 이 진리에의 의지는 바로 보편성, 보편적 옮음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해요. 이 보편적 옮음은 기원을 전제, 즉 보편적 옮음이 아닌 상태를 전제하고 삶을 그 보편성, 완전함에 도달하는 상태로 규정, 지금 나의 삶은 그래서 부정되어야 할 것이 되죠. 도덕이 진리에의 의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보편성에 대한 믿음 때문. 도덕적 사고는 보편적 도덕이 있음을 전제로 해서요. 하지만 니체는 보편적인 진리도, 도덕도 없다, 단지 어떤 의지가 그것을 도덕이라고 부르는가, 어떤 힘을 가진 도덕인가 만이 문제라고 말해요. 이게 무슨 말인가..?

도덕적 판단을 하는 우리 대부분은 행위는 어떤 특정한 의도가 일으켰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인간을 단일한 의지로 낼 수 있는 의지의 주체로 보기 때문에, 그 행위의 의도를 물을 수 있고 그 의도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도덕적인 시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그렇지 않았던 시대가 훨씬 더 길었다는 것. 도덕 이전의 시대에는 행위의 가치를 그 결과를 통해 물었어요. 행위의 결과만을 보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생각을 해보면 만약 숙제가 있었는데 해오지 않았을 때, ‘이 숙제는 저에게 아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하지 않았습니다’ 라는 의도로 ‘아 그렇다면 잘한 행위이네~’ 라며 그 행위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숙제를 해오지 않는 행위는 개인에게, 또는 주변에게 좋은가 혹은 나쁜가’라는 결과의 가치로 그 행위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었다는 것(맞는진 잘 모르겠지만..;;) 행위의 결과로만 선악을 물을 수 있었다는 것.

니체는 ‘도덕 외적인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덕 외적인 시대에는, 행위의 가치를 그 의도가 아니라 ‘의도되지 않은 것’에 묻는데, 이 ‘의도되지 않은 것’은 수많은 욕망들, 힘의지들. 개인의 행위를 이끄는 건 단일한 의도가 아니라 의도되지 않은 수많은 욕망들, 힘의지들이라는. 의도 또한 환상일 뿐, 단지 그 싸움의 결과를 의식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그렇다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요? 행위의 유래를 선악의 기준으로 본다는 건 다르지 않은데요, 단지 힘의지이냐 의도냐 일 뿐. 행위가 의도된 것이 아니고, 도출된 것이라는 사실은 행위의 가치에 어떤 영향이 있는건지...? 의도를 상정하고 선이라 판단하는 것이나, 힘의지를 선이라 판단하는 것이나(이 때 힘의지는 아마 모든 힘의지들 중에서 승리한 힘의지이겠죠?), 선이라 이름붙이는 그 판단주체의 힘의지가 반영된다는 점에선 같은 것 같은데요.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의 여부만 달라지는 건지.. (의도가 행위를 낳았다면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죠. 그렇지만 힘의지뿐이라고 해서 개인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예전 강의에서 들은 것 같은데..) 도덕적 판단은 의도된 것이 아니고, 행위도 의도된 것이 아니다라는 두 말이 이어지지는 않고 저한텐 따로 노는 느낌...?‘


  그리고 또 중요한 이야기라면 '인식과 도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인식은 도덕을 수반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인식은 어떤 것을 아는 것, 행위의 맥락과 인과를 파악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는 반드시 가치판단이 개입하고, 도덕적 선입견이 형성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어떤 것을 순수하게 알고 있기만 한 것은 없다는 말? 누군가가 공원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본 세 사람이 있다면, 세 사람 모두 ‘아, 저 사람은 책을 읽고 있네~’ 라고 인식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인식한 행위나 사물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려서, 예를 들면 ‘저 사람은 왜 공원에서 책을 읽나, 책은 도서관에서나 읽지. 과시하려는 건가?’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공원에서까지 책을 읽다니~ 대단한 사람이네~’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이런 날 친구는 안 만나고 책이나 읽다니, 친구가 별로 없는 모양이구만. 사람이 별로 인가보네.’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인식은 항상 도덕적 사고를 수반한다는 얘기.(이게 맞나요?)

‘진리가 가상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은 단지 도덕적인 선입견일 뿐이다.’ ‘직접적인 확실성’에 대한 믿음은 도덕적 순박함이다‘ 라는 문장들에서, 왜 ‘도덕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이 세계는 가상이고, 항상 그런 것은 없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세계, 규칙성을 보이는 것 같은 사건들은 예외이고, 항상 그렇다는 법칙은 없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살기 위해>, (물질이든 관념이든) 어떤 것이 있.다, 항상 그렇다고 실재화하곤 합니다. 진리에의 의지는 세계에 대한 잘못된 믿음(?), 이 세계에는 확고한 무엇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 이 세계는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가상, 그렇다면 진리가 있다는 믿음은 확고한 무엇만이 중요하다는 힘의지의 가치평가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 된다는...? 힘의지의 가치평가는 바로 도덕이라 부르는 것.. 그렇다면 무언가가 있.다.고 하는 인식도 결국은 도덕이 개입한 결과라는 얘기...?! 그래서 도덕적인 선입견이라고 니체는 말한 것일까요..?

 

 에고 이상 후기였습니다.

  • 수경 2015.05.17 20:53

    2015년의 매드맥스라니,,, 나한테 매드맥스는 아직도 멜깁슨인데; / 니체의 힘 의지 개념은 탈주체적 사유로 나아가는 것인데 비해 어째 후기에서는 주체의 그림자가 강하네 어른거리네. 힘 의지 개념을 통해 강함과 약함도 다시 정의되어야 할 듯.  토론 시간에도 자꾸 '힘을 담지한 주체'들의 의지와 투쟁...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옮아가는 것 같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니체의 힘 개념부터 우리 다시 정리해얄 듯^^;

  • jerry 2015.05.18 12:44

    니체는 국가 법 그 저변의 도덕과도 맞선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복종하는 국민이 아닌듯..니체는 독일국민이었지만 "반시대적 고찰"을 썼고 그것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면 꽤 강하고 생명력있는 강한 힘! 아니었는가? 범점못할 강자 니체 ^^

  • 수엉터리 2015.05.18 17:35

    미궁 속으로 빠진...... 우리들의 니체읽기이이이이이...~.~ 한 주 쉬었다 다시 열독 해봅시닫>->!

  • 매드덕순 2015.05.20 18:34
    매드맥스 최고였음!!!!!!! 나는 그 현란하고 그로테스크한 소품디자인에 홀딱 반해버렸.... 하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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