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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活着)은 매우 힘이 넘치는 말이다. 그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 (<인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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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는 패배했다. 그리고 그 어떤 위대함도 없었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인간 삶이 패배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삶이라고 부르는 이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소설 기술의 존재 이유가 있다. ---<커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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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지식 속에서 실제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삶의 과정에 관한 근거가 제시될 때에만 파시즘은 궤멸될 수 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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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일어나는 것 전체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훌륭한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세계에는 예고 없이 우리에게 떨어져내리는 사례들, 상황들, 사물들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철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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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용모의 귀신들이

우두커니 꽃나무 그늘에 서서

저승에도 못 가는 찬기운의 한숨을 쉬고

인간축에도 못 끼는 서러운 낯짝으로

누가 좀 따뜻이 나를 대해줬으면 하고

은근히 기다리는 봄밤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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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억지로 배우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생선 물어 채듯이 모르는 건 바로 배우고,  배고픈 사람이 밥 한 공기를 해치우듯 책을 읽는 것, 이게 공자님이 생각하시는 진정한 '호학(好學)' 입니다.

-느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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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난 왜 구린내가 진동하는 깨진 항아리 속에서 똥을 누는데 울고 싶어졌을까? 늙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이제 막 초콜릿 맛을 안 네 살배기 아이, 이렇게 세 사람의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 비록 속눈썹이나마 이렇게 주책없이 적셔서야 되겠는가. 아아. 하지만 여태껏 나를 지탱해 왔던 기억, 그 기억을 지탱해온 육체인 이 산동네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를 이렇게 감상적으로 만드는 게. 이 동네가 포크레인의 날카로운 삽질에 깎여가면 내 허약한 기억도 송두리째 퍼내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껏 똥을 눌 뿐인데...... 그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ㅡ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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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으며, 애태워하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되, 한 귀퉁이를 들어줌에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하지 않으면 다시 더 일러주지 않는다."

(子曰 不 不啓 不悱  不發 擧一隅 不以 三隅反  不復也)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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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태는 다리 하나를 잃는 경험을 통해 한층 더 지혜로워지고 성숙한 경지로 들어간 것이다. 남들이 잃지 않은 걸 잃었기 때문에 비로소 남들이 얻지 못한 걸 얻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남들이 말하지 못하는 걸 말할 수 있었다. 만약 왕태가 아무것도 상실하지 않고 모든 점에서 완벽했다면 그는 기껏해야 소심하고 겁 많고 겉만 번지르르한 평범한 인물에 그쳤을 것이다. (나는 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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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은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다.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하기도하고 매혹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나이기도 하고 내가 아니기도 하다. <황금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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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慈'란 기쁨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함께 해서 기뻐하는 것이 慈입니다. '悲란 슬픔을 완전히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나'없는 이만이 생명의 장에서 일어나는 기쁨과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눌 수 있습니다.완전히 빈 마음에서만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금강경, 정화풀어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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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그 위를 걷거나 설 수 있는 대지나 바위는 없고 오직 출렁거리는 바다와 하늘과 바람만 있다면 그럴 때 취할 성숙한 태도는 고정된 자리의 상실에 대해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항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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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지혜를 찾은 사람! 행복하여라, 슬기를 얻은 사람! <잠언 3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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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은 거대파충류의 생명활동이 남기고 간 막대한 석유를 소비하며 지금도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글로벌리즘도 마음의 거대파충류로서의 일신교의 커다란 유해를 먹어치우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 위기의 시기에는, 우리의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는지를 우선 충분히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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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언어는 주객의 구도, 즉 자아와 세상의 관계 구도를 흔들어 버린다. 선어를 읽거나 듣고 파악하려고 하는 주체로서의 독자라는 지위도 그런 주객의 구도에 바탕을 두는데, 그것이 해체되어 버린다.

<선불교에 대한 철학적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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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려치우자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시나리오든지 한두 번쯤은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을 꾹 참고 달마처럼 벽을 노려보다 보면 언젠가 길이 열린다는 것을, 나는 많은 시나리오를 써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도 꾹 참고 전혀 자랄 줄 모르는 이 마네킹 같은 젊은 의사의 이미지를 매일같이 노려보고 있었다. (...) 마침내 '주정뱅이 천사(구로사와 아키라의 1948년 작품)'가 등장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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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가능성을 모르고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고 하겠다. 그는 영원과의 인연을 끊고, 그는 제멋대로 가능성을 떼어버리고 영원한 분의 동의도 없이 끝이 아닌 곳에서 끝을 맺고 만다. 모름지기 그는 받아쓰기를 하는 사람처럼 계속 다음 말에 대비하여 연필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하고, 의미가 완결되기 전에 의미가 없는 종지부를 찍거나, 반항적으로 연필을 내동댕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사랑의 역사>中

  • 2014.03.13 15:45

    끝이 아닌 곳에서 끝을 맺지 않는 일, 반항적으로 연필을 내동댕이치지 않는 일에 

    엄두를 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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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여인, 토마시아사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버펄로를 공경하도록 가르쳤는지 듣고 싶지 않니? 토마시아사는 야생화에 대해서 말했다. 풀-꽃들이야말로 버펄로라고, 버펄로들은 그들이 먹는 풀-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때문에 우리 생명의 원 추장들은 버펄로를 풀-꽃이라 부른다. .... 네가 먹는 식물과 동물들을 공경하라. 삶을 공경하라. 죽음을 공경하라. 네가 살생하는 모든 식물들과 동물들에 대해서 책임을 져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공경하라." (주술사 이스트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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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유럽의 중세 말기에 자신이 믿고 싶은 세계관을, 죄와 징벌과 회개와 사랑과 구원의 개념을 자신이 살던 시대의 토스카나어가 허용해주는 한계 안에서 생각하고 표현하여 <신곡>을 썼다.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중세의 토스카나어를 다시 한국어로 이해하고 바꾸는 일을 넘어서서, 그 세계관과 언어가 단테의 정신 속에서 만났던 일련의 과정을 한국어로 다시 체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번역자의 이 체현을 통해 <신곡>이 현대 한국어에서 다시 발생한다. 한국어는 한 유럽 중세인의 세계관과 그 표현 역량을 포괄하는 언어가 되고 <신곡>은 그 생명의 보편성을 한국어를 통해 다시 시험한다.  -- <번역의 가능성과 시의 보편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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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은 바로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의 투쟁으로 확보된다는 거짓된 확신에 있다. 우리는 이런 기만- 우리의 삶과 재산에 대한 가상의 안전- 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잃게 되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의 전체 삶은 이러한 삶의 안전에, 이러한 삶의 준비에 너무나 몰두해 있어서 우리에게는 어떠한 삶도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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