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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시바가 물었다.

모든 것을 보신 분이여,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이 거센 물결을 나는 건너갈 수 없습니다.

이 거센 물결을 건너가는 데

내가 의지해야 할 그것에 대하여 말해 주십시오.


스승이 답했다.

우파시바여, 생각을 깊이 하며 무소유를 향해 걸어가거라.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의지해서

저 거센 물결을 헤쳐 가거라.

모든 욕망을 뒤로하고 말싸움에서 떠나서

니르바나, 저 절정을 밤낮으로 응시하라.


우파시바가 물었다.

감각적인 기쁨에 대한 이 모든 탐욕에서 떠나 있으며

모든 것을 버린 다음 저 무소유의 경지에 서서

생각으로부터 해방된 사람,

그는 더 멀리 나아가는 일 없이

거기 그렇게 안주하게 되는지요.


스승이 답했다.

감각적인 기쁨에 대한 이 모든 탐욕에서 떠나 있으며

모든 것을 버린 다음 저 무소유의 경지에 서서

생각의 세계로부터 해방된 사람,

그는 더 멀리 나아가는 일 없이

거기 그렇게 영원히 안주하게 될 것이다.


우파시바가 물었다.

모든 것을 보고 계신 이여,

그가 앞으로 더 나아가는 일 없이

거기 그렇게 오랫동안을 머물러 있게 되면

그는 거기에서 해탈을 얻게 되는지요.

또 그의 의식작용은 뒤에까지도 존재하게 되는지요.


스승이 답했다.

우파시바여, 세찬 바람이 타오르는 불길을 꺼버렸다면

꺼진 그 불은 이제 더 이상 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같이 현자는 정신과 육체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났으므로

더 이상 생존하는 자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우파시바가 물었다.

그는 오직 그의 형태만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까.

아니면 그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도 아니라면 그는 영원히

병과 고뇌로부터 벗어난 것입니까.

진리의 모두를 알고 계시는 이여, 이것을 말해 주십시오.


스승이 답했다.

우파시바여, 사라져 버린 자에게는 더 이상 형태가 없다.

그러므로 그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이 모든 말싸움도 그에 따라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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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에 이른 사람이

이 편안한 경지에서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공명하고 성실하며 말은 부드럽고 점잖아야 하며,

잘난 체하고 뽐내지 않는 것이다.


만족할 줄 알며, 변변치 않은 음식으로 생활하라.

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되도록이면 간소하게 하라.

모든 감관을 편안하게 하고

남의 집에 가서도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현명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살 만한

그런 비열한 짓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살아 있는 것들아, 부디 편안하고 행복하여라.


어떠한 생명체라도

약한 것이건, 강한 것이건, 큰 것이건, 중간 것이건,

제아무리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나려 하는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아, 부디 행복해져라.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

또 남을 멸시해서도 안 된다.

남을 괴롭히거나 고통을 주어서는 더욱 안 된다.


어머니가 외아들을 보호하듯

살아 있는 이 모든 생명체에서

한없는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 자비심이 골고루 스미게 하라.

위로, 아래로, 또는 옆으로,

장애도 없고, 적의도 없고, 척짓는 일도 없이

이 누리에 두루두루 스미게 하라.


서 있을 때나 걸을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잠자지 않는 동안에는

이 연민의 마음을 굳게 지녀라.


사악한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

사리를 잘 판단하며 욕망의 늪을 이미 나온 사람,

이런 사람은 결코 두 번 다시 어머니의 태에 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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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어,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머물며 거두어 받아들이고 자랄 수 있게 하는 네 가지 음식[四食]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첫째는 거칠고 덩어리진 음식이요, 둘째는 섬세한 감촉이라는 음식이며, 셋째는 의지와 의도라는 음식이요, 넷째는 식이라는 음식이니라.

 

비구는 덩어리진 음식을 어떻게 관찰하는가? 비유하면 어떤 부부에게 사랑하고 늘 생각하며 보살펴 기른 외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넓은 광야 험난한 곳을 지나려고 하다가, 양식이 떨어져 굶주림의 고통이 극에 달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이젠 너무도 사랑하고 생각하는 외아들만 남았다. 만일 그 아들의 살을 먹는다면 이 험난한 곳을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세 사람 모두 죽게 할 수는 없다'고 의논하였다. 이렇게 계획한 뒤에 곧 그 아들을 죽여 슬픔을 머금고 눈물을 흘리면서 억지로 그 살을 먹고 광야(曠野)를 벗어나게 된 경우와 같다. 어떠냐? 비구들아, 그 부부는 아들의 살을 함께 먹으면서, 과연 그 맛을 취하고 그 맛의 좋음과 즐거움을 탐하며 맛보겠느냐?"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또 물었다.

"비구들아, 그들이 억지로 그 살을 먹은 것은 광야의 험난한 길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닌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덩어리진 음식을 먹을 때에도 마땅히 그와 같이 관찰하라. 그와 같이 관찰하면 덩어리진 음식을 끊을 줄 알 것이요, 덩어리진 음식을 끊을 줄 알고 나면 5욕의 공덕에 대한 탐애(貪愛)가 곧 끊어질 것이다. 5욕의 공덕에 대한 탐애가 끊어졌다면, 나는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에게서 5욕의 공덕 중 끊지 못한 번뇌[結使]가 한 가지라도 남아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한 가지 결박만 있어도 곧 이 세상으로 되돌아와 태어나게 되느니라.


