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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지구상의 생명체가 단세포 생물로부터 출발하여,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는 긴 역사 과정을 밟아 왔다 칠 때, 자신을 나누어서 다세포로 발달한 것이지 않습니까? 자기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에서 출발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혼자 살아남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있음과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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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시민 불복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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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세상을 잘 본다면 움직임의 필연성은 스스로 드러날 것이다. 내 부모님은 나와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그들을 위해 쓰여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움직이면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즉흥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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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술에서 체험하고 이해한 모든 것이 삶에서 무위로 남게 하지 않으려면 나는 그것들에 대해 나 자신의 삶으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 (...) 무책임을 정당화하기 위해 '영감'에 의지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삶을 무시하고, 그 자신이 삶에게 무시당하는 영감은 영감이 아니라 사로잡힘이다. ---<말의 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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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의 은어들 중 결코 사용하지 않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내일 아침"이다. - <이것이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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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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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더 이상 의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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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수렵채취민의 생활은 우리에게 국가와 제국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는 것이 없다. 우리는 사실상 어제까지의 세계에 대해서 어떠한 믿을만한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그 증거를 확보하기까지 유일하게 정당한 지적 입장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부족민 사회와 국가중에서, 녹색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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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의 삶터에는 그 땅을 보호하는 영적 기운이 있다. 우리가 한 장소의 독특한 힘과 아름다움을 체험하기 위해서 티베트나 혹은 다른 이른바 이국적인 지방으로 여행할 필요는 없다. 시인들은 진리를 말해왔다 - 한 장소를 안다는 것은 그 땅의 영기에 사로잡혀, 거기에서 두려움과 공경심,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을 뜻한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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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믿는 신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들에게 대중들의 견해를 귀속시키는 사람이다. <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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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도 처음에는 언제나 미미하여 자칫 지나쳐 버리기 쉽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경향은 점진적으로 자리를 잡기 마련이니 성향이란 한 번 정해지면 차즘 모든 행동거지를 지배하고 고착해버릴 정도로 구속적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모든 탈선을 고치는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운행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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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자신이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잘 몰랐다. 그러면서도 나는 도착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전도가 캄캄한 긴 길이 끝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무슨 아는 체함인가, 제기랄.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유희를 할 시간이다. - <말론은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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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달한 사람은 넓게 보고

무슨 물건이건 한결같이 보네

탐욕스러운 사람은 재물을 위하여 죽고

열사는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법.

권세를 뽐내는 자는 권세 때문에 죽고

평범한 사람은 삶에만 매달리지. - <사기> 굴원,가생열전

  • jerry 2014.07.08 01:22

    샘, 늦는 건 그렇다 쳐도, 형식은 지켜주시고 오타는 없어야 할 텐데요...  이번엔 제가 고쳐 놓았습니다만, 형식이 이렇습니다. - [날짜] 저자명 /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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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 어두워지기 전에 나는 광막한 하늘 아래로 나와 모래 구릉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검은 구릉, 검은 허공,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 사막은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에요 살아보려고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뎌보지 않으면 모래 구릉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허무니 절대고독이니 하는 이들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이들입니다 삶이란 모래와 풀과 바람에 길들여지며 굴러다니는 거지요 악취도 향기지요 (<악취도 향기지요>,《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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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할 때는 단지 양量만이 문제가 될 뿐이야. 그러면 나중에 그것은 저절로 질質이 되는 거지. 그 자체의 힘에 의해서든 어떤 다른 힘에 의해서든 말이야. <프래니와 주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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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동화에서 내가 배운 것은, 문학 공부에 대한 모종의 초조함과 자존심이었소. 문학공부를 통해서도 인류사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쩨쩨한 자기 동네나 자기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사를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잠깐, 그래서? 그래서라니, 인류가 발명한 가장 황당무계한 꿈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이것 없이는, 인류는 살기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니까. ---<내가 읽은 박완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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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 천지 사이에 살고 있는 시간이란 마치 준마가 벽의 틈새를 언뜻 지나가듯 순식간이오. <장자_지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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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기민한 감각은 사물에 대한 진정한 감수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거기에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온갖 것들에 대한 싫증이 있을 뿐이며, 새로운 것의 번쩍거리는 빛으로 시선의 깊이를 대신하려는 나태함이 있을 뿐이다. ... 제 깊이를 지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은 세상을 살지 않는 것이나 같다.<밤이 선생이다> '유행과 사물의 감수성'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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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은 곧 자신의 이웃을 착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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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대개 前의식적이다. 이해는 오래도록 잊고 있는 과거경험의 기억들, 우리가 지금껏 들은 이야기들, 우리가 지금껏 행한 행위들에 의하여 형성되고 또 그안에 담겨있는 것이다. 우리 몸의 움직임은 그 안에 이미 이해가 들어있음을 보여준다. (선불교에 대한 철학적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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