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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당하게 고백합니다만, 저는 도선생이 좋습니다.

이미 '죄와 벌'을 읽고 그를 향한 격한 애정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만, '분신'에서 다시 한 번 넋다운 당했네요. 오오~멋진 당신! 읽는 내내 두 주먹을 꼭 쥐고 두근두근 긴장하고 흥분하며 읽었습니다. 다 읽었을 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더랬죠. 하아~ 그제야 긴장을 풀고 의자에 등을 기댈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참으로 간단합니다. 결말도 익히 예상 가능하죠. '죄와 벌'도 그랬어요. 주인공이 노파를 죽였고 결국 잡혀 유형지로 유배된다. 하지만 그 간단한 구조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들이 어마무지 했었죠. 마찬가지로 '분신'도 소심하고, 어눌하고, 관계에 서툰, 하지만 자의식 강한 골랴드낀이라는 9등 문관이 결국 또 다른 자기인 분신을 만들어 내고 마지막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는 비교적 간단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매력은 그 수직적 기둥에 풍성하게 부피를 더해주고 있는 것들에 있습니다. 양팔을 양껏 벌려서 이따만한 것이 그 기둥에 달려 있다고 표현해 봅니다.^^ 주인공 골랴드낀에게 집요하게 달라붙어 있는 해부학적 시선은 그를 그야말로 발라버립니다. 이야~ 저는 골랴드낀이 올수피 이바노비치의 딸인 까롤리나 이바노브나의 생일파티에서 쫓겨나 그의 분신을 만나게 되기까지 거리를 헤매는 장면이 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읽는 동시에 머리 속에 영상이 돌아가더군요. 카메라가 그의 뒤를 집요하게 쫓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좀 물러나서 그를 관찰하다가 어떤 때는 그의 시선으로 낯선 사람을 잡았다가 합니다. 눈이 미친듯이 쏟아지고 거리는 어둡고 가로등 불빛은 희미하기만 한데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를 덜컥 만납니다. 낯선 사람, 아니, 아니, 만난 적이 있는 사람,  바로 얼마 전에도 만났던 사람, 너무 잘 아는 사람. 바로 자신의 분신!

  이 '분신'이라는 모티프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죄와 벌'에서도 나왔고 다른 작품에서도 나온다고 하네요. 글쎄요, 뭘까요, 이 '분신'이라는 것은? 자신이 만들었는데 자신은 또 아니죠. 그러면서 자신을 잠식해 들어오는 것이 두렵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골랴드낀이 그렇죠. 그가 만들어낸 '작은' 골랴드낀은 그와는 반대로 엄청난 사교성을 발휘합니다. '다가가지 않을 테니 나한테도 오지마'라는 오오라를 풍기며 살고 있던 골랴드낀과는 완전 다릅니다. 그렇게 말을 잘 할 수가 없고, 높은 분들과도 동료들과도 심지어 젊은 사람들과도 잘 지냅니다. 골랴드낀은 '작은 골랴드낀'에게 항의합니다. 자기 자리를 뺏지 말라고. 하지만 원래 그의 자리가 아니죠. 그가 갖지 못했던 자리를 그의 분신은 만들어낸 겁니다. "우리 둘 중 한 명은 사라져야 한다!" 골랴드낀은 외치지만 결국 분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주치의인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에 의해 마차에 태워져 어딘가로 떠나게 됩니다. 아마도 정신병원이겠죠. 


 "안똔 안또노비치, 제가 생각하기에 요즘은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들의 진면목을 알기가 어렵다는 겁니다......저 자신에 대한 말인데요, 가령 저는 필요할 때만 가면을 씁니다......하지만 함축적인 뜻으로 말하자면, 사람들 앞에서 매일 가면을 쓰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던 것은 바로 이겁니다..."('분신' 中) 


  차라리 가면이라도 잘 썼으면 그는 분신 따위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위선 떨고 중상모략하고 뜬소문을 경멸한다는 골랴드낀. 실은 그는 그러고 싶어도 그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자신이 말했듯 "많은 말을 할 줄 모르"므로, "말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므로.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더듬고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바로 그의 '말'입니다. 말...공자님은 말을 번드르 잘하는 사람을 몹시 싫어하셨지만, 골랴드낀도 우리도 말을 잘 하고 싶어합니다. 말의 진창에 빠져서 자기 생각 하나 명료하게 말로 건져내지 못할 때의 비참함을 잘 아실 겁니다. 골랴드낀도 그런 진창에 빠진 사람같습니다. 그의 분신은 도대체 어떤 말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는지 골랴드낀은 궁금해하죠. "나도 그래볼까?" (물론 당연히 골랴드낀은 그렇게 못 합니다.) 심지어 그의 분신은 골랴드낀이 질색하는 저속한 말도 서슴치 않고 하고, 빈정거리고 놀려먹는 말도 거리낌 없습니다. 마치 말에서 놓여난 사람처럼 자유자재로 지껄여댑니다. 골랴드낀은 자기랑 똑같은 얼굴을 한 분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 같은 말들을 너무 싫어하지만, 실은 그것은 그의 욕망이기도 한 셈입니다.  

  소금세미나에서 같이 이야기 하다가 우리는 그야말로 분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인터넷 공간이 그렇죠. 아바타들이 활동하는 공간, 바로 분신들의 공간입니다. 아이디는 분신에게 부여된 새로운 이름에 다름 아닙니다. 저도 여러 개 가지고 있어요. 규문에서는 윤차장과 영은. 신기한 건 이름에 맞춰서 어느 정도는 다른 인간이 된다는 겁니다. 문학소녀 영은일 땐 몹시 발랄하고 후레쉬해지거든요, 저는~ ㅋㅋ 골랴드낀처럼 극단적으로 분열되지는 않지만요. 그걸 분간 못하면 병이 되겠지만 지금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정말 분열증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분신 없이는 살 수가 없고, 단 한 마디도 할 수가 없게 된 거죠. 분신이 진짜를 대체하는 시대. 가상이 현실을 잡아 먹는 시대. 바로 지금 우리 시댑니다. 어후~무섭네요.

  도스또예프스끼에게 분신이라는 모티프가 왜 필요한 건지, 도대체 그는 인간을 뭐라고 생각하기에 분신을 만들어낸 건지, '분신'을 읽으면서 들었던 이런저런 의문들은 앞으로 그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 찬찬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다음 주 공지합니다. 

4월 18일. <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 '5장 다시 러시아에서'(p.375)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발제, 간식은 아람. 공통과제는 없습니다. 같이 이야기할 거리를 간단하게 메모 정도 해오세요.

그럼 일주일 잘 보내시고 금욜일에 봐요~~^^


  • 채운 2014.04.14 02:50

    도선생을 흠모하는 영은이라.... 자못 기대가 되는군! 후후후

  • 수경 2014.04.14 11:09

    아무튼간에 현실에서라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도 선생 대단합니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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