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불교n : 불교와 진화론의 만남


 

학인 인터뷰 : “난 아라한이 될 거야! 번뇌의 폭류를 끊겠어!”

 


Q. ‘불교n’이 8월 26일에 시작합니다. 불교n의 그 세 번째 여정은 불교와 진화론입니다! 불교와 진화론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걸까요?

 

 

coffee.jpg 운   : 지난 학기에는 <물질과 기억>을 <유식30송>과 함께 읽었죠. 베르그손의 ‘기억’ 개념을 키워드로 놓고 여기에 유식 개념을 엮어서 이해해보자는 거였는데요, 다들 멘붕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죠? 묘하게 만나는 지점도 있었던 것 같고, 분기하는 지점도 있었죠. 되든 안 되든 불교를 좀 역동적으로 읽어보자는 게 불교n의 취지인데, 뭐 나름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마음이니 기억이니 업이니 아뢰야식이니 하는 게 정태적으로 이해되어선 안 된다는 것도 알았구요. 그러다가 내친 김에 아예 이 ‘기억’이라는 문제를 더 확장시켜보자 해서 ‘불교와 진화론’까지 오게 된 거죠.

공지했다시피, 이번 학기에는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와 유식을 함께 읽을 예정입니다. 인간이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죠. 그런데 유식은 그 몸과 마음 모두 독립된 개체의 차원에서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개체’란 일종의 집합적, 역사적, 우주적 기억이 현실화된 거라고 볼 수 있겠죠. 근데 이게 바로 진화론의 핵심이거든요. 한 개체는 전생명의 역사가 반복적으로 쓰이고 지워진 양피지와 같다는 거예요. 베르그손 역시 지속이라든가 생명, 차이화 개념을 통해 개체의 문제를 흥미롭게 사유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유식과 진화론을 읽으면 개체와 전체, 개체의 기억과 전체의 기억, 의식과 무의식의 문제 등을 새롭게 문제화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제나 그렇듯, 우리 공부가 어디에 이를지 알 수는 없지만요.^^


Q. 그럼 지난 학기에 유식과 베르그손을 먼저 만났던 학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지난 학기에 유식과 함께 <물질과 기억>을 읽었는데요, 각자 간단한 소감 한마디?

 

jr.jpg 제리: 베르그손은 인식과 기억의 문제를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베르그손은 인간이 살아온 과거가 우리의 현재적 삶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해요. 우리는 ‘시간은 흐른다’, ‘과거는 지나간 거니까 어쩔 수 없다’…라고 식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베르그손은 과거(기억)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와 연관된다고 말해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아는가?라는 메타적 질문은 곧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의 문제인 거죠. 

요즘에 드라마 <나인>을 재방송으로 보고 있는데, 베르그손이 계속 생각나더라구요. <나인>의 주인공은 시간 여행을 해요. 과거로 돌아가서 기억을 조작하는 거죠. 그리고 완전히 달라진 현실 속으로 돌아와요. 기억할 수 있는 것만 기억하는 우리는 인간에게 여러 가지 기억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요. 우리에게 잠재된 기억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베르그손과 연결시켜볼만 하다고 생각해요.

 

 

 choo2.jpg추극 : 현재에서 과거 자체를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 만날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횡단철학에서 불교를 처음 공부하게 됐어요. 이전에는 불교가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종교인 줄로만 알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거죠.-_-;; 공부하면서 불교 사상의 논리가 굉장히 치밀하다는 걸 알았어요. 유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완전 멘붕...(일동 공감) 국한문혼용체로 쓰인 <유식삼십송풀이>을 읽을 땐 정말 ‘한 땀 한 땀’ 읽어야 했죠. 그러면서도 이 짧은 글 안에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잘 모르겠는 게 많지만 그래도 다시 읽을 때마다 하나씩 새롭게 보이는 게 있어요. 하나씩 알아갈 때의 그 짜릿함이란!◉_◉!


sk.jpg수경: 베르그손도 베르그손이지만 유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 완전 멘붕이었어요. 강의 시간에도 속으로 ‘저기 뭔 소리야?’ 하면서 앉아 있었죠. 그 낯섦과 어려움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어요. 우선은 텍스트의 내용이 뭘 말하느냐를 알기 전에 그 낯설고 어려운 책 자체가 가진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산만한 정신으로는 도저히 읽을 수도 없는 책들이거든요. 이것들을 공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수행하는 자세를 필요로 했던 거죠. 공부를 나름 오래 했지만 전에 없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유식과 베르그손 공부는 어려웠던 게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던 거 같아요. 쉬우면 금방 질리잖아요. ♡_♡

 서양철학 공부하는 게 불길이 뜨겁게 타오르는 이미지라면 불교는 서늘하고 냉정한 이미지가 강해요. 번뇌를 끊어버리는 공부라고 해야 하나. 또 아직 모호하지만 베르그손이 물질과 기억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주와 나의 연결감을 느꼈어요. 나와 세계를 동시에 그리는 공부를 처음 했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저에게 가장 인상에 남아요.