비구는 감촉이라는 음식을 어떻게 관찰하는가? 비유하면 소를 산 채로 그 가죽을 벗겨 놓으면 어디고 가는 곳마다 온갖 벌레가 파먹고, 모래와 흙의 더러운 먼지가 묻으며, 풀이나 나무의 가시에 찔리게 된다. 만일 땅을 의지하면 땅에 사는 벌레들에게 먹히게 되고, 만일 물을 의지하면 물에 사는 벌레들에게 먹히게 되며, 만일 공중을 의지하면 날벌레들에게 먹히게 되어, 눕거나 일어나거나 간에 언제나 그 몸에 고통이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저 감촉이라는 음식에 대해 마땅히 그와 같이 관찰하라.

그와 같이 관찰하면 감촉이라는 음식을 끊을 줄 알 것이요, 감촉이라는 음식을 끊을 줄 알면 3()가 곧 끊어질 것이다. 3수가 끊어졌다면, 그런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그 이상 또 할 일이 없을 것이니, 할 일을 이미 마쳤기 때문이니라.

 

비구는 의지와 의도라는 음식을 어떻게 관찰하는가? 비유하면 마을이나 도회지 변두리에서 불이 났는데 연기도 없고 불꽃도 없다. 이 때 총명하고 영리한 사람은 괴로움을 등지고 즐거움을 향하며,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좋아하며, 이와 같이 생각하리라.

'저기 큰불이 있지만 연기도 없고 불꽃도 없다. 오갈 때에 마땅히 피하여 그 속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자. 의심할 것도 없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곳을 버리고 멀리 떠나기를 의도하고 바라는 것과 같나니, 의지와 의도라는 음식을 관찰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와 같이 관찰하면 의지와 의도라는 음식이 곧 끊어질 것이요, 의지와 의도라는 음식이 끊어지면 3()가 곧 끊어질 것이다. 3애가 끊어졌다면, 그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그 이상 또 할 일이 없을 것이니, 할 일을 이미 마쳤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아, 식이라는 음식을 어떻게 관찰하는가? 비유하면, 국왕의 순라(巡邏)꾼이 도적을 잡아 묶어서는 왕에게 데리고 가서 ……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의 수심경(須深經)에서 자세히 말씀하신 것과 같다.) …… 그 인연으로 창에 3백 번 찔리는 고통을 받으며 밤낮으로 고통을 겪는 것과 같나니, 식이라는 음식을 관찰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와 같이 관찰하면 식이라는 음식을 끊을 줄 알 것이요, 식이라는 음식을 끊을 줄 알면 명색(名色)을 끊을 줄 알 것이다. 명색이 끊어진 줄 알았다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그 이상 또 할 일이 없을 것이니, 할 일을 이미 마쳤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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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해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 때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비구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가 다하게 될까?'

그 때 세존께서는 그 비구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가 다하게 될까' 하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미 그것에 대해 설법하였느니라. 곧 모든 음()을 잘 관찰하여야 하나니, 그것은 이른바 4념처(念處)·4정근(精勤)·4여의족(如意足)·5()·5()·7각분(覺分)·8정도(正道)이니라. 나는 모든 음을 관찰하는 이러한 법을 이미 설명하였느니라.

그런데도 지금, 부지런히 하고자 하지 않고 부지런히 즐거워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기억하지 않고 부지런히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게을러 더욱 나가지 못해 모든 번뇌[]를 다하지 못하는 선남자가 아직도 있다. 만일 선남자가 내가 설명한 법에서 모든 음을 잘 관찰하여 부지런히 하고자 하고, 부지런히 즐거워하며, 부지런히 기억하고, 부지런히 믿는다면 그는 능히 모든 번뇌를 재빨리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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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롭다는 느낌·즐겁다는 느낌·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을 낸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들도 또한 괴롭다는 느낌·즐겁다는 느낌·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을 낸다.

모든 비구들아, 범부와 성인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건대 자세히 설명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 법을 들은 뒤에 틀림없이 받아들여 받들어 행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몸의 접촉으로 여러 느낌이 생겨 고통이 들이닥치고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면, 우수에 잠겨 눈물을 흘리고 원망하며 울부짖느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해주리라. 모든 비구들아,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몸의 접촉으로 여러 가지 느낌이 생겨 온갖 고통이 증가하고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면, 우수에 잠겨 원망하고 울부짖으며 마음이 미친 듯 혼란스러워진다. 그 때 두 가지 느낌을 더하고 자라나게 하나니, 몸의 느낌이거나 혹은 마음의 느낌이니라.

