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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자기 구원에 이르는 길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225px-Dostoevsky_1872.jpg

바실리 페로프 作  <도스토예프스키>

C:\Program Files\Naver

'제2의 고골’이라는 평가 속에 도스토예프스키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가난한 사람들』부터 5대 장편의 시작인 『죄와 벌』을 거쳐 죽기 얼마 전에 끝마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까지, 도스토예프스키 세계의 정경은 하나같이 뒤틀리고 일그러져 있다. 시큼한 악취와 고통 받는 지상인들로 가득한 도시 뻬쩨르부르그는 하나의 연옥이다. 사소한 문제로 몸을 떨고 울부짖는 이 세계의 인물들은 독자를 고통에 빠뜨리기 충분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파렴치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파괴하는 자, 즉 타인을 조롱하면서 동시에 자신에 대해 최고의 수치심을 느끼는 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보아 넘길 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섬세한 구분이 필요하다. 낯설고 불가해한 가운데 묘하게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주는 존재들이 거기 섞여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는 짓을 벌이고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것이 불러온 충격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모두가 말리는 가운데 계속 파고들어가 끝내 제 비밀을 알게 된 뒤 스스로 두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처럼, 덴마크가 썩을 대로 썩은 감옥이라는 사실을 안 뒤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할 때까지 그곳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햄릿처럼, 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나의 결단 이후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어떤 것일지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만든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역시 그렇다.


무엇을 할 것인가?

 

"찌는 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죄와 벌』, 홍대화 역, 열린책들)

 

작품 첫 문장이다. 몇 개월 째 관처럼 비좁은 방에서 칩거 중이던 청년 라스콜리니코프는 이제 막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온 참이다. 그의 심중에는 한 가지 생각이 뱀처럼 똬리 튼 채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동네 전당포 주인인 노파를 죽이겠다는 것. 이는 이제 막 든 생각이 아니라 벌써 한참 전부터 서서히 몸피를 키운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해내리라 믿었다. 해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그걸 감당할 자신도 있었다.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해냈다’. 전당포에 찾아가 도끼로 노파의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우연히 방문한 그녀의 배다른 여동생까지 죽여야 했던 것 말고는 모든 게 계획한 대로 완벽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범행 이래 그는 열병을 앓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며, 낮에는 사람들 앞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허나 이는 자신이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이나 자기혐오 따위와는 무관하다. 살인에 대해서는 조금의 후회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래야 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일을 끝내고 나서야 깨닫는다. 나는 이 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그래, 시작되었단 말이지, 이렇게 시작되었단 말이지.”라고 중얼거릴 때 그는 깨닫고 있었다. 모든 것은 이제부터 시작임을, 노파 살해가 아니라 그 다음이 자신의 시험대임을.

지금 그는 자신이 종교적,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악행을 저질렀다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다.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와 사법이 궁금해 하는 것은 죄의 동기이지만, 그는 자신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차라리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찌되었든 노파는 죽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는 지금 이 질문들로 머리가 펄펄 끓을 지경이다. 여기서 선악을 가르고 유죄를 논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가 괴로운 것은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자기 행위를 감당할 만큼 자신이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려운 것은 유죄판결이 아니라, 행위 이후를 견디지 못하는 자신의 왜소함이다.

 

"당신은 정말 내가 몰랐다고 생각해? 이를테면, 내게 권력을 휘두를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한 걸 보면, 이미 난 그럴 권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몰랐다고 생각해? 인간이 ‘이’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제기한 걸 보면, 이미 ‘내게 있어서’ 인간은 ‘이’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일 없이 곧바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인간은 ‘이’라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고 생각하느냔 말이야……? 나폴레옹이라면 그 일을 저질렀을까 아닐까의 문제를 가지고 내가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는 건, 내가 나폴레옹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분명히 느꼈어……."

 

머릿니 같은 존재를 죽일 수 있는 건 오직 나폴레옹뿐이다, 나 역시 머릿니 같은 노파를 죽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휘청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지금 이 순간도 이 같은 생각에 골몰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 내가 나폴레옹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민고민 끝에 도끼를 품에 숨긴 채 전당포에 들어가는 모습부터 시작해 범행 이후 헛소리를 해대는 그 모습까지, 솔직히 라스콜리니코프의 모습은 영락없이 근대의 비루한 인물 형상이다. 그리스 서사시 속 빛나는 영웅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헌데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에게 육박해오는 압력에 대항해 어떻게 답해야 할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 자리를 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는 뻬쩨르부르그의 진창길을 그저 걷는다. 설령 그 길이 지옥으로 이어진다 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부정하는 것도, 이를 합리화하는 것도 그의 선택지 안에 없다. 그가 주는 강렬함은,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끝내 감수하려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마침내 그가 자수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의 여동생은 눈물 흘리며 말한다. “고난을 당하러 가는 것 자체가 벌써 범죄의 반을 씻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는 자신이 경찰서에 가려는 이유는 “단지 비열함과 무능함 때문”이라 대꾸한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수 후 시베리아 유형지로 떠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자기 죄를 신이나 사법당국이 심판하도록 두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심판하고 벌준다. 그리하여 기어이 ‘죄’와 ‘벌’을 둘러싼 우리들의 오랜 관념을 뒤흔들어 놓고 만다. 누가 그의 죄를 묻겠는가? 사람들은 신이라 답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오직 신만이 유죄다! 인간이 죄를 짓도록 만든 것 역시 신이므로. 허나 그는 신에게 자기 행위의 책임을 전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끝끝내 선물로 받은 성경책을 펼치지 않는 모습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murderer.jpg