 


tr2.jpg태람: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겠더라구요. 뭘 이해했다고 생각하다가도 기존에 있던 내 생각과 마구 엉켜서 뒤죽박죽돼 버리고, 아니면 아예 헛소리를 하게 되고... 윽윽 ㅠ.ㅠ 어쨌든 지난 학기는 저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던 시간이었어요. 이런 좌절감이 불교n 수업이 저에게 준 선물이라고나 할까. (호호호) 다음 학기엔  공부를 아예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해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어요.

베르그손을 공부하면서 인식은 기억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기억에 대한 저의 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전에는 과거가, 예전에 겪었던 어떤 일이 지금의 나를 결정한다고 생각했어요. 과거에 잡아먹히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베르그손은 지금의 나를 문제 삼아요. 과거가 나를 잠식하는 게 아니라 과거를 그런 식으로 끌어오는 지금의 내가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거라고요. 베르그손은 과거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건 과거가 고정불변의 진리여서가 아니에요. 과거는 현재와 공존하면서 그 모습을 바꾸는 거라고요. 괴롭고, 후회스런 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언제나 똑같이 비관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아닌 거죠. 완전 힐링 되는 기분이었어요. ^^ 요즘 힐링이란 말이 여기저기 많이 붙는데, 공부만큼 좋은 힐링은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불교에서는 ‘무아’를 말해요. 무아를 말하는데 나를 내세우거나 내가 뭘 안다고 우쭐해할 수도 없는 거죠. 불교 공부가 공부하는 태도를 배우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 같아요. 


 sy4.jpg수영: 저는 사실 불교나 베르그손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시간이 맞아서 시작했죠.^^ 그런데 공부하다보니 뭔가 모르게 쇼킹한 게 있었어요. 무아, 공, 열반…등. 사실 지금도 거의 이해하진 못했지만…….^^;;; 불교 공부하면서 나, 나의 생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생소한 말들과 부딪히면서 제가 깨져나가는 경험은 아프지만 유쾌한 경험이었어요! 


 

 

Q. 앞으로 죽~이어질 불교n. 개강을 앞두고 각자의 다짐을 말해 볼까요?

 

 choo2.jpg추극 : 불교와 베르그손을 공부하면서 저도 제 자신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평소에 집착하던 것들, 힘들었던 것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건지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는 공부라고나 할까. 특히 제가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 갇혀 있다는 건 분명히 알게 됐어요. 기존에 갖고 있었던 사고 방식 그대로 유식과 베르그손을 읽으려니 하나도 안 읽히고, 계속 헛바퀴만 돌았던 거죠. 불교n 공부가 어렵긴 하지만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이런 소소한 깨달음들 때문이에요. 원대한 꿈은 아라한이 되는 거예요! ^^ 전 번뇌의 폭류를 끊을 거라구요! 


jr.jpg 제리: 자살, 묻지마 살인, 힐링, 심리학 등등 모두 요즘 넘쳐나는 것들이죠. 타인에 대한 증오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 자기가 ‘더’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저는 이 모든 게 ‘자아’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라고 봐요. 불교는 ‘나’라는 자기 자체를 깨버리는 철학이에요. 돌파구가 없는 시대에 가장 근본에서 자기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게 하는 게 불교 아닐까요? 불교 신자나, 수도승들은 하지 않는, 불교로 새로운 담론 만들기를 우리가 하자는 거죠! ^^

 

 

 choo2.jpg추극 : 요즘 제가 만나는 십대들을 보면 굉장히 배타적이에요. 결속 아니면 배타. 이런 극단적 이분법 속에서 자기가 조금이라도 피해볼 것 같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해요. 또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는 걸 볼 때도 놀랐어요. 전쟁 나서 이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대요. 그런 극단적 허무주의가 낳는 게 국수주의, 파시즘 아닐까요!!

 

 

 jr.jpg 제리: 그건 비단 십대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아무리 공동체가 많아져도, 복지 정책이 빵빵해져도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보면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공동체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나와 타인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위해 불교 공부가 중요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tr2.jpg태람: 벌써부터 불교와 진화론의 만남이 궁금해집니다. 지난 학기에는 한 개체의 인식과 기억의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면, 이번엔 한 개체의 기억을 넘어 인류의 역사를 간직한 개체, 그 우주적 자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불교나 베르그손 어느 하나에만 관심 있는 분들, 베르그손도 불교도 모르지만 빡센 공부에 도전해보고 싶으신 분들, 머리가 어지럽거나 심적으로 어려우신 분들에게도 적극 추천합니다! 고민은 그만하고 어서들 오셔요!^^ 

 

 

*<불교n>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공통과제 : 학인들이 해야할 일. 책 내용을 키워드를 중심으로 요약ㆍ정리해오시면 됩니다. 분량은 약 A4 1~2장으로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핵심만 간략하게! 궁금한 점이나 잘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왜 어떻게 궁금하고 이해되지 않는지 써옵니다.

 

-조별토론 : 1시부터 3시까지는 조별토론이 진행됩니다. 조별로 공통과제를 읽고 기본 내용 정리하고, 조원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궁금증들을 해결합니다. 끝내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면 정리강의 시간에 질문합니다.    

 

-정리강의 : 3시부터 5시 30분까지. 튜터를 중심으로 기본 내용을 정리하고 더 생각해볼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입니다. 

 

-공동 글쓰기 작업 : 이번 학기를 마무리 하며 한 편의 에세이를 조별 공동 작업으로 써 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