비유하면 사부(士夫)가 몸에 두 개의 독화살을 맞고 아주 고통스러워하는 것과 같으니라.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 이 두 가지 느낌을 더하고 자라게 하여 아주 고통스러워한다. 왜냐하면 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5욕에 대하여 즐겁다는 느낌과의 접촉을 일으키고 5욕의 즐거움을 누리며, 5욕의 즐거움을 누리기 때문에 탐욕이라는 번뇌의 부림을 당한다. 괴롭다는 느낌과 접촉하기 때문에 곧 성내게 되고, 성내기 때문에 성냄이라는 번뇌의 부림을 당한다. 이 두 가지 느낌에 대하여 그것의 발생·그것의 소멸·그것에 맛들임·그것의 재앙·그것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겨 어리석음이란 번뇌의 부림을 당한다. 그리하여 즐겁다는 느낌에 얽매여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괴롭다는 느낌에 얽매여 끝내 벗어나지 못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에 묶여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에 묶이는가? 이른바 탐욕·성냄·어리석음에 묶이게 되고,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 묶이게 되느니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몸의 접촉으로 괴로운 느낌이 생겨 큰 고통이 들이닥치고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더라도 근심과 슬픔으로 원망하거나 울부짖거나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발광하지 않는다. 그런 때를 당해서는 오직 한 가지 느낌만 일으키나니, 이른바 몸의 느낌[身受]만 일으키고 마음의 느낌[心受]은 일으키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사부가 하나의 독화살만 맞고 두 번째 독화살은 맞지 않는 것처럼, 그런 때를 당해 오직 한 가지 느낌만 일으키나니, 이른바 몸의 느낌만 일으키고 마음의 느낌은 일으키지 않느니라. 즐겁다는 느낌과 접촉하더라도 탐욕의 즐거움에 물들지 않고, 탐욕의 즐거움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그 즐겁다는 느낌에 대해서 탐욕의 번뇌에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 괴로움과 접촉한 느낌에 대하여도 성내지 않고, 성내지 않기 때문에 성냄이라는 번뇌에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 그 두 가지 번뇌의 발생·소멸·맛들임·재앙·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고,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서 어리석음이란 번뇌에 부림을 당하지 않느니라. 그리하여 즐겁다는 느낌에서 해탈하여 묶이지 않고, 괴롭다는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에서 해탈하여 묶이지 않는다. 무엇에 묶이지 않는가? 이른바 탐욕·성냄·어리석음에 묶이지 않고,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 묶이지 않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많이 들어 아는 이라 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고 지각하지 못하는 것 아니네.

  그들은 차라리 저 범부들보다

  사실은 더 많이 지각하느니라.


  즐겁다는 느낌에 방일(放逸)하지 않고

  괴로움과 접촉해도 근심 더하지 않으며

  괴로움과 즐거움 둘을 함께 버려

  따르지도 않고 어기지도 않느니라.


  비구는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바른 지혜로 휩쓸리지 않고

  이런 모든 느낌에 대해서

  총명한 지혜로 분명히 알 수 있네.

 

  모든 느낌을 분명히 알기에 

  현세(現世)에 있어선 모든 번뇌 다하고

  죽은 뒤에도 수()에 떨어지지 않아

  영원히 반열반(般涅槃)에 머무르게 된다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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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라내국(波羅國)의 선인(仙人)이 살던 녹야원(鹿野苑)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대목건련과 존자 륵차나(勒叉那) 비구가 이른 아침에 걸식하기 위해 바라내성으로 함께 들어갔다. 길을 가는 도중에 존자 대목건련이 옛 일을 생각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 때 존자 륵차나가 존자 대목건련에게 물었다.

"세존이나 세존의 제자가 빙그레 미소지을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습니다. 존자께서는 오늘 무슨 까닭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습니까?"

  존자 대목건련이 존자 륵차나에게 말하였다.

"지금은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아닙니다. 우선 걸식을 한 뒤에 돌아가 세존 앞에 나아가 그 일을 물어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여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발을 씻고 옷과 발우를 챙긴 뒤에 세존의 처소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앉았다.

그 때 존자 륵차나가 존자 대목건련에게 물었다.

"오늘 이른 아침에 길에서 무슨 까닭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으셨습니까?"

  존자 대목건련이 존자 륵차나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길에서 온몸이 곪아 터져 더럽고 냄새나는 커다란 몸집을 가진 어떤 중생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까마귀[소리개[수리[독수리[늑대[野干굶주린 개[餓狗] 따위가 그를 뒤쫓아 잡아먹자 그는 울부짖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나는 '저 중생이 저런 몸을 받아 저렇게 고통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괴롭겠는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그 중생을 보았으나 말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래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고통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생은 과거 세상에 이 바라내성에서 몸을 팔아 생활했던 여인이다. 그 때 가섭 부처님에게 출가한 어떤 비구가 있었는데, 그 여인은 더러운 마음으로 그 비구를 청하였다. 그 비구는 정직한 마음으로 그 청을 받아드렸다. 그 비구가 여자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자 그 여자는 성을 내며 더러운 물을 비구의 몸에 덮어 씌웠다. 그 죄로 말미암아 이미 지옥에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고, 지옥에서의 죄가 남아서 지금 그런 몸을 받아 계속해서 그 고통을 받는 것이다. 비구들아, 대목건련이 본 것은 진실하여 틀림이 없나니, 그렇게 받아 지녀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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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내국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법이 있다. 그것을 성취하면 큰 의왕(醫王)이라 부르나니, 왕의 필요와 왕의 분별에 호응하는 것이니라.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병을 잘 아는 것이요, 둘째는 병의 근원을 잘 아는 것이요, 셋째는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잘 아는 것이요, 넷째는 병이 치료된 뒤에 다시 도지지 않게 하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니라.


  좋은 의사는 병을 잘 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좋은 의사는 이런저런 갖가지 병을 잘 아는 것이니, 이것이 좋은 의사는 병을 잘 안다고 하는 것이다.


