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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는 기차와 함께 도래했고, 마침내 세상을 기차로 만들었다!”


 

지금, 우리 삶에서 당연시 하는 가치들, “둘러가는 것보단 직선이 효율적이고, 그렇기에 선(善)이며”, “시간은 곧 돈”이고, 따라서 “목표에 최대한 빨리 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는, 그 인식이 ‘기차’가 놓여지는 순간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자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만큼 기차와 현대인의 삶은 닮아 보인다. 그러면, 지금 이 삶이 100여 년 전 기차와 함께 시작된 것이라면, 우리가 원한다면 이 삶에서 벗어날 방법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고미숙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그것을 잘 보여 준다고 말한다. 옆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 여기를 나가면 얼어 죽을 거라고들 말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생명,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것이 순탄하거나 행복할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내가 진리로 여기는 가치가 어느 시기 어떤 문명의 도래와 함께 만들어진 것일 뿐, 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안다면, 그리고 지금 이 삶의 속도가 내게 너무 힘겹다면, 그 순간 이 속도에 이 질주에 의문을 품고 그 기차에서 내려보아도 괜찮지 않겠냐고, 또 다른 가치와 또 다른 삶은 기차 철로 주변에 언제나 있었다고, <계몽의 시대>는 한국근대기로 돌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순정과 막장을 오가지 않는 연애는 불가능한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이른바 근대계몽기에 있어 여성과 똥의 공통점은? 둘다 ‘재발견’된다는 점이 다. 이 둘은 느닷없이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기 시작한다. 차이가 있다면, 농경의 필수자원으로서 대접을 받았던 똥은 하루아침에 ‘문명개화의 적’으로 그 지위가 격하된 반면, 서구의 남녀평등론의 유입으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국민’의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지식과 애국심으로 무장할 것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 여성들이 낳고 기를 미래의 국민구성원들의 ‘어머니’라는 지위로서 호명된 것”(『연애의 시대』, 41쪽)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친정부모를 섬기고 형제자매를 극진히 보호하다가 혼인하면 시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남편을 몸과 마음을 다해 권면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자식을 성심으로 길러”(앞의 책, 43쪽) 가르쳐야 한다. 이유는? “가족에 헌신하는 것이 곧바로 국가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같은쪽) 하여, “가정의 책임, 자녀교육, 국민분자로서의 책무를 벗어나는 어떤 일탈도 용서받을 수 없다”(같은 책, 53쪽). 이는 매음녀 군단으로 대표되는 음녀에 대한 단죄로 이어지고, 성적으로 정결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경우라는 이분법은 근대계몽기를 넘어 1920년대에 이르러 ‘순정과 애욕’이라는 이분법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고미숙은 1920년대의 ‘비정상적인’ 연애에 대한 이상열기는 3.1운동으로 대표되는 애국적 열정이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연애를 야기하는 욕망의 기초에 민족이 있다면, 연애는 숭고한 것이다. 아니, 숭고한 것이어야 한다. 민족을 대체하는 것일 뿐 아니라, 대체해도 좋은 것이라면, 그에 값할 만큼 고귀하고 순결해야 한다”(같은 책, 104쪽)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욕정이 자리할 틈이 없다. 이것이 1920년대 사랑의 이분법이다. 애욕은 순수하지 못하고, 순정에는 성욕이 없다는! 그래서 이런 사랑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불행하면 할수록 사랑은 순수해지고, 마침내 죽음을 통해 사랑이 완성된다. 이것이 바로 근대적 ‘연애의 정석’으로 지난 100여 년간 소설, 드라마, 영화 등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사랑’(이라고 믿게 된 것)의 패턴이다.


20세기의 연애에 애국심과 신앙, 순결과 비극성의 기호가 덧씌워졌다면, 21세기의 연애에는 부와 권력 그리고 초능력까지 더해진다. 부귀와 초능력 그리고 잘생긴 외모까지 겸비한 남자가 오직 한 여자만을 위해 순정을 바치는 것, 이런 판타지가 멜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욕망되고 있는 시대의 끝은 해피엔딩이 아닌 ‘사랑과 전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랑의 판타지 역시 소유와 증식의 레일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 레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는 것들이 결코 진리가 아니라는 것, 어느 날 문득 외계로부터 뚝 떨어져 진리로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 하여 결코 삶의 실상이 아니라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양생의 시대는 어떻게 위생의 시대로 바뀌어 갔나?
청결강박증의 기원을 찾아서

 

19 세기 말, 역사 이래로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던 ‘그것’이 구한말의 조선을 뒤흔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요, 별안간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느닷없이 ‘문명개화의 적’이 되어 버린 똥, 갑신정변의 풍운아 김옥균은 아예 “사람과 짐승의 똥오줌이 길에 가득하니 이것이 더 두려운 일”이라며 민가의 변소를 만드는 법에서부터 대소변을 수거하고 그 값을 매기는 데까지 조선의 ‘위생’을 위해 쫀쫀하다고 할 정도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똥이 무슨 죄가 있을까. 죄가 있다면, 느닷없이 똥을 견딜 수 없게 된 뒤바뀐 현실에 있는 것”이 다. 그 현실 아래에서는 가옥 개량, 도로 교량, 위생법 실시 등 조선 전반에 걸친 ‘위생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당시에는 자기 똥을 내주고 돈을 내야 하며, 똥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거나, 위생비 때문에 경찰에 닦달당하는 처지에 놓이는 등 ‘위생위생 원수이고’, ‘위생이 곧 고생’이라는 원성이 자자했으나 그것은 이제 100년 전 일이고, 지금의 우리에게 위생은 ‘습속’이자 ‘무의식’이 되어 버렸다. 병리학이 이 땅에 유입된 때만 해도 세균을 몰아내고, 감염을 막기 위해 씻기 ‘시작’했던 우리는 이제 아무 ‘이유 없이’ 씻어 댄다. 근대계몽기에 유입되었던 위생관념이 지난 100여 년간 우리의 신체를 완전히 지배하게 된 탓이다.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의 마지막 권, 『위생의 시대 : 병리학과 근대적 신체의 탄생』에서는 우리의 몸이 어떤 과정으로 위생관념을 체화했고 결국 청결강박증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한 계보학적 탐사가 시작된다. 그렇게 씻어댔음에도 불구하고 아토피는 물론이고 각종 피부질환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기 위하여, 자연스런 생명활동이 아닌 의료기술로써 우리의 신체를 관리하고 보완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위생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평상시 신체를 어떻게 조절하고, 일상의 리듬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생로병사의 과정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잊게 되었다. 위생은 오로지 ‘병에 걸리지 않는 것, 세균을 축출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결국 위생은 인간의 삶을 한 없이 왜소하게 만든 것. 이를 충분히 깨달았다면 이제 “질병을 적대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치유를 통해 삶을 새롭게 구성하는” 양생의 지혜를 되살릴 수 있다. 그 새로운 비전 탐구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위생의 시대’를 통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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