뭉크 作 <살인자>(1910) / 뭉크는 평생 도스토예프스키의 애독자였다. 임종 당시 그의 가슴 위에 놓여 있던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



차안(此岸)의 구원

 

아마도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신을 부정하면서도 삶을 지켜내려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출현이 지극히 낯설고 매혹적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런 그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한 명 있다. 열여덟 나이에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몸을 팔기 시작한 소녀 쏘냐가 그 장본인이다. 그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군 중 하나인 ‘유로지비’다. 유로지비란 러시아 정교의 전통에서 ‘바보 성인’이라 불리는 존재로서, 스스로 고난을 초래함으로써 성스러워지는 존재를 일컫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에서 이들은 타인의 매질과 화를 자초하고, 고통 속에서 위안과 기쁨을 느끼는 불가해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고통과 절망마저 삶의 한 부분으로서 열렬히 사랑할 온전한 준비를 갖춘 채 죄인들 곁을 지킨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쏘냐를 무시하고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그녀에게서 모종의 친밀감과 더불어 경외심을 느낀다. 그는 묻는다. “이미 자기를 끌어당기고 있는 악취 나는 시궁창 바로 위에, 파멸 바로 위에 저렇게 버젓이 버티고 앉아서, 과연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소리에도 귀를 막고 손을 내저을 수 있는 걸까?” 미쳤거나 상식 이하의 인간이 아니라면 누구도 그럴 수 없다.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계모와 그 아이들을 위해 몸을 팔고 매일 밤 그들을 걱정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이 그녀의 육신은 점점 더 피폐해져갔다. 일상인들 눈에 그것은 밑바닥 인생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쏘냐와 마주해본 적이 있다면 알 수 있다. 그녀는 지상에 사는 구원자다. 오직 지상의 비참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해내는 존재다. 루카치에 따르면 그녀는 자아를 벗은 존재로서 마치 백지처럼 존재하다 어느 순간 라스콜리니코프의 영혼을 마치 제 영혼 읽듯이 읽어낸다.

유형지에서 맞이한 어느 아침 6시,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만 눈물 흘리고 만다. 그날부터다. 그는 비로소 지금 여기에서 살아갈 결심을 굳힌다. 그녀가 고난을 껴안고 살아가듯 자신 역시 자신이 져야 할 것을 진 채 살아야 한다고. 니체라면 아마도 그에게서 몰락하는 자의 뒷모습을 목격했으리라.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역, 책세상)

 

몰락.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깊은 물속에 잠겨 사라지고, 그 자신은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내던져져 산산이 흩어진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이고 보이는 것은 황야뿐이다. 니체는 이 자리를 직면하는 자만이 다음 길을 걷는다고 여겼다. 인간이란 오직 과정 중의 존재로, 매번의 몰락을 통해 다음으로 건너가야 한다고. 실상 노파를 죽인 뒤부터 시베리아 유형지까지, 라스콜리니코프의 모든 행보 역시 몰락으로 가는 길에 다름 아니다. 그는 다 잃었다. 사람들은 아마도 그가 패배했다고 말하리라. 그러나 실상 그는 이루어냈다. 다른 이들이 차마 뛰어들지 못하는 길에 뛰어드는 데 성공했으므로. 몰락했지만 동시에 ‘건너편’으로 가기 시작했으므로.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생이 주는 무게를 온전히 제 등으로 느끼며 이동할 준비를 마쳤으므로. 하여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다.

 

"이제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가 되기에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완결되었다."

 

그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았다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둠을 바라보는 데 능한 작가다. 자기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만이 기꺼이 몰락해갈 수 있다는 말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하여 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독자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나는 심연까지 내려가 그것과 대면할 용기를 지녔는가? 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내 비루한 형상을 바라볼 수 있는가? 몰락을 두려워하는 나는 자기 생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을 뿐 실은 그 어떤 변화에 대해서도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대로 얼굴 없는 이를 향해 화내고 칭얼대다 이만 내 생을 마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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