  좋은 의사는 병의 근원을 잘 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좋은 의사는 '이 병은 바람은 인연하여 생겼다, 벽음(癖陰)에서 생겼다, 침에서 생겼다, 냉에서 생겼다, 현재 일로 인해 생겼다, 절후에서 생겼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을 좋은 의사는 병의 근원을 잘 안다고 하는 것이다.


  좋은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잘 안다고 한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좋은 의사는 갖가지 병이 약을 발라야 할 것인지, 토하게 해야 할 것인지, 배설시켜야 할 것인지, 코 안을 씻어내야 할 것인지, 훈기를 쬐게 해야 할 것인지, 땀을 내야 할 것인지를 잘 알고, 그에 따라 갖가지 처방으로 다스리나니, 이것이 좋은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잘 안다고 하는 것이다.


  좋은 의사는 병을 치료한 뒤에 미래에 다시 도지지 않게 한다고 한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좋은 의사는 갖가지 병을 잘 다스리고 완전히 없애 미래에 영원히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좋은 의사는 병을 다스려 다시 도지지 않게 한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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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사리불·존자 대목건련·존자 아난은 왕사성 가란다죽원에서 한 방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존자 사리불이 후야(後夜)에 존자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기이합니다. 존자 목건련이여, 당신은 오늘밤 적멸정수(寂滅正受 : 寂滅三昧)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존자 목건련이 존자 사리불의 말을 듣고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의 숨소리조차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존자 목건련이 말하였다. 

 "이것은 적멸정수가 아니라 거친 정수(正受)에 머문 것일 뿐입니다. 존자 사리불이여, 나는 오늘밤에 세존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존자 사리불이 말하였다. 

 "목건련이여, 세존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는데 여기서는 아주 먼 거리입니다.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은 지금 죽원정사에 있거늘 어떻게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신통력으로 세존 계신 곳까지 갔습니까? 아니면 세존께서 신통력으로 당신이 있는 곳으로 오셨습니까? "

 존자 목건련이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제가 신통력으로 세존이 계신 곳까지 가지도 않았고, 세존께서 신통력으로 내가 있는 곳으로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존과 나는 다 천안(天眼)과 천이(天耳)를 증득했기 때문에 나는 사위국과 왕사성의 중간에서 들었습니다."

 나는 세존께 여쭈었습니다. 

"어떤 것을 은근한 정진이라고 합니까?"

 세존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건련아, 만일 비구가 낮에 거닐거나 혹은 앉아서 장애되지 않는 법으로써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초야(初夜)에도 앉거나 거닐면서 장애되지 않는 법으로써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중야(中夜)에는 방 밖에 나가 발을 씻고 도로 방에 들어와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붙이고 누워 두 발을 포개고, 밝은 모양[明相]에 생각을 매어 두고, 바른 기억과 바른 앎으로 사유를 일으키다가, 후야(後夜)가 되면 천천히 깨고 천천히 일어나 혹은 앉고 혹은 거닐면서 장애되지 않는 법으로써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나니, 목건련아, 이것을 비구의 은근한 정진이라 하느니라."

 존자 사리불이 존자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당신 대목건련께서는 참으로 큰 신통력과 큰 공덕력(功德力)을 쓰며 편안히 앉고 또 앉았습니다. 나도 또한 큰 힘으로써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목건련이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작은 돌 하나를 가져다 큰산에 던지면 큰산과 그 빛깔과 맛이 같아지는 것처럼, 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존자의 큰 힘과 큰 덕과 함께 한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비유하면 세간의 곱고 깨끗한 좋은 물건은 사람들이 다 떠받드는 것처럼, 그와 같이 존자 목건련의 큰 덕과 큰 힘은 모든 범행자들이 다 마땅히 떠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존자 목건련을 만나 교류하면서 가고 오며 공경하고 공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좋은 이익을 크게 얻을 것입니다. 이제 나도 또한 존자 대목건련과 서로 교류하며 오갈 수 있어서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 때 존자 대목건련은 존자 사리불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큰 지혜와 큰 덕이 있는 존자 사리불과 함께 한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마치 작은 돌을 가져다 큰 산에 던지면 그 빛깔이 같아지는 것처럼, 나도 또한 그와 같이 큰 지혜가 있는 존자 사리불과 한자리에 앉아 두 번째 도반이 되었습니다."
 그 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 논의를 마치고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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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국(拘留國)의 얼룩소 치는 마을[雜色牧牛聚落]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알고 봄으로써 모든 번뇌가 다하게 되었다. 알고 보지 못한 것이 없다. 어떤 것을 알고 봄으로써 모든 번뇌가 다하게 되었고, 알고 보지 못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인가? 말하자면 이것은 색이요, 이것은 색의 발생이며, 이것은 색의 소멸이다. 수·상·행도 마찬가지이며, 이것은 식이요, 이것은 식의 발생이며, 이것은 식의 소멸이라고 알고 보았다. 만일 방편을 닦고 그것을 따라 성취하지 못하고서 나의 모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하였으면 하고 마음으로 바란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런 비구는 끝내 번뇌가 다한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닦고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을 닦고 익히지 않았다고 하는가? 말하자면 염처(念處)·정근(正勤)·여의족(如意足)·근(根)·력(力)·각(覺)·도(道)를 닦고 익히지 않았다는 말이다.

