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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이브 new 시즌 개강합니다~

 

규문의 3인 잡담회

"이 프로그램이 궁금하다!"



별 생각 없이 부모 세대를 착취하는 20대들여!

공무원 시험이 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는 30대들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인생 다 이렇게 사는 거라며 체념하는 40대들이여!

이렇게 외쳐라,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태람 : 이브 new 시즌 개강에 앞서, 먼저 지난 시즌에 배웠던 “신화와 종교의 역사”를 떠올려볼까요~~ 우리가 읽었던 나카자와 신이치, 캠벨, 엘리아데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저는 엘리아데의 <세계종교사>1~3권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방대한 분량도 분량이지만, 책을 읽은 사람들이 거의 없을 테니 우리를 대한민국 상위 1%로 만들어준 책이었죠. ^^ ㅎㅎ


영은 : 저는 신이치의 날카로운 한 문장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마음의 구조는 반드시 ‘초월성’의 영역과 접촉하게끔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쉽사리 완전한 ‘무신론’에 처할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인 인간은 근본적으로 신을 사유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어요. 헉! 신화와 종교는 그저 허구적 이야기, 유일자, 초월자, 고로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일 뿐이었는데, 이 한 문장이 저의 편견을 와장창 깨버렸어요. 신화와 종교는 허황된 게 아니라,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는 와중에 나온 거였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었죠. 더 충격적인 건 제가 신이치의 책을 그때 처음 읽은 게 아니라는 사실! 예전에는 뭘 읽었던 건지, 그때 제가 보지 못했던 게 많았다는 거죠. 아무튼 지난 학기의 충격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네요. ^^


채운: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화와 종교를 현재의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대안적 사유로 끌어온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죠. 저는 신화와 종교가 현실적으로 사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자본주의적 인간형을 벗어날 수 있는 잠재성을 확인시켜줬달까... 특히 신이치는 그런 사유를 불교에서 찾고 있죠.

캠벨은 신화의 세계에 대한 신화가 있는 것 같아서 다소 실망스러웠고, 엘리아데는 '종교성'의 본질을 풀어냈죠. 엘리아데의 말대로라면 현대 인간은 '종교성'을 상실하고 속(俗)의 세계를 전부로 알면서 살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일상에서 성(聖)의 세계를 회복한다는 건 뭐고,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종교적 태도를 갖는다는 게 뭔지... 엘리아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도 나름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태람: 신이치가 말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능력도 그렇고, 엘리아데가 말하는 ‘종교적 인간’도 결국 인간에게 자신의 개체성을 뛰어 넘으려는 본성이 잠재해 있다는 말인 것 같아요. 사이비 종교도 어쩌면 자기를 뛰어넘고 싶다는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낸 산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채운: 사이비 종교의 문제점은 현실과의 접점이 없다는 거예요. 자기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현실과 접속되지 못하면 분열증에 걸린 인간처럼 삶을 겉돌게 돼요. 세계와의 합일, 개체로부터의 탈주, 공감과 자비의 욕망은 단지 개체를 넘어서는 차원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다른 관계를 구성할 수 있을 때라야 유의미한 거죠. 그런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들을 이번 이브에서 만나게 될 겁니다.


태람: 이번 시즌 커리큘럼을 보면, 이름은 익숙한데 막상 잘 모르겠는 인물들이 많아요. 소로우, 간디, 톨스토이가 그렇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책 한 두 권 쯤은 다 갖고 있을 걸요. 시몬 베유만 좀 생소하네요.

 

   소로우.jpg

 

 

 

 

  영은: 맞아요. 많이 알려져 있긴 한데, 막상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또 그런 책들이 좀 밍밍하게 읽히고 있는 것도 현실이에요. 예컨대 소로우는 도시를 떠나 자연 친화적 삶을 산 사람으로 유명하죠. 저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어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낭만적으로 사는 삶~~ 소로우가 무엇을 사유했는지 보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는 ‘웰빙적 삶’에 대한 표상을 그에게 덮어 씌워버린 거죠.

 


태람: 소로우 외에도 일리치, 간디, 톨스토이, 시몬 베유, 김종철 선생의 책을 읽을 예정입니다. 그것들을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채운: 말했다시피, 그들의 삶 자체가 종교적이랄까... 현실 속에서 가장 혁명적인 방식으로 종교성을 구현한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었어요. 신실한 삶, 종교적 삶을 교회나 절에 나가는 걸 기준으로 얘기할 순 없어요. 정말 종교적인 삶을 사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반국가적이고 무소유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니, 무소유의  삶이야말로 종교적인 삶이 아닐까 싶었죠. 일리치부터 간디까지 모두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이죠. 예컨대 이반 일리치는 사제였지만 제도화된 종교, 나아가 제도화된 모든 것들과 싸웠죠. 시몬 베유도 신적인 말씀에 충실하다보니 노동자들의 삶, 세계의 어둠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싶고... 소로우가 월든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자연친화적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서였죠.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외치는 '다른 욕망', '다른 삶의 양식'을 구체적으로 사유해보자는 게 이번 시즌의 목표!


태람: 예전에 소로우나 일리치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이렇게 간명하면서 강렬한 울림을 주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채운: 소로우는 월든 숲에서 산책, 노동, 글쓰기를 하면서 살았어요. 먹는 만큼 글 쓰고, 걷는 만큼 글 쓰면서. 그가 간명하면서 강렬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삶 자체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삶은 필연적으로 투쟁적이죠. 무소유의 삶이란 것도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노예가 되라고 강요하는 세계와의 불화를 내포하지 않나요? 그렇게 투쟁하면서 살았으니 삶에 근육이 붙지 않을 수 없었겠죠. 그러니 글이 강렬할 수밖에 없고요. 일리치도 마찬가지죠.

저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배워야 하는 게 그런 점이라고 생각해요. 철학적인 말로 현란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정말 어려운 건 그들처럼 살고 쓰는 것이죠.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어떻게 써야 현실적이면서 강렬한 글을 쓸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이 이번 시즌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에요.


은영: 그들의 소박한 삶과 불복종이 저의 삶에 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몹시 기대가 됩니당~~ 특히 글쓰기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드네요!^^


이브 new 시즌에서 우리가 만날 멘토와 텍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이반 일리치(<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외), 레프 톨스토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참회록>),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월든>, <시민의 불복종>, <산책>), 시몬 베유(<중력과 은총>, <뿌리내림>), 마하트마 K. 간디(<간디, 나의 교육철학>), 김종철(<간디의 물레>)!


이들의 간명하고도 강렬한 글쓰기가 궁금하신 분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막막한 분들, 모두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