 

비유하면 암탉이 많은 알을 낳고도 때맞춰 품어주지도 않고 온기(溫氣)와 냉기(冷氣)를 잘 맞춰주지도 못하고서, 병아리로 하여금 주둥이와 발톱으로 알을 쪼아 스스로 껍질을 깨고 아무 탈 없이 나오게 하려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병아리에게는 주둥이와 발톱으로 껍질을 깨고 아무 탈 없이 나올 힘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그 어미 닭이 때맞춰 품어주고 온기와 냉기를 조절하며 그 새끼를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비구도 부지런히 닦고 익히고 그것을 따라 성취하지 못하고서 번뇌가 다한 해탈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리 될 수 없느니라. 왜냐 하면 닦고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닦지 않았다고 하는가? 염처·정근·여의족·근·력·각·도를 닦지 않은 것을 이르는 것이니라.

만일 비구가 닦고 익히고 그것을 따라 성취하면 설사 번뇌가 다해 해탈하게 하지 않으려 하더라도 그 비구는 저절로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다. 왜냐하면 부지런히 닦고 익혔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닦고 익혔다고 하는가? 염처·정근·여의족·근·력·각·도를 닦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마치 저 암탉이 그 새끼를 잘 길러 때맞추어 품어주고 온기와 냉기를 알맞게 조절해주면, 그 새끼들로 하여금 방편을 써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게 하지 않으려 해도 그 여러 새끼들은 스스로 방편을 써서 껍질을 깨고 아무 탈 없이 나오는 경우와 같다. 왜냐하면 그 암탉이 때맞추어 품어주고 냉기와 온기를 알맞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비구도 방편을 잘 닦으면, 번뇌가 다해 해탈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 비구는 저절로 번뇌가 다해 마음이 해탈할 것이다. 왜냐 하면 부지런히 닦고 익혔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닦고 익혔다고 하는가? 염처·정근·여의족·근·력·각·도를 닦고 익힌 것을 이르는 말이다.

 

비유하면 장인(匠人)이나 장인의 제자가 손으로 도끼자루를 잡을 때, 잡기를 쉬지 않으면 조금씩 점점 닳아 손가락 자국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도끼자루가 조금씩 닳아 손가락 자국이 나타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이와 같이 비구가 열심히 노력하여 닦고 익히고 그것을 따라 성취하면 오늘은 얼마쯤 번뇌가 다하고 내일은 얼마쯤 번뇌가 다한다고 스스로 알고 보지는 못하지만, 마침내 그 비구는 번뇌가 다한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잘 닦고 익혔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닦고 익힌다고 하는가? 염처·정근·여의족·근·력·각·도를 닦고 익히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비유하면 큰 배가 바닷가에 묶여 있을 때 여름 6개월을 지내고 나면 사나운 바람과 땡볕에 등나무 밧줄이 점점 끊어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가 열심히 노력하여 닦고 익히며 그것을 따라 성취하면 일체의 결박과 사(使)와 번뇌의 묶음에서 점점 해탈하게 된다. 왜냐 하면 잘 닦고 익혔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닦고 익힌다고 하는가? 염처·정근·여의족·근·력·각·도를 닦고 익히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라."

 

이 법을 말씀하셨을 때, 60명의 비구들은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경 제 10권 263 응설경(應說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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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층 강당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 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 년에 한 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 먼 거북이 백 년에 한 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이 눈 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4유(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 먼 거북과 뜬 나무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5취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 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 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06. 맹구경(盲龜經))

 


2014.04.28 00:18

[잡아함경] 칠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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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칠년경(七年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으로 들어가 걸식하고 계셨다. 그 때 천마(天魔) 파순(波旬)'사문 구담(瞿曇)이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으로 들어가 걸식하고 있다. 내가 이제 그에게 가서 그의 도를 닦으려는 뜻을 어지럽히리라' 하고 생각하였다.


이 때 마왕(魔王) 파순이 수레를 모는 사람의 형상으로 변신하여 지팡이를 들고 소를 찾았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에 손과 다리가 찢겨진 모습으로 손에 소 채찍을 들고 세존의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구담이여, 내 소를 보았는가?"


세존께서 '이 자는 악마(惡魔)이다. 나를 어지럽히려고 왔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곧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악마여, 어디에 소가 있느냐? 소를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


악마는 '사문 구담이 내가 악마인 줄 알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여, 안촉입처(眼觸入處)가 곧 내가 타고 다니는 것이요, ((((()의 촉입처가 곧 내가 타고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구담이여,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부처님께서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안촉입처와 이····의의 촉입처가 있다. 그 안촉입처가 없고 이····의의 촉입처가 없는 곳은 네가 미치지 못하는 곳인데 나는 그곳에 도달하였다."


그 때 천마 파순이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일 항상 나[]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 내 것[我所]이라네.

일체가 다 내게 속한 것인데

구담이여, 어디로 가려 하는가?


그러자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 말하는 나는 곧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파순아,

스스로 지는 곳에 떨어졌느니라.


악마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일 말하기를 '도를 알아

안온하게 열반으로 향한다'고 한다면

너 혼자서 유행(遊行)하여 가거라.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남을 가르치는가?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만일 악마를 떠나려는 자가

저 언덕으로 건너는 길을 물으면

진실하여 영원히 남음 없다고

그를 위해 평등하게 설명하리라.

언제나 방일하지 않기를 익히면

영원히 악마의 자재에서 벗어나리라.


악마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고깃덩이 같은 돌이 있어

굶주린 까마귀가 먹으러 찾아왔네.

부드럽고 맛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굶주린 빈창자를 채우려 했네.

그러나 결국 그 맛 얻지 못하고

주둥이만 부러져 하늘로 올라가네.

나는 이제 마치 그 까마귀 같고

구담은 바로 돌과 같은 분이로다.

들어오지 못하고 부끄러워 떠났으니

마치 까마귀가 허공으로 달아나듯

마음 속에 근심과 앙심을 품고

그는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네.


2014.04.17 13:14

[잡아함경] 저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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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저사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저사여, 내 이제 비유로 설명하리라. 매우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써 이해를 얻게 되느니라. 두 사내가 함께 한 길을 가는데, 한 사람은 길을 잘 알고 한 사람은 길을 알지 못한다. 그 길을 모르는 사람이 길을 아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어느 성 어느 촌 어느 마을로 가려고 하는데 나에게 그 길을 가르쳐 주시오.'

이 때 길을 아는 사람이 곧 그에게 길을 가르쳐 주며 말하였다.

'사부여, 이 길을 따라가다가 앞에 갈림길이 나타나거든 왼쪽 길을 버리고 오른쪽 길로 따라가시오. 다시 깊은 계곡에 도랑이 나오거든 또 왼쪽 길을 버리고 오른쪽 길을 따라가시오. 다시 우거진 숲이 나오거든 또 왼쪽 길을 버리고 오른쪽 길을 따라가시오. 당신이 그렇게 점점 앞으로 가다보면 그 성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저사에게 말씀하셨다.

"그 비유는 이와 같다.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범부에 비유한 것이요, 길을 아는 사람은 여래·응공·등정각에 비유한 것이며, 앞의 갈림길이란 중생들의 의심을 말한 것이다. 왼쪽 길이란 세 가지 착하지 않은 법이니, 탐욕·성냄·해치려는 지각이요, 그 오른쪽 길이란 세 가지 착한 지각을 말한 것이니, 벗어나고 탐욕을 여읜 지각·성내지 않는 지각·해치지 않는 지각이다. 왼쪽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삿된 소견·삿된 뜻·삿된 말·삿된 업·삿된 생활·삿된 방편·삿된 기억·삿된 선정을 말한 것이요, 오른쪽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바른 소견·바른 뜻·바른 말·바른 업·바른 생활·바른 방편·바른 기억·바른 선정을 말한 것이다. 깊은 계곡의 도랑이란 성냄·장애·근심·슬픔을 말한 것이요, 우거진 숲이란 5욕공덕을 말한 것이며, 성이란 반열반을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저사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는 큰 스승으로서 모든 성문들을 위해 해야할 일을 이미 마쳤다. 지금처럼 가엾이 여기고 사랑하는 생각을 내어 이치로써 안락하게 하는 일을 이미 모두 다 마쳤다. 너희들도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하라. 마땅히 나무 밑이나 혹은 텅 비고 드러난 곳이나 산의 바위굴 속에서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들고, 잘 사유하고 바른 기억으로 방일하지 않으며, 수행하여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마음에 후회가 없게 하라. 나는 이제 너에게 훈계하였다."

그 때 저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잡아함경, 제 10권, 271 저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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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어떤 비구가 배우는 위치에 있어서 아직 증상(增上)한 즐거움의 열반을 얻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익히고 향하는 마음에 머무른다면, 그 때 그는 배우는 자의 계(學戒)를 성취하고 배우는 자의 근(學根)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뒷날에는 반드시 번뇌가 다 없어져 마음이 해탈하며, ... 나아가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 것입니다. 그 때를 당하여 배울 것이 없는 자의 계(無學戒)를 얻고, 배울 것이 없는 자의 근(無學根)을 모두 얻을 것입니다.

 비유하면 어리석고 작은 어린아이가 반듯이 누워지낼 때에는 어린아이의 모든 감각기관(根)을 성취하였고, 그가 뒷날에 점점 자라 모든 감각기관이 성취되면 그 때에는 어른의 모든 감각기관을 성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배우는 지위에 있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아직 왕성한 안락은 얻지 못하였지만, ... 나아가 배울 것이 없는 자의 계와 배울 것이 없는 자의 모든 감관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혹 눈으로 항상 빛깔을 분별하더라도 끝내 마음이 해탈하는 것과 지혜로 해탈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굳게 머물기 때문이니, 안으로 한량이 없는 좋은 해탈을 닦고, 생기고 사라짐에서부터 나아가 무상함까지 다 관찰합니다. 귀로 소리를 분별하고, 코로 냄새를 분별하며, 혀로 맛을 분별하고, 몸으로 감촉을 분별하며, 뜻으로 법을 분별하더라도 마음이 해탈하는 것과 지혜로 해탈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굳게 머물기 때문이니, 안으로 한량없는 좋은 해탈을 닦고, 생기고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비유하면 마을 가까이에 큰 돌산이 있는데, 끊기지도 않았고 부서지지도 않았으며 뚫리지도 않아 한결같이 두텁고 조밀하다면 설사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움직일 수 없고, 뚫고 지나갈 수 없는 경우와 같습니다. 저 배울 것이 없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눈으로 항상 빛깔을 분별하고, ... 뜻으로 항상 법을 분별하더라도 마음이 해탈하는 것과 지혜로 해탈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굳게 머물기 때문이니, 안으로 한량없는 좋은 해탈을 닦고 생기고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탐욕을 여의어 마음이 해탈하고

성냄이 없는 해탈도 또한 그러하네.

멀리 떠나 마음이 해탈하고

탐욕과 사랑도 영원히 남음 없네.

모든 집착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또 마음에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입처의 생기는 곳 환히 알아

그것에 대해 마음이 해탈하였네.

 

저 마음이 해탈한 사람

그 비구는 뜻이 쉬고 그치며

해야 할 모든 일 이미 마쳐

다시는 할 일을 만들지 않네.

 

마치 저 큰 돌산은

사방에서 부는 바람이 움직이지 못하듯이

빛깔, 소리, 냄새, 맛, 감촉과

또 법의 좋고 나쁨을

 

여섯 감관이 항상 대하더라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나니

마음은 언제나 굳게 머물러

법의 생기고 사라짐을 환히 관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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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시작이 없는 생사(生死)에서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결박에 묶여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本際)를 알지 못하는구나.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땅에 난 온갖 곡식과 초목들이 모두 다 말라 시드는 때가 오더라도 모든 비구들아, 만일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결박에 묶였다면, 그 중생들은 생사(生死)에 윤회(輪廻)할 것이고 애욕의 결박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큰 바닷물이 다 마르는 때가 오더라도 모든 비구들아,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결박에 묶였다면, 애욕의 결박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오랜 세월이 흘러 수미산왕(須彌山王)이 다 무너지는 때가 오더라도,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결박에 묶였다면, 그 중생들은 오랜 세월 동안 생사에 윤회할 것이고 애욕의 결박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오랜 세월이 흘러 이 대지(大地)가 다 무너지는 때가 오더라도,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결박에 묶였다면, 그 중생들은 오랜 세월 동안 생사에 윤회할 것이고 애욕의 결박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비구들아, 비유하면 개를 기둥에 묶어 둔 것과 같다. 그 개는 묶인 끈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오랜 세월 동안 기둥 주위를 돌며 빙빙 돌기를 쉬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어리석은 중생들은 색과 색의 발생·색의 소멸·색에 맛들임·색의 재앙·색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해서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색을 따라 돌고 돈다. 이와 같이 수·상·행도 마찬가지며, 식과 식의 발생·식의 소멸·식에 맛들임·식의 재앙·식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해서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식을 따라 돈다.

모든 비구들아, 색(色)을 따라 돌고, 수(受)를 따라 돌며, 상(想)을 따라 돌고, 행(行)을 따라 돌며, 식(識)을 따라 도나니, 색을 따라 돌기 때문에 색을 벗어나지 못하고, 수·상·행도 그러하며 식을 따라 돌기 때문에 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들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과 색의 발생·색의 소멸·색에 맛들임·색의 재앙·색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안다. 수·상·행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식과 식의 발생·식의 소멸·식에 맛들임·식의 재앙·식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식을 따라 돌지 않는다. 그것들을 따라 돌지 않기 때문에 색에서 벗어나고, 수·상·행·식에서 벗어나나니, '그들은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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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울사가라는 바라문 청년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속인(俗人)이 집에서 지내며 몇 가지 법을 행하면 현세의 편안함과 현세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 네 가지 법이 있다면, 그 속인은 집에서 지내며 현세의 편안함과 현세의 즐거움을 얻는다. 어떤 것이 네가지인가? 이른바 방편을 완전히 갖추고, 살림을 잘 보호하며, 착한 벗과 사귀고, 바른 생활을 경영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방편을 완전히 갖추는 것인가?

 이른바 선남자(善男子)가 여러가지 직업으로서 스스로 생활을 경영하는 것이니, 곧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거나 임금을 섬기거나 혹은 글씨·글·셈·그림으로써,  이런 저런 직업에서 꾸준히 힘쓰고 수행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살림을 잘 보호하는 것인가?

이른바 선남자가 방편으로 얻거나 내 손으로 일하고 법답게 얻어 소유하게 된 돈과 곡식을 잘 지켜 보호하여, 임금이나 도적에게 빼앗기거나 물에 떠내려보내거나 불에 태우는 일이 없게 하고, 잘 지키지 못해 잃어버리거나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빼앗기거나 여러가지 재앙으로 없어지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선남자가 살림을 잘 보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착한 벗과 사귀는 것인가?

만일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방탕하지 않으며. 허망하지 않고 음흉하지 않은 선남자가 있다면, 그런 착한 벗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곧 아직 생기지 않은 근심과 괴로움은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근심과 괴로움은 깨닫게 하며, 이미 생긴 기쁨과 즐거움은 잘 단속해 잃어버리지 않게 하나니, 이것을 선남자가 착한 벗과 사귀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느 것이 바른 생활을 경영하는 것인가?

이른바 선남자는 그가 가진 돈과 재물에서 지출과 수입을 맞춰 보며 빈틈없이 관리하여 수입이 많고 지출이 적거나 지출이 많고 수입이 적게 하지 않아야 한다. 마치 저울을 잡은 사람이 적으면 보태고 많으면 덜어 평형을 이뤄야 그만 두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선남자도 재물을 헤아려 수입과 지출을 알맞게 하여 수입이 많고 지출이 적거나, 지출이 많고 수입이 적게 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선남자가 재물이 없는데도 마구 뿌려 쓰면서 생활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우담발 열매라고 부를 것이다. 그는 어리석고 탐욕이 많아 그 뒷날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선남자가 재물이 풍부한데도 그것을 쓰지 않는다면 주위 사람들은 '이 어리석은 사람은 굶어 죽는 개와 같구나'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남자는 가진 재물을 잘 헤아려 수입과 지출을 알맞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바른 생활을 경영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바라문아, 이 네가지 법을 성취한다면 현세에서 편안하고 현세에서 즐거우리라."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집에서 지내는 사람은 몇가지 법이 있어야 후세에 편안하고 후세에 즐거울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집에서 지내는 사람은 네 가지 법이 있어야 후세에 편안하고 후세에 즐거울 수가 있다. 어떤 것이 네가지인가? 이른바 믿음을 완전히 갖추고, 계를 완전히 갖추며, 보시를 완전히 갖추고, 지혜를 완전히 갖추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믿음을 갖추는 것인가?

이른바 선남자는 여래에게서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얻어 믿음의 근본을 세운다. 그것은 모든 하늘이나 악마 ·범 및 그 밖의 세상 사람들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니, 이것을 선남자가 믿음을 완전히 갖추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것이 계를 완전히 갖추는 것인가?

이른바 선남자는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술 마시지 않나니, 이것을 계를 완전히 갖추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시를 완전히 갖추는 것인가?

이른바 선남자는 아까워하는 더러운 마음을 떠나 집에서 지내며 해탈의 보시를 행하되 항상 자기 손으로 주며, 버리는 공부를 즐거워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나니, 이것을 선남자가 보시를 완전히 갖추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지혜를 완전히 갖추는 것인가?

이른바 선남자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集)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道聖諦)를 사실 그대로 아나니, 이것을 선남자가 제혜를 완전히 갖추는 것이라 하느니라.

만일 선남자가 집에서 지내며 이 네 가지 법을 행한하면 후세에 편안하고, 후세에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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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거나 혹은 희고

 붉거나 혹은 다른 색

 얼룩무늬 혹은 황금빛

 샛노랗거나 혹은 잿빛.

 

 

 이와 같은 색색의 암소와

 잘생긴 황소와 송아지들

 몸도 튼튼하고 힘도 갖추며

 잘 길들여지고 빨리 달리며

 무거운 짐 옮기는 일 감당할 수만 있다면

 타고난 빛깔은 묻지도 않네.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제각기 그 태생에 따라

 혹은 찰리 혹은 바라문

 혹은 비사 혹은 수다라

 혹은 하천한 전다라로

 그 출신이 각기 다르네.

 

 

 그러나 다만 깨끗한 계 지키고

 무거운 짐인 번뇌를 떠나

 순일하게 범행을 닦기만 한다면

 그는 번뇌 다한 아라한이요

 바로 이 세간의 선서(善逝)이니

 그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 얻으리.

 

 

 어리석은 사람으로 지혜가 없고

 일찍이 바른 법을 들은 적 없는

 그런 자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 없나니

 착한 벗을 가까이하지 않기 때문이라.

 


 만일 착한 벗을 가까이 하고

 여래와 성문을 가까이 하며

 맑고 깨끗하게 선서를 믿으면

 온몸에 든든한 힘이 생기리.

 


 가고자 하는 길로 잘 나아가고

 또한 훌륭한 종족으로 태어나며

 결국엔 반열반에 들어간다고

 큰 선인은 이렇게 말하노라.

 

 

      -생문경(生聞經) 중에서


2014.03.03 04:12

[아함경] 경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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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국 인간 세상을 유행하시다가 일나라 마을에 이르러 일나라 숲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일나라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시다가 '오늘은 너무 이르다. 우선 농사를 짓는 바라두바자 바라문이 음식 만드는 곳을 거쳐가 보자'고 생각하셨다.

그때 농사를 짓는 바라두바자 바라문은 500벌의 쟁기로 밭을 갈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이때 농사를 짓는 바라두바자 바라문이 멀리서 세존을 보고 말하였다.

"구담(붓다)이여, 나는 지금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 그것으로 먹고 살아갑니다. 사문 구담께서도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 그것을 드시고 살아가셔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또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 그것을 먹고 살아갑니다."

"나는 사문 구담의 쟁기도 멍에도 고삐도 끈도 보습도 채찍도 전혀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문 구담께서는 '나도 또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 그것으로 먹고 살아간다'고 말씀하시는군요."

(...)

세존께서도 게송으로 답하셨다.

 

믿음은 씨앗

고행은 때맞춰 내리는 단비

지혜는 쟁기를 끄는 멍에

부끄러워하는 마음 끌채가 되네.

 

바른 생각으로 스스로 보호하면

이것이 곧 훌륭한 몰이꾼

몸과 입의 업을 잘 단속하고

알맞은 양만큼 먹을 줄 아네.

 

진실을 진정한 수레로 삼고

즐거이 머무르되 게으르지 않으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거칠음 없애고

안온하면서도 빨리 나아가며

되돌아오는 일 없이 곧장 나아가

근심이 없는 곳에 이르게 되네.

 

이러한 농부

감로 열매 얻고

이러한 농부

어떠한 존재도 다시 받지 않네.


2014.02.20 01:45

색은 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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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正觀]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 <잡아함경_무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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